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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교은 정이오 삼월(郊隱 鄭以吾 三月) 교은 정이오(郊隱 鄭以吾. 1347~1434) 고려말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수가(粹可), 호 교은(郊隱), 우곡(愚谷), 시호 문정(文定)이다. 1374년 (공민왕 23) 문과에 급제하여, 1376년(우왕 2) 예문관검열이 된 뒤, 삼사도사, 공조·예조의 정랑, 전교부령(典校副令) 등을 역임하였다. 1394년(태조 3) 지선주사(知善州事)가 되었고, 1398년 9월 이첨(李詹)·조용(趙庸) 등과 함께 군왕의 정치에 도움이 될만한 경사(經史)를 간추려 올리고, 곧 봉상시소경(奉常寺少卿)이 되었다. 1398년 조준(趙浚)·하륜(河崙)등과 함께 사서절요(四書節要)를 찬진(撰進)하였다. 1400년(정종 2) 성균관악정(成均館樂正)이 되었으며, 병조의랑(兵曹議郎), 예문관의 직제학, 사.. 더보기
도연명 도화원기(陶淵明 桃花源記) 도연명(陶淵明)은 앞서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에서 언급하였기에 생략하도록 하겠다. 이 글은 왕조 교체기의 문란하고 암담한 시대를 살았던 도연명은 만년무렵 현실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이상 세계에 대한 동경을 형상화하여 그려낸 이상향이다. 도화원기(桃花源記) 또는 도화원시(桃花源詩) 라고 하는 것은 도연명집의 도화원시 병기(桃花源詩 幷記)라는 시문을 도화원기와 도화원시가 분리되어있다. 도화원시는 도화원기에 대한 시로 차제에 소개토록 하겠다. 노자(老子)와 장자(莊子)가 추구한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이상 세계를 바탕으로 하고 오랜 농촌 생활 가운데에서 얻은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살려서 그려낸 도화원(桃花源)은 이후 동양적 유토피아의 전형(典型)이 되었다. 그가 꿈꿔왔던 무릉도원은 지금까지도 우리가 그리워하고.. 더보기
퇴계 이황(退溪 李滉) 시 3首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 조선 중기의 문신·대학자로 성리학의 대가이다.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퇴도(退陶),도수(陶叟)이며, 경상도 예안현(禮安縣)온계리(溫溪里: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좌찬성 이식(李埴)의 7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7개월에 아버지의 상(喪)을 당했으나, 현부인이었던 생모 박 씨의 훈도 밑에서 총명한 자질을 키워 갔다. 12세에 작은아버지 이우(李堣)로부터 『논어』를 배웠고, 14세경부터 혼자 독서하기를 좋아해, 특히 도잠(陶潛)의 시를 사랑하고 그 사람됨을 흠모하였다. 18세에 지은 「야당(野塘)」이라는 시는 그의 가장 대표적인 글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20세를 전후하여 『주역』 공부에 몰두한 탓.. 더보기
송담 이백순 청산명산(松潭 李栢淳 靑山名山) 송담 이백순(松潭 李栢淳. 1930~2012) 이 선생은 1930년 전남 보성군 복내면 시천리에서 5남 3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19세까지 조부인 낙천(樂川) 李敎川 선생에게 글을 배웠다. 집은 가난했으나 21세까지 전라도 곳곳을 돌며 명유(名儒)를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祖父는 우암 송시열의 학맥을 이은 간재 전우(艮齋 田愚 1841-1922)의 문하로 고향에서 德山精舍를 짓고 학문을 가르쳤다. 이 선생도 조부의 길을 따라 1989년 주암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될 때까지 덕산정사에서 학문을 닦았다. 광주 학동으로 자리를 옮긴 이 선생은 제자 양성에 힘써 1천여명의 후학을 길러냈다. 대표작으로 `松潭 講學錄'과 한문학 개론서인 `漢文學 大槪'가 있고 유학의 10대 경전을 모두 완역하기도 했다. 유족으로 부인 .. 더보기
이익 초춘예찬(李瀷 初春禮讚) 이익(李瀷, 1681~1763).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자신(子新), 호는 성호(星湖)이다. 그는 조고다질(早孤多疾 : 어려서 고아가 되고 많은 질병에 시달림)의 생애를 시작으로 25세 되던 1705년 증광시에 응했으나, 녹명(錄名)이 격식에 맞지 않았던 탓으로 회시에 응할 수 없게 되었다. 바로 다음해 9월에 둘째 형 잠은 장희빈(張禧嬪)을 두둔하는 소를 올린 때문에 역적으로 몰려 17, 18차의 형신(刑訊) 끝에 47세를 일기로 옥사하였다. 이익은 이 사건을 계기로 과거에 응할 뜻을 버리고 평생을 첨성리에 칩거하였다. 바다에 가까운 그 고장에는 성호(星湖)라는 호수가 있어서 그의 호도 여기에 연유되었다고 한다. 그는 여기에서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토지와 노비, 사령(使令)과 .. 더보기
혜강 최한기 지공무사(惠崗 崔漢綺 至公無私) 혜강 최한기(惠崗 崔漢綺. 1803~1877) 19세기 조선 후기의 철학자이며, 본관 삭녕(朔寧), 자 지로(芝老). 호 혜강(惠崗), 패동(浿東), 명남루(明南樓), 기화당(氣和堂). 1803년 황해도 개성(開城)에서 출생하였으며 아버지는 최치현(崔致鉉)이고 어머니는 청주 한 씨이다. 1825년 사마시(司馬試) 급제하였으며 이후 학문에 전념하였다. 경학(經學), 사학(史學), 예학(禮學), 수학(數學), 지리(地理) 등 다방면에 걸쳐 두루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있었으며, 실증적 학문을 통하여 한국 사상사에 근대적 합리주의와 개화 사항을 싹트게 한 인물이다. 주요 저서로는 농정회요(農政會要),육해법(陸海法) 이 있다. 요즘 최 씨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나라가 어지럽다. 공직자로서 본연의 사명감을 망각하고 .. 더보기
의암 유인석 대한(毅菴 柳麟錫 大寒) 의암 유인석(毅菴 柳麟錫, 1842. 1. 27~1915. 1. 29) 선생은 1842년 강원도 춘성군 남면 가정리에서 아버지 유중곤과 어머니 고령 신 씨 사이에서 3남 2녀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의 호는 의암(毅菴), 자는 여성(汝聖), 본관은 고흥(高興)이다,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일제 침략에 맞서며 제천에서 의병장 활동을 시작으로 연해주를 중심으로 활발한 의병활동을 하였으며, 선생은 1915년 1월 29일 74세의 일기로 병사하여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하였다. 정부에서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하였다.. 이제 매서운 겨울의 정점을 지나 내일이 立春이다. 의암 유인석 선생은 꽃피는 고향의 봄을 독립의 그날로 인식하고 혹한(酷寒).. 더보기
제갈량 출사표(諸葛亮 出師表) 제갈량의 출사표는 문장이 유창하고 뜻이 간절하여 역대 고전산문 가운데 명문장으로 꼽는다. 제갈량(諸葛亮. 181~234)은 동한(東漢) 말 낭야군(琅邪郡) 양도현(陽都縣) 출신으로 촉(蜀)의 승상(丞相)을 지냈다. 자는 공명(孔明)이고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일찍이 형주(荊州)의 융중(隆中)에서 난리를 피해 있을 때 ‘와룡(臥龍)’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유비(劉備)를 도와 삼국(三國) 정립(鼎立)을 이루었고, 유비가 죽자 후주(後主) 유선(劉禪)을 보좌하면서 여러 차례 위(魏)를 공격하였다. 위장(魏將) 사마의(司馬懿)와 대치하다가 오장원(五丈原)의 군중(軍中)에서 병사(病死)하였다. 출사표(出師表)는 제갈량이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기 앞서 황제 유선에게 바친 글을 말한다. 제갈량이 촉한(蜀漢) 건흥(建.. 더보기
의상조사 법성게(義湘祖師 法性偈) 의상(義湘, 또는 義相. 625~702)은 신라시대의 승려로 성(姓)은 김씨(金氏)이며, 아버지는 한신(韓信)이다. 화엄종(華嚴宗)의 개조(開祖)로서 당나라에서 화엄종을 연구하고 돌아와 10여 개의 사찰을 건립하고 화엄의 교종을 확립하는데 힘썼다. 의상은 해동화엄(海東華嚴)의 초조(初祖)’라는 별칭처럼 화엄사상의 발전과 보급에 큰 역할을 하였다. 여기 소개하고자 하는 법성게는 그가 668년에 저술한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 ‘법계도(法界圖)’, ‘법도장(法圖章)’, ‘법성도(法性圖)’, ‘해인도(海印圖)’ 등으로도 불리는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는 화엄 사상의 핵심을 7언 30구의 운문(韻文)으로 나타낸 것이다. 게송(偈頌)들은 4개의 ‘회.. 더보기
반야심경 사경(般若心經 寫經) 사경(寫經)이란 불전(佛典 : 經, 律, 論 등을 포함)을 서사(書寫)하는 것. 또는 서사한 책을 말한다. 권자본(卷子本)이 많으나 책자본(冊子本)이나 절본(折本)도 있다. 보통 백지에 먹으로 쓰나 색지(色紙), 감지(紺紙), 자지(紫紙)에 금자(金字), 은자(銀字), 채자(彩字)로 쓰는 수도 있다.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불전 서사의 습관에 따라 한역 불전이 유포되던 3세기경부터 시작됐다. 남북조 이후 조정이나 대사원에서 일체경(一切經) 수천 권의 서사가 이루어지고 전문적인 사경원(寫經員)도 양성되었으며, 이 습관은 당대까지 성대하였다. 사경의 목적은 선조, 부모의 공양, 국가안태(國家安太)의 기원, 바른 경전의 유전, 독송(讀誦), 기록 등에 있고 특히 대승불교에서는 사경의 공덕을 강조하였다. 청말에 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