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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관악산 춘설경(冠岳山 春雪景) 지난 토요일 밤사이 내린 강원도 폭설 소식과 서울에도 눈 예보가 있어 밖을 살펴보니 봄비가 내리고 먼산 정상에는 흰 눈이 내리고 있어 완연한 봄에 내리는 마지막 춘설 구경 욕심에 불현듯 등산복 걸쳐 입고 평소 즐겨 찾는 관악산으로 향했다. 향한 곳은 제일 험하기로 알려진 과천에서 출발하는 6봉(六峯)코스지만 안전한 산행을 위하여 중간쯤 올라 내려올 심사였지만 오를수록 수북하게 쌓인 눈 경치에 이끌려 위험을 무릅쓰고 육봉 정상 국기봉까지 올랐다. 오르는 과정은 오직 나만의 초답(初踏) 흔적을 남기며 주변 설경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 정상에 올라서니 나와 같은 심정으로 산을 찾은 등산객 한 두 분과 반갑게 인사하며 관악산 출설(春雪)에 대한 정담을 나누고 하산 길은 멀어질수록 봄바람에 봄눈 녹 듯이 춘설에.. 더보기
상촌 신흠 인간삼락(象村 申欽 人間三樂) 저 멀리 버드나무 가지 끝에 연초록 물결이 일렁이고 있는 완연한 봄이다. 지난 60여 년을 회고해 보니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기가 3월 말 ~ 4월 초순 경이다. 만물을 소생시키는 생기가 사방에 가득하여 청춘시절로 뒤돌아 가고픈 마음이 간절하고 설레게 하는 시절이기도 하다. 소개하고자 하는 상촌(象村) 선생의 인간삼락(人間三樂) 시는 사립문을 열고, 닫고, 나서고 하면서 즐거움을 찾는, 지극히 자연스러우면 서도 현실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 내가 바라는 소소한 즐거움이란 가족을 포함한 모두가 무탈한 것이며, 내일 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상촌 선생에 대하여는 앞서 자세히 소개하였기에 생략토록 하겠다. 공자, 맹자가 설한 인생의.. 더보기
이백 산중여유인대작(李白 山中與幽人對酌) 어제는 제법 쌀쌀하고 이르지만 텃밭에 감자도 심고, 대파 모종도 옮겨 심었다. 약 100여 평 되는 밭에 퇴비를 뿌리고 삽과 곡괭이로 뒤집어 이랑, 고랑을 만든 후 검정 비닐 멀칭을 씌워 대파 모종 2판, 씨 감자 약 4Kg을 30평 남짓 공간에 심었다. 작년 대파 모종 한판이 8천 원이었는데 만원으로 올랐다. 대파는 누구나 좋아하는 대표적인 작물로 농민 입장에선 모종 값이 꽤 많이 올라 부담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하루 종일 힘든 일로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주변에 간간히 풍겨오는 매화향기와 막걸리 한잔이 피곤함을 달래 주었다. 이즈음 이백의 시 산중대작(山中對酌)이 생각난다. 유인(幽人)이 속세에서 찾아온 사람과 술잔을 나누며 술에 취한 후 찾아온 사람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一杯一杯復一杯’는 지금까지도 .. 더보기
안중근 의사 한시 남아유지출양외(安重根 義士 漢詩 男兒有志出洋外)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는 안중근 의사에 대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별도의 언급은 생략토록 하겠다. 앞서 소개한 일승(日僧) 월성(月性)의 시 장동유제벽(將東遊題壁) 글귀 중 남아입지출향관 학약불성사불환(男兒立志出鄕關 學若不成死不還) 내용은 안의사의 아래 애국 시와 함께 윤봉길(尹奉吉) 의사의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가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겠다)과 일맥(一脈)하고 있다. 이 시에 대한 소개와 출처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당시 정확한 상황 파악에 도움을 주고자 길원 남태욱 교수(안중근 대학)의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安重根) 강의 내용 편을 실어보았다. 악전고투 끝에 패잔병이 되다 지난번 제2차 전투에서 생포한 포로들을 석방해주는 바람에, 안중.. 더보기
택당 이식 영신연(澤堂 李植 詠新燕) 소개하고자 하는 택당 이식(澤堂 李植)의 영신연(詠新燕)은 여강(驪江 : 여주)에 살다가 칠서(七庶)의 옥사(獄事)에 휘말릴까 염려하여 서울로 들어갔다가 부친상을 당하고 부친의 삼년상을 마친 33세에 새로 돌아온 제비를 노래한 것이다. 제비는 예로부터 시의 소제로 많이 등장하는 친숙한 여름 철새로 참새목 제비과에 속한다. 조사자료에 따르면 어미새는 약 5%, 새끼 새는 약 1%가 같은 장소로 돌아온다고 한다. 택당 선생 또한 초봄에 날아온 제비를 바라보며 이처럼 깊고 특색 있게 표현한 멋진 시를 읊었으리라. 뛰어난 학자이자 문신으로 파란만장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의 행장을 기록을 통해 살려보고자 한다. 영신연(詠新燕 : 새로 돌아온 제비를 보고 읊다) 萬事悠悠一笑揮(만사유유일소휘) 잡다한 세상만사 그저 한.. 더보기
석 월성 장동유제벽(釋 月性 將東遊題壁) 장동유제벽(將東遊題壁 : 동으로 나서며 벽에 제하다) 男兒立志出鄕關(남아입지출향관) 남아가 학문에 뜻을 세워 고향을 나서면 學若不成死不還(학약불성사불환) 만약 학문을 성공하지 못하면 죽어도 돌아오지 않으리라 埋骨豈唯先墓地(매골기유선묘지) 어찌 나의 뼈를 선영(先塋)에 묻을 것을 기약하리요 人間到處有靑山(인간도처유청산) 사람이 이르는 곳 모두가 청산인 것을 기억이 희미한 오래전 먼 친척이 해외 유학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때 써준 글귀가 "男兒立志出鄕關 學若不成死不還"이다. 당시 본 대구(對句)에 대한 출처는 알 수가 없었으나 근자에 찾아보니 일본 스님의 선시로 확인되어 함께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 시의 작자는 일본(日本) 막부(幕府) 시대 말(末) 석 월성(釋 月性 : 僧名 월성, 1817 ~ 1856)으로.. 더보기
여류시인 성씨 시 2수 증인,서회차숙손형제(女流詩人 成氏 詩 2首 贈人, 書懷次叔孫兄弟) 성씨(成氏)는 인재 성희(仁齋 成熺 : 조선 전기 한성부원군, 승문원교리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의 딸이다. 진사(進士)인 최당(崔瑭)의 부인으로 대동시선(大東詩選)에 실려 있는 시를 통해 그녀가 가진 재능과 자유분방한 표현으로 보아 당시에 특출한 여성임에 틀림없다. 그녀의 시 증인(贈人)과 서회차숙손형제(書懷次叔孫兄弟)를 통해 뛰어난 작품성과 천재적 재능으로 풍부한 시상(詩想)을 갖춘 그 당시 그녀에 대하여 상상력으로 다가가 보는 것 또한 의미가 있으리라. 증인(贈人 : 벗에게 지어주다) 步出隣家三四呼(보출인가삼사호) 이웃집을 찾아가 서너 번 부르니 小童來報主人無(소동래보주인무) 어린아이 나와 주인은 없다고 하네 若不杖策尋花去(약부장책심화거) 만일 지팡이 짚고 꽃 찾아간 것 아니라면 定是携琴訪酒徒(.. 더보기
왕백 산거춘일(王伯 山居春日) 연일 봄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히고 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는 유래 없는 울진 큰 산불 진화에 큰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만물의 소생을 촉진하는 고마운 단비다. 개인적으로는 전주 화요일 초기 목감기 증상으로 코로나 감염이 우려되어 퇴근 무렵 약국에 들러 충분한 약과 자가진단키트를 구매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 숙소에 머물며 수시 자가진단키트로 확인 결과 3일 후 양성반응이 나옴에 따라 대외 접촉을 차단하고 즉시 선별 진료소에서 PCR 검사받고 다음날 확진 판정을 통보받았다. 하필이면 내가 걸리다니… 누구로부터 감염되었는지 추적해 보았으나 가족은 물론 감염원을 찾지 못하였으며, 아마도 감리검측(監理檢測) 과정에서 시공 근로자로부터 감염되었다고 판단된다. 초기 증상 발생 즉시 사무실 동료나 동선이.. 더보기
노봉 김극기 시 2수 어옹, 통달역(老峰 金克己 詩2首 漁翁, 通達驛) 김극기(金克己. 1150? ~ 1209?) 고려 명종(明宗) 조의 문인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노봉(老峰)이다. 어릴 때부터 문명이 있었으며, 진사가 된 뒤에도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초야에서 시작(詩作)으로 소일하다가, 40대에 이르러 명종의 부름을 받고 의주방어판관(義州防禦判官)이 되었으며, 직한림원(直翰林院)을 거쳐 예부 원외랑(禮部員外郞)일 때 금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김태준(金台俊)은 근거를 밝히지 않은 채 귀국 길에 객사했다고 하였으나, 진정국사호산록(眞淨國師湖山錄)에서는 1209으로 추정되는 기사년(己巳年)에 사망했다고 했으며, 문집 서문에서 6품 당하관(堂下官)으로 죽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귀국한 뒤에 다시 전원생활을 하다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체로 1150년경에 출생하.. 더보기
효봉선사 행장(曉峰禪師 行狀) 근대 고승(高僧)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흥미진진한 면모를 느끼게 되는데 그 대표적 고승이 효봉학눌(曉峰學訥)이다.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후 판사의 길을 걷게 되는 어느 날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언도하게 되면서 자책감과 고뇌로 법복을 벗어던지고 3년간 엿장수로 전국을 떠돌다 우연히 금강산 도인 석두 화상을 만나 구도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30대 후반 늦깎이 중이 된 효봉은 남보다 더 철저한 수행으로 한번 자리에 들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절구통 수좌로 무자 화두를 타파하고 석두 화상(石頭和尙)으루부터 법맥(法脈)을 이어받아 일제강점기, 6.25 사변을 겪으며,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과 불교 정화운동에 앞장선 선지식인의 면모를 살펴보고자 게송(偈頌) 몇 수와 함께 그의 행장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