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산행을 하다 보면 풍광이 뛰어난 반듯한 바위에 깊게 새겨 있는 이름이나 글귀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멋진 필체로 명사의 글귀나 이름을 새긴 경우라도 본래 자연훼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며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 없지만 이왕 새겨져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하물며 졸장부들이 이름 석자를 바위에 남겨 지나가는 이로 하여금 얼굴을 찌푸리게 할 뿐만 아니라 바위에 지워지지 않은 흉측 한 문신으로 남은 오명(汚名)은 후손들이 오랫동안 부끄러운 멍에를 짊어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단체 등산 인구가 늘다 보니 흰색 페인트로 표시를 하거나 나무가지에 질긴 끈으로 묶어 이정표로 삼는 행위는 나무에 목을 메는 행위나 다름이 없다. 앞으로는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북한 영상을 보면 명승지 바위마다 김일성 일족을 찬양하는 문구가 깊게 새겨져 있어 통일 후 복원 하는데 만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될 것이며, 세계인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조롱의 대상이 될 것이 뻔하다.
이러한 행위를 앞서 소개한 대학자 이신 조남명(曺南冥) 선생께서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것에 대한 부끄러운 행위를 글로 남겨 경계하고자 했던 내용이 한국고전번역원에 실려 있어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일은
大丈夫名字 當如靑天白日 太史書諸冊 廣土銘諸口 區區入石於林莽之間 㹳狸之居 求欲不朽 邈不如飛鳥之影 後世果烏知何如鳥耶
(대장부명자 당여청천백일 태사저저책 광토명저구 구구입석어림망지간 오리지거 구욕불후 막불여비조지영 후세과오지하여조야)
대장부의 이름은 마치 푸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아, 사관이 책에 기록해두고 넓은 땅 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구차하게도 너구리들이 사는 수풀 속 돌에 이름을 새겨 썩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아득히 날아가 버린 새의 그림자만도 못한 것이니, 후세 사람이 과연 무슨 새였는지 어찌 알겠는가?
- 조식(曺植, 1501-1572), 『남명집(南冥集)』 권2, 「유두류록(遊頭流錄)」
[해설]
남명(南冥) 조식(曺植 )은 1558년 4월 10일부터 26일까지 지리산 청학동을 유람하였다. 그가 찾아간 청학동은 현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불일폭포 일대를 일컫는다. 4월 19일, 아침 일찍 청학동으로 오르던 남명 일행은 큰 바위에 새겨진 ‘이언경(李彦憬)‧홍연(洪淵)’이라는 이름을 보았다. 호랑이도 나온다는 이 험하고 깊숙한 골짜기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후세에 전하려 한 것을 보고, 남명은 그때의 불편한 심기를 위와 같이 표출하였다. 실질이 아닌 허명(虛名)을 전하려는 속인들의 헛된 욕망을 냉철하게 꼬집은 것이다.
현실인식이 투철했던 남명은 일생 출사하지 않고 퇴처(退處)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결코 현실을 잊지 않고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였으며, 정치의 폐단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때로는 목숨을 건 과감한 직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남명에게 숲속 바위에 이름을 새겨 후세에 남기려 한 이런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로 다가 왔을 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러한 촌철살인의 비판은 지역의 후인에게 전승되어, 지금도 커다란 울림이 되고 있다.
근년에 온 세상이 듣도 보도 못한 대혼란을 겪고 있다. 우리는 매 순간 불안한 상태로 삶을 견뎌내고 있다. 마치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는 부평초를 연상케 한다. 20-30대 젊은 세대가 더욱 흔들리고 있다. 준엄한 시선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자기 안의 확신을 다진 ‘큰 어른’이 그리운 시절이다. 글쓴이 강정화(경상국립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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