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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이제현 산사조취(李齊賢 山舍朝炊) 익재(益齋)선생의 시를 접하다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동안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한편의 시 속에 그 당시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른 아침 저 멀리 밥 짓는 연기가 아련히 피어 오르는 평화로운 산사(山舍)의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듯 멋지게 표현한 시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山舍朝炊(산사조취 : 산촌의 아침 굴뚝연기) 山下誰家遠似村(산하수가원사촌) 마을 저 멀리 산 아래 누구의 집인가? 屋頭烟帶大平痕(옥두연대대평흔) 지붕에 피어나는 연기 평화로운 풍경 時聞一犬吠籬落(시문일견폐리락) 때때로 무너진 울타리 개 짖는 소리 들리니 乞火有人來扣門(걸화유인래구문) 불씨 꾸러 온 사람이 문을 두드리는 것 이리. 앞서 익재(益齋)선생은 마하연(摩訶衍), 산중설야(山中雪夜)에서 소개한 .. 더보기
야운비구 자경문 게송 2 수(野雲比丘 自警文 偈頌 2 首)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자 라는 말은 현시점에서 뜻을 세운 당초 각오(覺悟)를 되세겨보자는 의미이다. 초심(初心)의 어원은 한국 불가에서 사미승(沙彌僧)이 되기 전 행자(行者) 시절에 반드시 배워야 하는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에서 시작되었다. 초발심(初發心)은 처음 불교를 수행하고자 마음을 내었을 때, 자경문(自警文)은 스스로 경책 하는 글이라는 뜻으로, 합쳐서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인 것이다. 초발심자경문은 세 명의 고승이 집필한 것을 후대에 행자 교육용으로 합본(合本)하였다. 맨 처음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은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가 목우자(牧牛子)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고, 둘째 번에는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쓴 초발심수행장(初發心修行章)이 있다. 세 번째는 야운비구(野雲比丘.. 더보기
부설거사 팔죽시(浮雪居士 八竹詩) 부설거사(浮雪居士)는 앞서 사부시(四浮詩)에서 소개하였기에 생략토록 하겠다. 부설거사가 입적하기 전에 남겼다는 명시 팔죽시(八竹詩)가 있다. 시 마지막 구절마다 대죽(竹)자가 들어가는데 이를 음역하여 우리말의 뭐, 뭣 ~대로의 뜻으로 대죽자를 넣어 지은 시다. 부설거사는 신라 27대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善德女王 ? ~ 647)시대의 승려로, 지금으로부터 약 1,300여년 전에도 대나무 죽(竹)의 뜻인 “대”를 이런”대”로 저런”대”로, 현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세상사가 자신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타고난 욕망인 권력, 재물, 명예욕에서 벗어나 허망을 버리고 주어진 환경에서 순리에 순응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지혜롭게 살라하는 일갈(一喝)의.. 더보기
남명 조식 제문견사송정(南冥 曺植 題聞見寺松亭)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 ~ 1572) 조선 중기 남명학파를 창시한 대유학자이며,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방장노자(方丈老子), 방장산인(方丈山人), 산해선생(山海先生)이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자세한 행장은 앞서 남명 조식 시 몇 수에서 소개하였기에 생략토록 하겠다. 남명선생은 사림(士林)의 계보와 붕당을 설명할 때 북인의 시조 중 한 사람으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조선 성리학의 거두로, 당시로서는 특이하게도 철저히 의(義)를 중시하고 현실 정치를 강하게 비판하여 파장을 일으켰다. 권력자들을 배출하여 후대까지 학파를 보존한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에 비해 인지도가 낮지만 당대에는 그들에 비견되는 명성을 떨쳤으며, 지금도 진주를 중심으로 한 서부 경상남도 권.. 더보기
이규보 설중방우인불우(李奎報 雪中訪友人不遇) 백운거사 이규보는 앞서 많이 소개해 왔기에 생략토록 하겠다. 가도(賈島), 위야(魏野)의 시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와 같은 의미를 느끼게 하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의 시 설중방우인불우(雪中訪友人不遇)는 눈 쌓인 먼 길 벗을 찾아왔지만 만나지 못하고 자신의 이름을 눈에 새겨 흔적을 남기고 떠나는 모습이 한폭의 동양화를 그려내는 듯 한 풍경과 여운을 남기고 있다. 雪中訪友人不遇(설중방우인불우 : 눈속에 친구를 찾아왔다 만나지 못함) 雪色白於紙(설색백어지) 쌓인 눈 색이 종이보다 더욱 희길래 擧鞭書姓字(거편서성자) 채찍 들어 내 이름을 그 위에 썼지 莫敎風掃地(막교풍소지) 바람아 불어서 땅 쓸지 마라 好待主人至(호대주인지)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려 주렴. 더보기
이인로 강천모설(李仁老 江天暮雪) 출근 길 옅게 흩날리던 눈이 금새 그쳤다. 내일은 올 들어 가장 추운날씨가 예보되어 있어 본격 겨울로 접어든 느낌이다. 소개하고자 하는 이인로(李仁老)의 시 강천모설(江天暮雪)의 느낌은 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에 등장하는 강, 도롱이 쓴 노인, 잔잔히 흐르는 시간 등이 겹쳐 나오는데 , 그 분위기는 반전은 마지막 구절에서 취한 노인이 말하는 눈이 마치 버들 꽃 날리는 모습으로 착각 한 듯 사뭇 봄을 기다리는 희망적 바램이 내재되어 있어 여운을 남기게 한다. 이인로(李仁老, 1152~1120)는 앞서 소개한 바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원(慶源). 자는 미수(眉叟), 호는 와도헌(臥陶軒)이다. 정중부의 난을 피해 승려가 되었다가 환속하여 명종 10년 문과에 급제한 뒤 문극겸의 .. 더보기
백거이 문유십구(白居易 問劉十九) 당나라의 저명한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앞서 소개하였기에 생략토록 하겠다. 소개하고 자 하는 시는 문유십구(問劉十九 : 대가족 제도하에서 유씨 집안의 형제들 가운데 그 서열이 열아홉 번째에 해당되는 사람으로 백거이와 절친한 유우석(劉禹錫)을 가리킴)로 잘 익은 따뜻한 술과 소박한 안주, 추위를 달래 줄 조그만 화로, 어둑해 질 무렵 눈이 곧 펑펑 쏟아질 것 같은 분위기에 절친인 유우석에게 술 한잔 청하고자 하는 백거이의 심경이 멋지게 표현한 시를 자서해 보았다. 어찌 막걸리 한잔 없이 이 시를 접하고 쓰겠는가? 문유십구(問劉十九 : 절친 유우석에게 묻다) 綠蟻新醅酒(녹의신배주) 푸른 거품 부글부글 새로 담은 술 紅泥小火爐(홍니소화로) 붉은 질화로에 새빨갛게 타는 숯불 晩來天欲雪(만래천욕설.. 더보기
문곡 김수항 설야독좌(文谷 金壽恒 雪夜獨坐) 문곡 김수항(文谷 金壽恒. 1629 ~ 1689) 조선 후기 예조판서,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 김극효(金克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상관(金尙寬)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광찬(金光燦)이며, 어머니는 목사 김내(金琜)의 딸이다. 소개하고자 하는 김수항의 시 설야독좌는 그의 나이 17세던 1645년 한겨울의 소회를 담고 있다. 다음 해 2월에 치러진 진사시에 장원급제한 것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의 앞날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혼탁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지던 정국이 타 들어가는 등잔불에 고스란히 스며있다. 눈이 아무리 대지를 하얗게 뒤덮어도 나라를 걱정하는 청년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한 여.. 더보기
야보도천 선시(冶父道川 禪詩) 2수 야보(冶父 : 이름의 경우 " 야부"가 아닌 "야보"로 발음하는 것이 옳다 )의 속성은 추(秋)씨이고 이름은 삼(三)이다. 생몰연대가 불분명하나 宋나라 때 활동한 것으로 나타난다. 도겸선사(道謙禪師)에게 도천(道川)이라는 법명을 받았고 정인계성(淨因繼成)의 인가를 얻어 임제(臨濟)의 6세손이 되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야보는 특히 금강경을 통해 자신의 선지나 가르침을 후학에게 전했다. 그 전하는 방법은 주로 송이나 시로 이루어졌는데 매우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전하는 활구(活句)가 백미로 통한다. 앞 게송(山堂靜夜...) 간략하게 소개한 바와 같이 야보선사의 게송은 사찰주련에 자주 볼 수 있다. 선시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의 시 2수를 자서해 보았다. 其一. 借婆衫子拜婆門(차파삼자배파문) 노파.. 더보기
료칸화상 시 반야(良寬和尙 詩 半夜) 료칸화상(良寬和尙 1758~1831)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 후기(後期) 조동종(曹洞宗)의 선승(禪僧)으로 가인(歌人), 한시인(漢詩人), 서예가로도 이름이 높다. 속명은 산본영장(山本榮藏), 이후 문효(文孝)로 불려졌으며, 호는 대우(大愚)를 썼다. 전국을 유랑(流浪)하다 문화원년(文化元年)에 고향인 국상산(國上山) 국상사(國上寺)에 정착했다. 고결한 인품으로 모든 이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특히 “천진한 아이들 마음이 부처의 마음”이라며 민중들과 거리낌없이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우리 세대에 한번쯤 읊어보면 감흥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의 선시(禪詩) 한 수를 자서(自書)해 보았다. 반야(半夜 : 한밤중에 읊다) 回首六十有餘年(회수오십유여년) 지나간 육십 여 년 회고해 보니(원문은 五十) 人間是非..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