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KBS 역사스페셜에서 방영된 ‘노비 정초부 시인(詩人)이 되다’를 시청한 적이 있는데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다른 문헌을 통해 그 존재만 알려졌던 정초부의 한시집에 그가 지은 약 90수의 시가 들어 있는 초부유고(樵夫遺稿)이 발견됨에 따라 그간의 의문들이 확 풀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18세기 일급 문인으로 분류되는 정약용(丁若鏞), 박제가(朴齊家), 이학규(李學逵) 등 4명의 시만 골라 묶은 필사본 시집 ‘다산시령(茶山詩零)’에 그의 시가 실려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정초부의 명성이 대단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여춘영(呂春永·1734∼1812)의 문집 ‘헌적집(軒適集)’에서도 기록을 찾아냄에 따라 그의 생졸연도, 정초부와 주종(主從)의 관계 등이 명확히 밝혀지게 되어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정초부(鄭樵夫, 1714~1789)는 조선 후기의 노비 시인이다. ‘초부(樵夫)’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대부 여춘영(呂春永)의 집에서 나무를 하고 잡일을 하는 신분이었다.
이러한 정초부가 지은 시 중 동호(東湖)는 조선 후기 서정시(敍情詩)의 백미(白眉)로 손꼽힌다. 이 시는 당시 문인은 물론 무지한 아이들까지 외울 정도로 널리 회자되었던 시이다. 여춘영은 이 시를 “왕공(王公)도 혼자 차지하지 못하고 장사도 억지로 빼앗지 못하는 것”이라고 칭송했다 한다.
여춘영보다 20세가량 많았던 정초부와의 인연이 실로 가연(佳緣)이라 할만하다. 그의 시는 서정성이 풍부하고 회화적인 것이 특징이다. 그가 노비 신분이 아닌 명문가에서 태어났다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여춘영에 의하여 노비로부터 해방되었으나 지독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76세로 쓸쓸히 죽음을 맞게 되자 여춘영은 아들 둘을 데리고 그의 무덤을 찾아 직접 제문을 짓기도 했다.
정초부의 고단한 삶과 시정을 느낄 수 있는 시 몇 수와 말미에 여춘영의 시 한 수를 자서해 보았다.
동호(東湖 : 현재 팔당대교 옥수동 주변의 한강에 이르러)
東湖春水碧於藍(동호춘수벽어람) 동호의 봄 물결은 쪽빛보다 푸르고
白鳥分明見兩三(백조분명견양삼) 또렷하게 보이는 건 두세 마리 해오라기
柔櫓一聲飛去盡(유노일성비거진) 노 젓는 소리에 새들은 날아가고
夕陽山色滿空潭(석양산색만공담) 노을 진 산 빛만이 강물에 가득하다
노초부(老樵夫 : 늙은 나무꾼)
翰墨餘生老採樵(한묵여생노채초) 시인의 남은 생애는 늙은 나무꾼 신세
滿肩秋色動蕭蕭(만견추색동소소) 지게 위에 쏟아지는 가을빛은 쓸쓸하기만 한데
東風吹送長安路(동풍취송장안로) 동풍이 장안 대로에 이 몸을 떠다밀어
曉踏靑門第二橋(효답청문제이교) 새벽녘에 동대문 제이교를 걸어가노라
과객(過客)
江上樵夫屋(강상초부옥) 강가에 있는 나무꾼의 집
元非逆旅家(원비역여가) 과객 맞는 여관이 아니라오
欲知我名姓(욕지아명성) 내 성명을 알고 싶다면
歸問廣陵花(귀문광릉화) 광릉에 가서 꽃에게 물으나 보게
제초부문(祭樵夫文 : 樵夫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읊다) -여춘영(呂春永)
黃壚亦樵否(황로역초부) 저승에서도 나무하는가?
霜葉雨空汀(상엽우공정) 낙엽은 빈 물가에 쏟아진다
三韓多氏族(삼한다씨족) 삼한 땅에 명문가가 많으니
來世托寧馨(내세탁녕형) 내세에는 그런 집에서 부디 태어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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