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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바위에 오명을 새기는 일 가끔 산행을 하다 보면 풍광이 뛰어난 반듯한 바위에 깊게 새겨 있는 이름이나 글귀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멋진 필체로 명사의 글귀나 이름을 새긴 경우라도 본래 자연훼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며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 없지만 이왕 새겨져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하물며 졸장부들이 이름 석자를 바위에 남겨 지나가는 이로 하여금 얼굴을 찌푸리게 할 뿐만 아니라 바위에 지워지지 않은 흉측 한 문신으로 남은 오명(汚名)은 후손들이 오랫동안 부끄러운 멍에를 짊어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단체 등산 인구가 늘다 보니 흰색 페인트로 표시를 하거나 나무가지에 질긴 끈으로 묶어 이정표로 삼는 행위는 나무에 목을 메는 행위나 다름이 없다. 앞으로는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 .. 더보기
한장석 전가잡흥(韓章錫 田家雜興) 미산 한장석(眉山 韓章錫, 1832-1894)은 개항기(開港期)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치수(穉綏),치유(穉由), 호는 미산(眉山), 경향(經香)이며, 한필교(韓弼敎)의 아들이다. 1872년(고종 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73년 홍정후(洪正厚)와 같이 홍문관(弘文館)의 부수찬(副修撰)이 되고 교리와 부응교(副應敎)를 거쳐 1881년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이 되었다. 1882년 이조참의(吏曹參議)를 거쳐 1883년 1월에는 통리내무아문(統理內務衙門)을 개편하여 만든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의 협판군국사무(協辦軍國事務)에 임명되어 호무(戶務)에 종사하였다. 같은 해 5월 통리군국사무아문에서 전선사(典膳司)를 관장하며 별시회시시관(別試會試試官)을 역임하였으며, 11월 예.. 더보기
옥봉 백광훈 기양천유(玉峯 白光勳 寄梁天維) 옥봉 백광훈(玉峯 白光勳 1537년~1582년)은 앞서 홍경사(弘慶寺)에 소개한 바 있는 조선중기 삼당시인(三唐詩人 : 조선 중종~선조 연간에 시명을 떨친 3인으로 백광훈(白光勳), 이달(李達), 최경창(崔慶昌)을 일컬음)의 한사람으로 본관은 해미(海美). 자는 창경(彰卿), 호는 옥봉(玉峯)이다. 소개하고자 하는 옥봉의 시 기양천유((天維 : 백광훈의 고향친구이자 시문을 같이 논한 양산형(梁山迥)을 말함)는 친구에게 보내는 시로 화창한 봄날 남산에서 취흥(醉興)에 겨워 남긴 시를 행서체로 자서해보았다. 寄梁天維(기양천유 : 친구 양천유에게) 昨日南山飮(작일남산음) 어제 남산에서 술 마시다가 君詩醉未酬(군시취미수) 그대의 시에 취하여 화답 못했네. 覺來花在手(각래화재수) 깨어 보니 꽃잎이 내 손에 있어 .. 더보기
매화 관련 한시 : 소식 홍매 3수(梅花 關聯 漢詩 : 蘇軾 紅梅三首) 앞서 소개한바 있는 소식(蘇軾 . 1037~1101)은 북송(北宋)의 문학가이자 서화가로 자는 자첨(子瞻), 화중(和仲)을 썼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이다. 미주(眉州) 미산(眉山), 지금의 쓰촨성(四川省) 사람이다. 인종(仁宗) 가우(嘉祐) 2년(1057)에 아우 소철(蘇轍)과 함께 진사가 된 뒤 벼슬을 살다가 중앙에서 쫓겨나 오랫동안 변방에서 고초를 겪었다. 시(詩), 사(詞), 문(文), 서(書), 화(畵)에 두루 능하여 중국에서도 역사상 드물게 다방면에 걸쳐 예술적 성취를 이룬 중국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소개하고자 하는 소식(蘇軾)의 시 홍매3수는 그의 나이 40대 후반에 지은 시로 동시대 연배인 석연년(石延年. 994~1041. 북송(北宋)의 문학가이자 서법가)의 시 홍매(紅梅)란 시를 보고 .. 더보기
양만리 우자찬(楊萬里 又自贊) 앞서 소개한 남송사대가(南宋四大家)인 성재 양만리(誠齋 楊萬里 1127 ~ 1206) 시 한수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가 남긴 약 4,200 여 수는 주로 자연풍광과 전원(田園)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하였으며, 목가적(牧歌的)인 요소를 담고 있기에 중국인들로 부터 많은 사랑받고 있다. 그 중 우자찬(又自贊) 한수를 자서해 보았다. 又自贊(우자찬 : 다시 스스로 읊다) 淸風索我吟(청풍색아음)​ 청풍은 날 찾아와 시를 읊으라 하고 明月勸我飮(명월권아음)​ 명월은 날 불러 술을 마시라 권하네. 醉倒落花前(취도낙화전)​ 내가 취하여 떨어진 꽃 위로 쓰러지니 天地卽衾枕(천지즉금침)​ 하늘과 땅이 이부자리요 베게 로다. 더보기
양만리 납전월계(楊萬里 臘前月季) - 화무십일홍 유래 앞서 소개한 남송(南宋)의 시인 양만리(楊萬里 )의 시 납전월계((臘前月季)를 통하여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유래를 살펴보고자 한다. 한달 남지 않은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는 박빙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당선되면 5년간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되는데 이전 대통령의 말로(末路)는 어김없이 영어(囹圄)의 처지가 되고 만다. 5년 후 부끄러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현명한 국민의 판단과 선택이 요구되어 진다. 과거에도 절세미인이나 막강한 권력자들에 대한 풍자적인 말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 회자된다. 즉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고 해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 이와 같이 세상사 호시절이 오래갈 수 없듯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 더보기
입춘관련 한시 2수(장식 입춘우성, 양만리 입춘일) 입춘이 며칠 지났지만 여전히 추운 날씨이다. 앞서 연암 박지원의 전가(燕巖 朴趾源 田家)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새해의 기준을 역술학계(曆術學界)는 동지(冬至)를, 철학인협회(哲學人協會)는 입춘(立春)으로 삼다 보니 철학인의 입장에서는 입춘은 새해의 첫날이라 해가 바뀌고 만물이 생기를 움터는 시기라 기대와 설렘으로 맞이하며 옛사람들은 입춘에 관한 시를 많이 남겼다. 소개하고자 하는 입춘관련 한시는 중국 남송시대(南宋時代)를 대표하는 장식(張栻)의 입춘우성과 양만리(楊萬里 )의 입춘일을 자서와 함께 남녘에서 입춘일에 핀 홍매 소식을 올려 보았다. 특히 양만리는 한평생 2만 여수에 달하는 시를 썼다 하나, 현전(現傳)하는 시는 약 4,200 여수에 이른다. 앞으로 자연풍광을 소재로 신선한 감동을 선사하는 양만.. 더보기
구봉 송익필 산중, 망월, 산행(龜峰 宋翼弼 山中, 望月, 山行) 겨울의 정점을 지나 이제 봄을 향해 가고 있다. 정보통신 감리업무 수행을 위해 세종에 머물고 있는데 아침 출근 길 진눈깨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올라간 탓인지 지금은 비로 변해 치적치적 내리고 있다. 이후 조석으로 영하의 날씨는 지속 되겠지만 어김없이 봄은 우리 문턱에 다가올 것이다. 일주일 후면 설날이라 부모님이 계신 울산에 다녀오는데 그때 마다 근처 매화가 피어 반겨 주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피어있는 모습을 기대해 보며 겨울비 내리는 날 구봉선생의 시 세수를 올려 본다. 山中(산중 : 산속에서) 獨對千峯盡日眠(독대천봉진일면) 천봉우리 홀로 바라보니 졸음에 해 저무는데 夕嵐和雨下簾前(석람화우하렴전) 저녁 산기운 어렴풋이 비와 어우러져 주렴 앞에 내린다. 耳邊無語何曾洗(이변무어하증세) 세상 잡설 들리지 않으.. 더보기
순암 안정복 운산음(順菴 安鼎福 雲山吟) 순암 안정복(順菴 安鼎福. 1712 ~ 1791)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본관 광주(廣州). 자 백순(百順). 호 순암(順菴). 시호 문숙(文肅)이다. 1721년(경종 1) 10세에 처음으로 학문의 길에 들어섰다. 경학은 물론, 역사·천문·지리·의약 등에 걸쳐 넓고도 깊은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익(李瀷)을 스승으로 삼고 과거를 외면한 채 여러 학문을 섭렵했으며 특히 경학(經學)과 사학(史學)에 뛰어났다. 주자학적인 경학(經學)설에 따라 만사를 판단하면서도 경학은 어디까지나 경세(經世)적이어야 한다는 지론이었다. 경세치용(經世致用)의 경세론을 학문과 현실에 연결시키고, 그 정신으로 불합리한 현실을 극복하려고 노력한 실학자로 남인에 속했다. 뒤 늦게 학문과 덕행이 널리 알려지면서, 1749년(영조 25.. 더보기
연암 박지원 연암억선형(燕巖 朴趾源 燕巖憶先兄)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7~1805)은 앞서 전가(田家)에서 소개한 바 있다. 비록 우수한 산문을 남긴데 비해 시는 매우 적다. 하지만 깊이 있는 내용으로 우리에게 의미 있는 지혜를 선사한다. 소개하자 하는 시 또한 동 시대에 극찬을 받은 연암억선형(燕巖憶先兄)을 살펴보고자 한다. 흔히 “형은 부모 맞재비” 라는 말이 있듯이 연암은 자신보다 18년 먼저 세상을 등진 형에 대한 그리움을 아버지와 형, 자신을 대입시켜 읽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와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燕巖憶先兄(연암억선형 : 연암이 앞서 간 형을 그리워 하며..) 我兄顔髮曾誰似(아형안발증수사) 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가? 每憶先君看我兄(매억선군간아형) 돌아가신 아버님 그리울 때마다 우리 형님 쳐다봤지 今日..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