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순을 넘어서니 어느덧 조석으로 부는 바람이 여름의 정점을 지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간간이 들려오든 한밤의 귀뚜라미 소리도 이제는 요란하게 합창을 이루고 있어 잠 못 이루는 객에도 은근히 조그만 위안이 되어주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글쓸 생각이 들 때 실행해야 마음이 붓 끝을 이끌며 자연스레 운필의 묘미를 느끼게 된다.
지면에 소개하고자 하는 백호 임제는 전라도 나주에서 배출한 대문호이자 걸출한 인물이다.
고등 교과서 고전 운문(古典韻文)에도 등장하는 “황진이 묘에서”의 작가로 누구나 한 번쯤 외워봤던 친숙한 시조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 난다.
홍안(紅顔)을 어듸 두고 백골(白骨)만 무쳣나니.
잔(盞) 잡아 권(勸)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그는 문장과 시에 뛰어나 당대의 명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호방하고 쾌활한 시풍을 당대는 물론 후대인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는데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은 그의 시를 일컬어 명산을 두루 유람하여 자신의 분방, 호일(豪逸)한 기운을 북돋아 시에다 토해냈다.” 고 했으며, 상촌 신음(象村 申欽)은 “나는 백사공(白沙公)과 더불어 백호(白湖)에 대해 자주 논했는데 백사(白沙)는 매양 그를 기남자(奇男子)라고 일컫고 시에 있어서는 미상불 삼사(美嘗不 三舍 : 학문이 뛰어난 학자도 부정할 수 없는 경지)를 물러나서 양보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만약 고각(鼓角)을 세우고 단에 올라 맹주(盟主)를 세워야 한다면 백호 그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칭송했다.
비록 39세의 짧은 삶을 마감했지만 천재적 대문호가 남긴 시 몇 수를 살펴보고자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규원(閨怨 : 여인의 원망)
十五越溪女(십오월계녀) 15세의 아리따운 냇가의 아가씨
羞人無語別(수인무어별) 수줍어 말 못 하고 임을 보냈네
歸來掩重門(귀래엄중문) 돌아와 중문을 닫아걸고는
泣向梨花月(읍향이화월) 배꽃처럼 하얀 달을 보며 눈물짓누나
숙압촌(宿鴨村 : 압촌에 머물며)
客窓終夜憶寒泉(객창종야억한천) 나그네 묵는 방에 밤이 다하니 차가운 샘물 생각나고
更値新晴祗晝眠(갱치신청지주면) 새롭게 개이는 걸 다시 만났는데 어찌 낮에 잠을 잘까.
村巷寥寥人不到(촌항요요인부도) 시골 거리는 쓸쓸하고 적막하여 사람들 이르지 않고
石榴花發竹蘺邊(석류화발죽리변) 대나무 울타리 모퉁이에 석류나무 꽃만 피어있구나.
중계묵(贈戒默 : 계묵 스님께 드리다)
靑山不語古猶今(청산불어고유금) 푸른 산은 오히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말이 없는데
體得禪僧戒默心(체득선승계묵심) 친히 참선하는 스님의 고요한 마음 경계함을 깨닫네.
茶罷香殘坐寂寂(다파향잔좌적적) 차를 마시고 나니 향기 남아 외롭고 쓸쓸하게 앉아서
一林微雨聽幽禽(일림미우청유금) 모든 숲에 이슬비 내리니 그윽한 새소리를 듣는다네.
패강가(浿江歌 : 대동강 노래)
浿江兒女踏春陽(패강아녀답춘양) 대동강 가의 아가씨들 봄놀이 가는데
江上垂楊正斷腸(강상수양정단장) 강가의 수양버들 마음만이 애달프구나
無限烟絲若可織(무한연사약가직) 가느다란 버들 실로 비단을 짜낸다면
爲君裁作舞衣裳(위군재작무의상) 임을 위해 춤 옷이라도 지어드리리
증승(贈僧 : 중에게 줌)
郊外逢僧坐晩沙(교외봉승좌만사) 교외에서 중을 만나 저물녘 모래에 앉아
白岩歸路亂山多(백암귀로난산다) 흰 바위 돌아가는 길에 산들이 어지럽다
江南物候春猶冷(강남물후춘유냉) 강남의 물색이 봄이라 더욱 차가운데
野寺叢梅未着花(야사총매미착화) 들에 있는 절에 매화는 피지 않았네
백호 임제(白湖 林悌 : 1549∼1587)는 조선 중기 문인이자 시인으로 전라도 나주목 회진리(나주시 다시면 회진리)에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지낸 아버지 임진(林晉)과 어머니 남원 윤 씨 윤개(尹塏)의 딸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자는 자순(子順), 호는 백호(白湖)ㆍ풍강(楓江)ㆍ소치(嘯痴)ㆍ겸재(謙齋). 본관은 나주(羅州)다.
임제는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자유분방해 스승이 없었는데, 1570년 그가 충청도를 거쳐 서울로 가는 길에 쓴 시가 속리산에 있던 성운(成運)에게 전해진 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스승 성운과 떠나면서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으나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 산은 속세를 떠나려 하지 않으나 속세가 산을 떠나려 한다(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라는 화두를 던졌다는 일화가 있다. 위 문구는 중용에 나오는 내용을 고운 최치원이 시로 표현했다. 1576년(선조 9) 생원시ㆍ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 흥양현감(興陽縣監), 병마사(兵馬事)ㆍ예조정랑(禮曹正郞) 등을 거쳐 지제교(知製敎)를 지냈다. 그러나 동서 양당으로 나뉘어 서로 비방하며 다투는 당시의 정계(政界)를 보고 비분강개(悲憤慷慨 : 슬프고 분하여 마음이 북받침)하여 벼슬을 버리고 명산을 찾아다니면서 1587년 39세의 나이로 고향인 회진리에서 여생을 마쳤다.
젊어서부터 방랑과 술과 친구를 좋아하고 호협(豪俠 : 성격이 호방하고 의협심이 강함)한 성격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벼슬에 있으면서 숱한 일화를 남겼는데, 서도병마사(西道兵馬使)로 임명되어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黃眞伊)의 묘에 제사를 지내고 시조 1수를 지어, 부임하기도 전에 파직당하기도 하였으며, 기생 한우(寒雨)와 주고받은 시조의 일화 등이 유명하다. 문장과 시에 뛰어나 당대의 명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호방하고 쾌활한 시풍을 지녔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화사(花史), 수성지(愁城志), 백호집(白湖集),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남명소승(南溟小乘), 부벽루상영록(浮碧樓觴詠錄), 용성수창집(龍城酬唱集)등이 있다.
전남 나주가 낳은 대문호(大文豪) 백호 임제의 문학정신을 계승하고 기리기 위해 2014년 '백호문학관(白湖文學館)'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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