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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남호 정지상 시선(南湖 鄭知常 詩選) 몇 수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역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 시대적 배경에 어쩔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인물이 너무나 많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 신분의 벽, 불의에 항거한 수많은 이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대표적인 사례로 27세 나이로 요절한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노비 시인 정초부(鄭樵夫. 1714~1789) 등이 있다. 묘청의 난에 연루되어 생을 마감한 남호 정지상 또한 이와 같음이라. 남호가 남긴 시는 20 여수에 불과하지만 후세 문인들은 그 천재성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진 시 송인 등 몇 수를 살펴보고자 한다. 남호 정지상(南湖 鄭知常. ? ~ 1135) 고려 전기 좌정언(左正言), 좌사간(左司諫) 등을 역임한 관리이자 문신으로 서.. 더보기
경허 성우선사 행장(鏡虛 惺牛禪師 行狀) 30여 년 전인가? 최인호(崔仁浩. 1945~2013)의 "길 없는 길" 1~4권을 단박에 읽고 앞서 소개한 경허선사의 게송(偈頌) "세여청산하자시(世與靑山何者是)"를 소개한 바 있다. 당시 주말이면 자주 찾았던 청계산 청계사(淸溪寺)는 경허가 태어난 해에 부친을 여의고 9살에 경기도 의왕에 있는 이곳에서 출가했다. 경허(鏡虛)는 1846년부터 1912까지 살았던 조선 말기의 승려다. 일자무식이었던 그는 17세에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사서삼경(四書三經)과 불교경론(佛敎經論), 제자백가(諸子百家)를 섭렵(涉獵)했고 31세 때 깨달음을 얻어 서산대사 이후 맥이 끊겼던 선종의 계보를 이은 실존인물이다. 이미 고인이 된 가톨릭 신자인 최인호는 경허의 행적을 세밀히 추적, 심도 있는 내용으로 그 당시 불교를 몰랐.. 더보기
나업 시 상춘, 탄유수(羅鄴 詩 賞春, 嘆流水) 나업(羅鄴. 825?~900?)은 당인(唐人)으로 위항(余杭:항저우의 지역명)에서 태어났다. 당(唐) 제18대 황제 희종(僖宗) 시대 전후의 인물로 재지(才智)가 뛰어났으며, 부(父)는 염철사(鹽鐵使 : 옛날 소금과 철에 관한 세금을 맡아보던 벼슬 이름)로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만당(晩唐)의 사회 현실과 개인의 이력 사이에서 갈등했던 그는 영물시(詠物詩 : 자연과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사물을 대상으로 하여 정확하고 세밀하게 묘사한 시 가운데 하나)를 통해 당시의 처지를 표출하고자 했다. 당재자전(唐才子傳 : 당나라의 시(詩)와 문학을 반짝이게 하는 천재와 기인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 권(卷) 8, 당시기사(唐詩紀事) 권(卷) 69 등의 기록에 나온 것처럼 나은(羅隱), 나규(羅虬)와 함께 삼나(三羅).. 더보기
신라 구도승 혜초 왕오천축국전(新羅 求道僧 慧超 往五天竺國傳) 혜초(慧超, 704~787)는 신라 시대의 승려이다. 밀교(密敎 : 부처의 깨우친 진리를 직설적으로 은밀하게 표출시킨 대승불교의 한 종파)를 연구하였고, 인도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겼다. 719년 중국의 광주(廣州)에서 인도 승려 금강지(金剛智)에게 배웠고, 723년경에 4년 정도 인도 여행을 한 뒤, 733년에 장안의 천복사에 거주하였으며, 780년에는 중국 오대산에서 거주하며 생을 마감하였다고 전해진다. 혜초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우연 일치(偶然一致) 치고는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중국 돈황석굴에서 1200년 만에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은 중국으로서는 통탄할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는 1897년 경 돈황(敦煌)의 천불동(千佛洞)에서 왕도사로 알려진 왕원록(王圓籙)에 의하여 처음으로 발견되.. 더보기
혜암스님 게송 3수(慧菴스님 偈頌 3首) “공부하다 죽어라”로 유명한 혜암(慧菴. 1920~ 2001) 스님 은 혜암은 법호(法號)이고 법명은 성관(性觀)이다. 혜암(慧菴) 종정(宗正)스님은 1946년 가야산 해인사(伽倻山 海印寺)에 출가한 날로부터 평생토록 눕지 않고 정진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와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일일일식(一日一食)을 하며 오로지 위법망구(爲法亡軀)의 두타 고행정진(頭陀 苦行精進)으로 참선수행(參禪修行)에만 몰두해온 본분종사(本分宗師)이며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승(禪僧)이다. 일생을 청정(淸淨)한 수행자로 올 곧게 살아온 스님은 성철 방장(性徹 方丈)의 뒤를 이어 해인총림(海印叢林)의 방장(方丈)을 역임하였으며, 1994년 4월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元老會議 議長), 1999년 4월 조계종 종정(宗正)으로 추대(推戴)되었.. 더보기
관악산 춘설경(冠岳山 春雪景) 지난 토요일 밤사이 내린 강원도 폭설 소식과 서울에도 눈 예보가 있어 밖을 살펴보니 봄비가 내리고 먼산 정상에는 흰 눈이 내리고 있어 완연한 봄에 내리는 마지막 춘설 구경 욕심에 불현듯 등산복 걸쳐 입고 평소 즐겨 찾는 관악산으로 향했다. 향한 곳은 제일 험하기로 알려진 과천에서 출발하는 6봉(六峯)코스지만 안전한 산행을 위하여 중간쯤 올라 내려올 심사였지만 오를수록 수북하게 쌓인 눈 경치에 이끌려 위험을 무릅쓰고 육봉 정상 국기봉까지 올랐다. 오르는 과정은 오직 나만의 초답(初踏) 흔적을 남기며 주변 설경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 정상에 올라서니 나와 같은 심정으로 산을 찾은 등산객 한 두 분과 반갑게 인사하며 관악산 출설(春雪)에 대한 정담을 나누고 하산 길은 멀어질수록 봄바람에 봄눈 녹 듯이 춘설에.. 더보기
상촌 신흠 인간삼락(象村 申欽 人間三樂) 저 멀리 버드나무 가지 끝에 연초록 물결이 일렁이고 있는 완연한 봄이다. 지난 60여 년을 회고해 보니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기가 3월 말 ~ 4월 초순 경이다. 만물을 소생시키는 생기가 사방에 가득하여 청춘시절로 뒤돌아 가고픈 마음이 간절하고 설레게 하는 시절이기도 하다. 소개하고자 하는 상촌(象村) 선생의 인간삼락(人間三樂) 시는 사립문을 열고, 닫고, 나서고 하면서 즐거움을 찾는, 지극히 자연스러우면 서도 현실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 내가 바라는 소소한 즐거움이란 가족을 포함한 모두가 무탈한 것이며, 내일 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상촌 선생에 대하여는 앞서 자세히 소개하였기에 생략토록 하겠다. 공자, 맹자가 설한 인생의.. 더보기
이백 산중여유인대작(李白 山中與幽人對酌) 어제는 제법 쌀쌀하고 이르지만 텃밭에 감자도 심고, 대파 모종도 옮겨 심었다. 약 100여 평 되는 밭에 퇴비를 뿌리고 삽과 곡괭이로 뒤집어 이랑, 고랑을 만든 후 검정 비닐 멀칭을 씌워 대파 모종 2판, 씨 감자 약 4Kg을 30평 남짓 공간에 심었다. 작년 대파 모종 한판이 8천 원이었는데 만원으로 올랐다. 대파는 누구나 좋아하는 대표적인 작물로 농민 입장에선 모종 값이 꽤 많이 올라 부담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하루 종일 힘든 일로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주변에 간간히 풍겨오는 매화향기와 막걸리 한잔이 피곤함을 달래 주었다. 이즈음 이백의 시 산중대작(山中對酌)이 생각난다. 유인(幽人)이 속세에서 찾아온 사람과 술잔을 나누며 술에 취한 후 찾아온 사람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一杯一杯復一杯’는 지금까지도 .. 더보기
안중근 의사 한시 남아유지출양외(安重根 義士 漢詩 男兒有志出洋外)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는 안중근 의사에 대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별도의 언급은 생략토록 하겠다. 앞서 소개한 일승(日僧) 월성(月性)의 시 장동유제벽(將東遊題壁) 글귀 중 남아입지출향관 학약불성사불환(男兒立志出鄕關 學若不成死不還) 내용은 안의사의 아래 애국 시와 함께 윤봉길(尹奉吉) 의사의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가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겠다)과 일맥(一脈)하고 있다. 이 시에 대한 소개와 출처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당시 정확한 상황 파악에 도움을 주고자 길원 남태욱 교수(안중근 대학)의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安重根) 강의 내용 편을 실어보았다. 악전고투 끝에 패잔병이 되다 지난번 제2차 전투에서 생포한 포로들을 석방해주는 바람에, 안중.. 더보기
택당 이식 영신연(澤堂 李植 詠新燕) 소개하고자 하는 택당 이식(澤堂 李植)의 영신연(詠新燕)은 여강(驪江 : 여주)에 살다가 칠서(七庶)의 옥사(獄事)에 휘말릴까 염려하여 서울로 들어갔다가 부친상을 당하고 부친의 삼년상을 마친 33세에 새로 돌아온 제비를 노래한 것이다. 제비는 예로부터 시의 소제로 많이 등장하는 친숙한 여름 철새로 참새목 제비과에 속한다. 조사자료에 따르면 어미새는 약 5%, 새끼 새는 약 1%가 같은 장소로 돌아온다고 한다. 택당 선생 또한 초봄에 날아온 제비를 바라보며 이처럼 깊고 특색 있게 표현한 멋진 시를 읊었으리라. 뛰어난 학자이자 문신으로 파란만장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의 행장을 기록을 통해 살려보고자 한다. 영신연(詠新燕 : 새로 돌아온 제비를 보고 읊다) 萬事悠悠一笑揮(만사유유일소휘) 잡다한 세상만사 그저 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