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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자하 신위 시 몇 수(紫霞 申緯 詩 몇 首) 자하 신위(紫霞申緯. 1769~1845)조선 후기 때의 문신이며 서예가, 화가, 시인으로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한수(漢叟), 호는 경수당(驚修堂). 자하(紫霞). 아버지는 대사헌 대승(大升)이고, 어머니는 이영록(李永祿)의 딸이다. 1799년(정조 23)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해서 초계문신(初啓文臣 : 조선후기 규장각에서 특별한 교육과 연구과정을 밟은 문신)으로 발탁되었다. 1812년(순조12) 진주겸 주청사(陣奏兼奏請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갔는데, 이때 그는 중국의 학문과 문학에 대하여 실지로 확인하면서 자신의 안목을 넓히는 기회로 삼아 후에 중국의 학자 · 문인과의 교유를 돈독히 하였다. 특히, 당대 중국 대학자 옹방강(翁方綱)과의 교유는 그의 문학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18.. 더보기
여류시인 이옥봉 시 몇 수(女流詩人 李玉峯 詩 몇 首) 이옥봉(李玉峯)은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으로 16세기 후반인 선조 때 옥천(沃川) 군수를 지낸 이봉(李逢)의 서녀(庶女 : 소실의 딸)로 태어났으며, 호는 옥봉(玉峯)이다. 이후 조원(趙瑗)의 소실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부친에게 글과 시를 배웠으며 영특하고 명민하여 그녀가 지은 시는 부친을 놀라게 하였다. 서녀의 신분이었기에 정식 중매를 넣을 수 없었으며 학식과 인품이 곧은 사람인 조원(趙瑗)의 소실(小室)로 들어가기를 결심하였다. 이에 부친 이봉은 친히 조원을 찾아가 딸을 소실로 받아줄 것을 청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조원의 장인인 판서대감 이준민(李俊民)을 찾아가 담판하고 비로소 받아들여졌다.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선조 때 승지에 오른 조원(趙瑗)의 첩으로 들어간 옥봉은 이후 다른 소실들과 서신으.. 더보기
여류시인 이매창 시 몇 수(女流詩人 李梅窓 詩 몇 首) 조선시대 기생이었던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은 본명이 향금(香今)이고, 자는 천향(天香)이며, 호가 매창(梅窓)이다. 1573년(선조 6) 부안현의 아전 이탕종(李湯從)의 딸로 태어났다. 조선 후기의 학자 홍만종(洪萬宗)은 시를 비평한 그의 저술 소화시평(小華詩評)에서 “근래에 송도의 진랑(眞娘 : 황진이)과 부안의 계생(桂生 : 매창)은 그 사조(詞藻)가 문사들과 비교하여 서로 견줄 만하니 참으로 기이하다”라고” 하며, 매창을 황진이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명기(名妓)로 평가하였다. 그녀는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나 당대에 큰 명성을 얻으면서, 천민 출신의 시인 유희경(劉希慶), 허균(許筠), 등과 같은 많은 문인ㆍ관료들과 교유했다. 38세의 생애를 통해 그녀가 지은 시는 수백 편에 이르지만 지.. 더보기
근대 고승 전강선사 오도송, 게송(近代高僧 田岡禪師 悟道頌, 偈頌) 전강선사(田岡禪師. 1898~1975) 본관은 동래(東萊). 성은 정씨(鄭氏). 첫 법명은 영신(永信). 법명은 전강(田岡), 전라남도 곡성 출신으로 만공에서 이어지는 선종 제77대의 법맥을 전수하였고 용화사법보선원, 용주사중앙선원 등을 창설하여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다.1914년해인사 에서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恩師)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戒師)로 출가하였다. 1918년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에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정진하였다.예산 보덕사(報德寺), 정혜사(定慧寺) 등에서 피를 쏟고 머리가 터져가며,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던 중, 2.. 더보기
어우동 시 부여회고(女流詩人 於于同 詩 夫餘懷古) 於于同(어우동)은 성종 때의 승문원 지사(承文院知事)였던 박윤창(朴允昌)의 딸로 태어나서 종실 명문인 태강수(泰康守, 정4품) 이동(李同)에게 출가한, 정 4품 혜인(惠人)의 품작까지 받은 양반집 여자였다. 용재총화(慵齋叢話 : 조선 중종 20년인 1525년에 성현(成俔, 1439 ~ 1504)이 간행한 잡록집(雜錄集). 필사본 3권 3책, 대동야승본(大東野乘本) 10권 2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에는 어우동, 실록에는 어을우동(於乙于同), 송계만록(松溪漫錄 : 조선 중기에 권응인(權應仁)이 지은 시화 및 일화집)과 대동시선(大東詩選)에는 어우동(於于同)이라 나온다. 음탕한 여자로 지나치게 색을 밝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결국 교형(絞刑)에 처하였다. 실록에도 기록.. 더보기
여류시인 수향각 원씨 시 기옥산, 춘일(女流詩人 繡香閣 元氏 寄玉山, 春日) 수향각 원씨(繡香閣 元氏). 조선시대 여류시인으로 생몰연대 기록은 없다. 옥산(玉山)이라는 아호를 가진 님을 보내며, 맑은 가을의 연못 누대에 홀로 뜬 달과 물에 가득 핀 연꽃 삼백 송이를 자신에 비유하며 읊었던 시 한 수와 따스한 봄날에 읊은 시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기옥산(寄玉山 : 옥산에게 부치는 이 마음) - 수향각 원씨(繡香閣 元氏) 秋淸池閣意徘徊(추청지각의배회) 맑은 가을의 연못 누대에는 마음만 배회하고 向夜憑欄月獨來(향야빙난월독래) 밤에 난간에 기대어 보니 달이 홀로 떠오르네 滿水芙蓉三百本(만수부용삼백본) 물에 가득한 연꽃이 모두 삼백 그루인데 送君從此爲誰開(송군종차위수개) 임을 보낸 이곳에서 누구를 위해서 피어났나 春日(춘일) 田疇生潤水增波(전주생윤수증파) 밭이랑 물에 젖어 잔물결 출.. 더보기
여류시인 황진이 시 별김경원, 영반월(黃眞伊 詩 別金慶元, 詠半月) 황진이(黃眞伊) 조선조 중종 때 개성 출신의 명기(名妓)로서, 본명은 황진(黃眞), 필명은 진이(眞伊), 기명(妓名)은 명월(明月), 필명은 진랑(眞娘)으로 중종(1506-1544) 초엽에 태어나 명종(1545-1567) 시대를 무대로 활약한 여류시인이다. 황진이는 송도 양반 황진사의 서녀(庶女)로 출생하였으며, 용모가 아름답고 거문고, 노래, 시예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음. 당대 사람들이 선녀(仙女)라고 불렀음. 그러나 황진이는 후에 송도(松都)의 기생이 되었다. 기생이 된 동기에 대하여도 15세경 이웃 총각이 혼자 연모하다 병으로 죽자 서둘러서 기계(妓界)에 투신하였다고 전하기도 함. 용모가 출중하며 뛰어난 총명과 민감한 예술적 재능을 갖추어 그에 대한 일화가 많이 전함. 미모와 가창뿐만 아니라 서사(.. 더보기
여류시인 신사임당 시 사친, 읍별자친(申師任堂 詩 思親, 泣別慈親)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이자 예술가로  본관은 평산(平山). 아버지는 신명화(申命和)이며, 어머니는 용인 이 씨로 이사온(李思溫)의 딸이다. 남편이 증좌한성 이원수(李元秀)이고, 조선시대의 대표적 학자이며 경세가인 이이(李珥)의 어머니다. 시, 그림, 글씨에 능했던 예술가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상으로 강릉에서 태어나 서울에 살면서 고향과 부모를 그리워하는 심정을 읊은 시 2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思親(사친 : 어버이를 그리워하며)千里家山萬疊峰(천리가산만첩봉) 천리 먼 고향 만겹 봉우리 저쪽인데歸心長在夢魂中(귀심장재몽혼중) 돌아가고 싶은 마음 늘 꿈길에 있네寒松亭畔雙輪月(한송정반쌍륜월) 한송정 가에는 하늘과 물의 두 둥근 달이요鏡浦臺前一陣風(경포대전일진풍) 경포대 앞에는.. 더보기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 시 2수 몽유광상산시(夢遊廣桑山詩,) 모춘(暮春)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589) 본관 양천(陽川), 호는 난설헌(蘭雪軒). 별호 경번(景樊). 본명 초희(楚姬). 명종 18년(1563년) 강원도 강릉(江陵)에서 출생하였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許筠)의 누나이다.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워 8세 때 이미 시를 지었으며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하였다. 1577년(선조 10) 15세 때 김성립(金誠立)과 결혼하였으나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연이어 딸과 아들을 모두 잃고 오빠 허봉(許峯)이 귀양을 가는 등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詩作)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여인의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으며, 애상적 시풍의 특유한 시 세계를 이룩하였다. 허난설헌이 죽은 후 동생 허균이 작품 일부를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 더보기
여류시인 조씨 시 야행(女流詩人 曹氏 詩 夜行) 조선시대 여류시인 조 씨에 대한 행적은 기록된 바 없다. 그녀의 시 야행은 여인의 밤 나들이 풍경을 그려낸 작품으로 마치 진한 먹빛으로 그려낸 가을밤 산촌 모습의 畵題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풍부한 감성이 담겨 있다. 당시 여인으로 야행이 쉽지 않은 시대임에도 마치 나그네가 하룻밤 쉬어 갈 곳을 찾아가는 모습을 능숙하게 그려낸 그녀의 대담함과 호방함이 나타나 있다. 그 시대의 정경을 멋스럽게 표현한 시를 지금에 살펴보아도 고향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에 손색이 없다. 야행(夜行 : 밤 나들이) - 여류시인 조씨(曹氏) 幽澗冷冷月未生(유간냉냉월미생) 냇가 물은 차고 달도 뜨지 않았는데 暗藤垂地少人行(암등수지소인행) 등 넝쿨 드리워진 오솔길엔 인적도 드물고 村家知在山回處(촌가지재산회처) 산 모퉁이 돌아가면 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