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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고운 최치원 시 증금천사주인(孤雲 崔致遠 詩 贈金川寺主人) 고운선생이 남긴 둔세시(遁世詩 : 속세을 떠나 은둔하기 위하여 지은 시) 시구 중 "시간타일오종적(試看他日吾蹤跡) 일입청산갱불환(一入靑山更不還) : 훗날 내 자취를 살펴려 한다면 한번 청산에 들면 다시는 나오지 않으리"라는 입산의 심경으로 들어간 가야산에서 해인사 고승(高僧)들과 교우하며 많은 시를 남겼다. 소개하고자 하는 증금천사주인(贈金川寺主人)은 미상(未詳)인 금천사 주지의 삶을 노래한 시로 번뇌가 없는 승방(僧房)의 한 길(一路)의 삶이 상대적으로 시비이욕(是非利慾)의 천 길(千岐)의 세속 삶보다 가치 있는 삶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종직(金宗直)은 청구풍아(靑丘風雅 : 삼국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명현들의 시선집)에서 주지 스님이 30년간 이 절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마음속에 다른 갈림길이 .. 더보기
고운 최치원 시 황산강 임경대(孤雲 崔致遠 詩 黃山江 臨鏡臺) 글 쓰는 사람이라면 지필묵(紙筆墨)에 대한 욕심이 있다. 나 또한 다름없이 여유 있을 때마다 꾸준히 구입해 모은 붓이 300여 자루에 이르고 있다. 이름난 장인이 만든 붓은 쉽게 사용하지 못하고 보관하고 있는 것도 있고 운 좋게 중가로 구입한 붓이 마음에 들어 추가로 구입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한지(화선지)는 연습지를 주로 사용하는데 작품지는 워낙 고가다 보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으며, 연습지는 주로 종이먼지가 덜 날리고 스며드는 발묵이 비교적 적당한 송지(松紙)를 구입하여 사용한다. 며칠 전 중국 붓을 인터넷을 통해 10여 자루를 구매하여 사용해 봤는데 붓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모필이 힘이 없고, 붓 털이 빠지기 일쑤며, 운필의 묘미를 느끼기에 크게 부족함이 있어 후회와 함께 버리려고 했.. 더보기
임연 이양연 시 오주구거(臨淵 李亮淵 詩 梧州舊居) 우리나라도 고령화로 접어들면서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전국적으로 150만 채를 넘어 10채 중 1채 가까이가 빈집인 샘이다. 팔 수 있는 늘어나는 빈집도 도심에 터전을 잡고 있는 자식들이 어렸을 때 추억을 간직하기 위하여 쉽게 내놓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은 전체 주택의 15% 넘게 빈집으로 방치되고 있는 실정으로 급속하게 늘어나는 빈집은 농촌지역이 급속한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음을 말해주며, 전후(戰後) 베이비부머가 마지막으로 농촌을 지탱해주는 세대가 될 것이다. 나 또한 1년에 한두 번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을 찾게 되는데 이와 같은 심정으로 임연당(臨淵堂) 이양연(李亮淵) 역시 그가 어렸을 때 살았던 오주(梧州 : 현재 서울 송파구 근처로 추정)를 찾아 아련하게 떠오르는 그때의 추억을 회상하며.. 더보기
가을 한시 2수, 박금 추야(朴坅 秋夜) , 김효일 추사(金孝一 秋思) 오늘은 처서답게 새벽부터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요즘 한낮 기온이 1~2° 내렸음에도 몸에서 느끼는 차이는 확연하다. 한 밤 창문을 닫아도 또렷하게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는 가을의 전령사 답게 힘차게 울어 댄다. 예나 지금이나 가을의 흥취를 느끼기에는 변함이 없다. 이와 같이 가을심사를 읊은 위항시인 박금(朴坅 : 생졸연대 미상)과 더불어 국담(菊潭) 선생의 시 2수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추야(秋夜) - 박금(朴坅) 西風吹動碧梧枝(서풍취동벽오지) 서풍이 벽오동나무 가지를 흔드니 落葉侵窓夢覺時(낙엽침창몽교시) 창으로 들어온 낙엽에 꿈을 깨네 明月滿庭人寂寂(명월만정인적적) 밝은 달 뜰에 차고 인적 없어 고요한데 一簾秋思候蟲知(일염추사후충지) 한발 주렴 밖 가을심사 귀뚜리가 알아주리 위 시는 위.. 더보기
성재 최충 계이자시(惺齋 崔沖 戒二子詩) 한 때 가훈(家訓) 보급운동이 전개된 적이 있었는데 성씨별로 종훈(宗訓)이 있듯이 회사에는 사훈(社訓)이 있다. 가정으로부터 나라에 이르기까지 자손 대대로 지키고 실천해야 할 규범을 정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대표적 가훈으로 널리 알려진 해주최씨(海州崔氏)의 계이자시(戒二子詩)를 소개하고자 한다. 해주최씨 시조(始祖)는 목민관(牧民官)을 지낸 최온(崔溫)으로 아들인 해동공자(海東孔子) 성재 최충(惺齋 崔沖, 984 ~ 1068)은 자녀교육을 위한 계이자시(戒二子詩)를 지어 벼슬길에 오른 유선(惟善), 유길(惟吉) 두 아들에게 당부하기를 선비가 권세로 출세하면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일이 드물고 문덕(文德)으로 영달(榮達)해야 경사(慶事)가 될 것이다. (士以勢力進 鮮克有終 以文行達 乃爾有慶)라고 훈계하고 이를.. 더보기
백호 임제 한시 몇 수(白湖 林悌 漢詩 몇 首) : 규원(閨怨), 숙압촌(宿鴨村), 중계묵(贈戒默), 패강가(浿江歌), 증승(贈僧) 8월 중순을 넘어서니 어느덧 조석으로 부는 바람이 여름의 정점을 지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간간이 들려오든 한밤의 귀뚜라미 소리도 이제는 요란하게 합창을 이루고 있어 잠 못 이루는 객에도 은근히 조그만 위안이 되어주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글쓸 생각이 들 때 실행해야 마음이 붓 끝을 이끌며 자연스레 운필의 묘미를 느끼게 된다. 지면에 소개하고자 하는 백호 임제는 전라도 나주에서 배출한 대문호이자 걸출한 인물이다. 고등 교과서 고전 운문(古典韻文)에도 등장하는 “황진이 묘에서”의 작가로 누구나 한 번쯤 외워봤던 친숙한 시조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 난다. 홍안(紅顔)을 어듸 두고 백골(白骨)만 무쳣나니. 잔(盞) 잡아 권(勸)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그는 문장과 시에 뛰어나 당대의 .. 더보기
윤치 추야(尹治 秋夜) 해외 6.25 참전 용사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발전상에 놀라고 수풀로 우거진 산을 보며 더 놀란다고 한다. 저절로 내뱉는 단어가 “Miracle”이다. 6.25 전쟁당시 산과 들은 화염에 잿더미가 되고 땔감으로 나무를 사용했으니 헐벗은 민둥산만 바라보다 반백년 세월이 지나 상전벽해(桑田碧海)처럼 변한 모습을 바라보며 이처럼 감탄사가 나왔을 것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백년만에 찾아온 기록적 폭우로 물 폭탄을 맞은 서울 강남 일대가 아수라장이다. 예로부터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은 치산치수(治山治水)라 했는데 이를 다스릴 능력과 기술이 있음에도 피해가 큰 것은 인재(人災)임이 분명하다. 크게 보면 인간에 의해 자연의 질서와 생태계는 파괴되고 환경을 등한시한 사필귀정의 결과물이다. 수천 년이 지난 후 다른 개체가 .. 더보기
달마 혈맥론(達磨 血脈論)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달마도(達磨圖)에 공통적 문구가 있는데 이는 심시불(心是佛), 심즉시불(心卽是佛)로 마음이 곧 부처라는 뜻이다. 자주 사용하는 단어인 이심전심 불립문자(以心傳心 不立文字) 또한 달마의 혈맥론에서 기인되었다. 불교를 마음공부 잘하는 것 즉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심외무법(心外無法)인 것이다. 높은스님의 글씨를 선서(禪書) 또는 선필(禪筆)라고 하는데 풍운선서(風雲禪書)의 경지를 이룬 근대 고승으로 나 또한 심취했던 일붕 서경보(一鵬 徐京保), 경봉대선사(鏡峰大禪師), 탄허대종사(呑虛大宗師)의 선필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초탈경지(超脫境地)를 이루고 있다. 내 글씨 또한 이 분들의 필의(筆意)를 닮고 있다. 특히 탄허대종사는 혈맥론 중 끝 부분에 나오는 심심심(心心心) 글귀를.. 더보기
소나무 관련 한시 몇 수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좋아하는 나무를 꼽으라면 제일 먼저 소나무를 선택할 것이다. 애국가에 나오는 소나무는 고결한 자태로 혹독한 풍상을 겪으며 사시사철 푸르름을 선사하며 늘 우리 곁에 머물고 있고, 유서 깊은 마을의 동구(洞口)나 언덕에는 마을을 상징하는 고목으로 예로부터 뛰어난 기품을 자랑하는 나무로 보호수로 지정되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소나무가 베푸는 요소들은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정서적 안정감과 함께 솔에서 내뿜는 솔향기, 송화, 송진, 송이, 복령 등 은 귀한 맛과 고급 약재로 사용되고 있으며, 어렸을 때 배 고픔을 달래 주었던 송기, 소나무를 불태우면 기름기 때문에 그을음이 많이 생겨 이를 모아 만든 먹을 송연묵(松烟墨)이라 했으며, 타고 남은 재는 지혈 등 먹는 .. 더보기
해원군 이건 시 강남춘, 산중, 해남도중, 숙별도포, 추효, 걸국화(海原君 李健 詩 江南春, 山中, 海南途中, 宿別刀浦, 秋曉, 乞菊花) 어젯밤부터 아침까지 치적 치적 비가 내리고 있다. 극심했던 봄 가뭄을 한번에 해소할 많은 비가 장마기간에 끊임없이 내린다. 이처럼 비 내리는 밤은 글씨 쓰기에 제격이다. 소개하고자 하는 시는 선조(宣祖)의 손자인 해원군 이건((海原君 李健)이 남긴 400여 수 중 마음에 담고 있던 몇 수를 야우중(夜雨中)에 자서해 보았다. 이귀(李貴)의 모함으로 9년동안 유배생활을 하였는데 7년 동안 제주도에서 보고 느낀 생활과 풍습을 기록한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가 있다. 그가 꿈꾸었던 강남의 봄풍경, 산중에서의 삶, 제주도 유배길 해남을 지나며, 가을을 읊은 높은 격조가 흐르는 시와 함께 당시 3절(三絶)로 칭송이 자자했던 해원군의 면모를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시대 종실(宗室) 중 가장 뛰어난 명필은 당연코 비해당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