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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제갈량 출사표(諸葛亮 出師表) 제갈량의 출사표는 문장이 유창하고 뜻이 간절하여 역대 고전산문 가운데 명문장으로 꼽는다. 제갈량(諸葛亮. 181~234)은 동한(東漢) 말 낭야군(琅邪郡) 양도현(陽都縣) 출신으로 촉(蜀)의 승상(丞相)을 지냈다. 자는 공명(孔明)이고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일찍이 형주(荊州)의 융중(隆中)에서 난리를 피해 있을 때 ‘와룡(臥龍)’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유비(劉備)를 도와 삼국(三國) 정립(鼎立)을 이루었고, 유비가 죽자 후주(後主) 유선(劉禪)을 보좌하면서 여러 차례 위(魏)를 공격하였다. 위장(魏將) 사마의(司馬懿)와 대치하다가 오장원(五丈原)의 군중(軍中)에서 병사(病死)하였다. 출사표(出師表)는 제갈량이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기 앞서 황제 유선에게 바친 글을 말한다. 제갈량이 촉한(蜀漢) 건흥(建.. 더보기
의상조사 법성게(義湘祖師 法性偈) 의상(義湘, 또는 義相. 625~702)은 신라시대의 승려로 성(姓)은 김씨(金氏)이며, 아버지는 한신(韓信)이다. 화엄종(華嚴宗)의 개조(開祖)로서 당나라에서 화엄종을 연구하고 돌아와 10여 개의 사찰을 건립하고 화엄의 교종을 확립하는데 힘썼다. 의상은 해동화엄(海東華嚴)의 초조(初祖)’라는 별칭처럼 화엄사상의 발전과 보급에 큰 역할을 하였다. 여기 소개하고자 하는 법성게는 그가 668년에 저술한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 ‘법계도(法界圖)’, ‘법도장(法圖章)’, ‘법성도(法性圖)’, ‘해인도(海印圖)’ 등으로도 불리는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는 화엄 사상의 핵심을 7언 30구의 운문(韻文)으로 나타낸 것이다. 게송(偈頌)들은 4개의 ‘회.. 더보기
반야심경 사경(般若心經 寫經) 사경(寫經)이란 불전(佛典 : 經, 律, 論 등을 포함)을 서사(書寫)하는 것. 또는 서사한 책을 말한다. 권자본(卷子本)이 많으나 책자본(冊子本)이나 절본(折本)도 있다. 보통 백지에 먹으로 쓰나 색지(色紙), 감지(紺紙), 자지(紫紙)에 금자(金字), 은자(銀字), 채자(彩字)로 쓰는 수도 있다.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불전 서사의 습관에 따라 한역 불전이 유포되던 3세기경부터 시작됐다. 남북조 이후 조정이나 대사원에서 일체경(一切經) 수천 권의 서사가 이루어지고 전문적인 사경원(寫經員)도 양성되었으며, 이 습관은 당대까지 성대하였다. 사경의 목적은 선조, 부모의 공양, 국가안태(國家安太)의 기원, 바른 경전의 유전, 독송(讀誦), 기록 등에 있고 특히 대승불교에서는 사경의 공덕을 강조하였다. 청말에 서.. 더보기
김용택 시 방창(方暢)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씨의 시 방창(方暢) 산벚꽃 흐드러진 저 산에 들어가 꼭꼭 숨어 한 살림 차려 미치게 살다가 푸르름 다 가고 빈 삭정이 되면 하얀 눈 되어 그 산 위에 흩날리고 싶었네 立冬이후 10여일이 지났지만 주변으로 부터 만추의 정취가 물씬 풍겨온다. 엽락귀근(葉落歸根)처럼 떨어지는 낙엽은 내년을 기약하며 토양에 양분이 되어 다시 뿌리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법칙이 이어지고 있다. 김용택 시의 방창은 산벚꽃 흐드러진 봄에 빈 삭정이 눈발에 날리는 겨울까지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낙천적 삶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깊어가는 가을의 아쉬움을 간직하며 한글 흘림체로 자서해 보았다. 더보기
사계 김장생 시 2수(沙溪 金長生 詩 2首) 김장생(金長生. 1548∼1631) 조선 중기의 대표적 학자이자 문신으로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서울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지례현감 호(鎬)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계휘(繼輝)이며,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로 우참찬 영(瑛)의 딸이다. 아들이 집(集)이다.1560년 송익필(宋翼弼)로부터 사서(四書)와 근사록(近思錄) 등을 배웠고, 20세 무렵에 이이(李珥)의 문하에 들어갔다. 1578년(선조 11)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參奉)이 되고, 1581년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일로 아버지를 따라 명나라에 다녀와서 돈녕부참봉이 되었다. 그 뒤 순릉참봉(順陵參奉)과 평시서봉사(平市署奉事)를 거쳐 활인서(活人署)·사포서(司圃署)·사옹원(司.. 더보기
백거이 조추독야(白居易 早秋獨夜) 오늘 아침 뉴스에 대관령 온도가 영하로 내려갔다. 어제가 24절기 중 상강(霜降)인데 그 이름값을 하는 것 같다. 동양은 예로부터 음력 즉 달을 기준으로 모든 생활의 기준을 삼았다. 양력은 지구의 공전 주기를 기준으로 약 365일이다.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기간이 29.5일 걸린다 하니 1년을 기준으로 하면 약 354일이 된다. 즉 1년에 약 11일 정도 차이가 나는데 이를 메우기 위해 음력 윤달이 생겼다. 윤달은 3년마다 한달, 또는 8년에 석 달의 윤달을 넣어 양력과의 차이를 극복하였다. 주변 산색들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 당나라 시인 백거이도 지금과 같은 감흥을 느끼며 가을밤 정취를 이렇게 읊었나 보다. 조추독야(早秋獨夜 : 초가을 밤에 홀로 읊다) 唐, 白居易(백거이) .. 더보기
황종해 붕우(黃宗海 朋友) 요즘 보편화된 SNS(Social Network Services/Sites)를 접하다 보면 좋은 말과 명언, 명구들로 관계인들간 소통을 하고 있는데 일편적으로 듣기 좋은 말로 도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말에 忠言逆耳利於行 良藥苦口利於病(충언역이이어행 양약고구이어병 : 충고는 귀에 거슬리나 행동하는 데는 이롭고, 좋은 약은 입에는 쓰나 병에는 이롭다)의 뜻을 새겨보면 과연 주변에 내 허물과 단점을 제대로 지적해주고 말해주는 진정한 친구가 몇이나 있을까? 조선시대 문인인 황종해의 후천집(朽淺集) 권 1 예시(禮詩) 붕우(朋友)를 살펴보면 깨끗한 거울을 통해서 진정한 벗의 모습을 찾으려고 하는 구절을 自書와 함께 해설을 담아 보았다. 황종해(黃宗海, 1579~1642) 본관은 회덕(懷德), 자는 대진.. 더보기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 세숫대야 명문(銘文) 김창협(金昌協, 1651~1708) 경기도 과천 출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삼주(三洲)이며, 1669년(현종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증광문과에 전시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에 출사하였다. 이어서 병조좌랑·사헌부지평·부교리 등을 거쳐 교리·이조좌랑·함경북도병마평사(咸鏡北道兵馬評事)·이조정랑·집의·동부승지·대사성·병조참지(兵曹參知)·예조참의·대사간 등을 역임하고, 명에 의해 송시열(宋時烈)의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를 교정하였다. 청풍부사로 있을 때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진도에서 사사되자, 사직하고 영평(永平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에 은거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 이후 아버지가 신원됨에 따라 호조참의·예조참판·홍문관제학·이조참판·대제학·예조판서.. 더보기
이이 풍악증소암노승(李珥 楓嶽贈小菴老僧) 이이(李珥, 1536~1584)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ㆍ석담(石潭)ㆍ우재(愚齋)이다. 1536년(중종 31) 음력 12월 26일에 사헌부 감찰을 지낸 이원수(李元秀)와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의 셋째 아들로 외가가 있던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율곡은 연보를 통해 생애를 정리해 보았다.1536년 사헌부 감찰을 지낸 이원수와 사임당 신씨의 아들로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 1548년 12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 1554년 금강산 마하연에서 불교를 공부. 1558년 별시에서 천도책을 지어 장원으로 급제. 1564년 정 6품 좌랑으로 관식에 나섬. 1569년 홍문관 부교리로서 춘추관 기사관을 겸하여(명종실록) 편찬에 참여. 1570년 관직에서 물러나 황해도 해주로 가 학문.. 더보기
이광정 천근(李光庭 賤近)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멀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추종하는 경우가 많다. 정작 보이고 가까이 있는 현재의 소중함을 잊고 이상만 쫓다 보면 허망함을 느끼며 후회를 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가까운 것이 더 소중하다는 이광정의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게재된 내용들을 참고로 선인들의 귀감이 되는 내용을 추려 마음속 깊이 새겨보고자 한다. 이광정(李光庭. 1674~1756)의 자는 천상(天祥), 호는 눌은(訥隱),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조현명(趙顯命)이 경상도관찰사로 있을 때 지방에 학문과 교화를 일으키고자 많은 선비를 뽑았는데 그를 스승으로 모셔 안동부훈도장(安東府訓都長)으로 삼았다. 또한 조정에서 효렴(孝廉)을 천거하라 하였을 때도 조현명이 그를 문학과 행의(行誼)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