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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소동파 유씨이외생구필적(蘇東坡 柳氏二外㽒求筆跡) 一首 예로부터 서예인에게 구노(具老)의 도(道)로서 퇴필여산(退筆如山 : 다 써 달아버린 붓이 산을 이룸)의 의미를 강조하였고 추사(秋史)선생께서도 벼루 3개는 구멍을 낼 정도로 수많은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과정을 거쳐서 비로서 나름의 경지를 이룬다고 했다. 소개하고 하는 소동파(蘇東坡)의 시 유씨이외생구필적(柳氏二外㽒求筆跡) 2수 중 한 수로 1074년 당대(唐代) 명필인 유공권(柳公權. 778~865)의 후손 유근(柳瑾)의 집에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참석한 소동파에게 유근의 두 아들이 글씨를 청함에 따라 써준 시로 퇴필여산의 뜻을 살펴보고자 한다. 같은 의미로 퇴필총(退筆塚), 패필성구(敗筆成丘)가 있다. 칠언절구 중 주로 앞 두 구절을 인용하기도 한다. 柳氏二外㽒求筆跡(유씨이외생구필적 : 유씨 두 조카가.. 더보기
정종 퇴휴오로재(鄭種 退休吾老齋) 정종(鄭種. 1417~1476) 조선 전기 고령출신의 무신으로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묘부(畝夫), 호는 오로재(吾老齋)이다. 할아버지는 정절공(靖節公) 설학재(雪壑齋) 정구(鄭矩)이다. 정종(鄭種)은 무과에 등제하여 1453년 이징옥(李澄玉)의 난 때 그를 포살한 공으로 군공(軍功) 1등, 1454년(단종 2) 세조의 즉위를 도와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그리고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는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책록(策錄)되고 행충무위상호군겸오위장에 임명되었으며, 처음 칠산군(漆山君)에 봉하여졌다가 곧이어 동평군(東平君)으로 개봉되었다. 이후 충좌위부사정(忠佐衛副司正)을 지냈으며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고령군 덕곡면에 있는 반암서원(盤巖書院)와 경상남.. 더보기
이규보 산석영정중월(李奎報 山夕詠井中月) 백운거사 이규보(白雲居士 李奎報 1168~1241) 고려 중기 문신이자 문인인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은 앞서 소개하였기에 생략토록 하겠으며, 경전(經典과 사기(史記), 선교(禪敎)를 섭렵한 당대의 명문장가가 지은 영정중월(詠井中月)은 시제(詩題)보다 산승탐월색(山僧貪月色)으로 알려져 있는데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이규보 시문집)에는 산석영정중월(山夕詠井中月)로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시제(詩題)가 영정중월로 통용되고 있다. 이 시는 우물 속에 잠긴 달을 읊은 작품으로, 산승(山僧)이 달빛을 사랑하여 물을 길으며 달을 함께 담아오지만, 절에 이르러서는 물병을 기울이면 달도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달빛은 마냥 물 속에 풀려 있는 것이 아니며, 달이 사라지면 달빛도 사라지.. 더보기
당 시인 왕건 우과산촌(唐 詩人 王建 雨過山村) 왕건(王建. 767∼830) 중국 당(唐)나라 시인으로 자는 중초(仲初). 영천(潁川: 南省 許昌市) 출생하였으며, 775년 헌종(憲宗) 원화(元和) 때 처음으로 벼슬하여 소응현승(昭應縣丞)이 되었다. 태부시승(太府寺丞)과 태상시승(太常寺丞), 비서승(秘書丞)을 역임했다. 문종(文宗) 대화(大和) 연간에 섬주사마(陜州司馬)로 나가 왕사마(王司馬)로도 불린다.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함양(咸陽)에 은거했다. 일생을 한직(閑職)에서 불우하게 지냈다. 악부시(樂府詩)에 능해 장적(張籍)과 이름을 나란히 해서 ‘장왕악부(張王樂府)’라 불렸다. 하층 민중들의 생활상을 시로 노래했으며, 특히 궁사(宮詞 : 시체(詩體)의 하나. 주로 궁중의 생활을 소재로 하였으며, 칠언절구가 많다) 1백 수가 있어 인구에 널리 회자되.. 더보기
초려 이유태 약산동대(草廬 李惟泰 藥山東臺) 초려 이유태(草廬 李惟泰. 1607∼1684).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이며,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 시호는 문헌(文憲)이시다. 유일(遺逸 : 조선 초기에 만든 제도로, 초야에 묻힌 재능있는 선비를 천거하여 관직에 임명하는 제도)로 천거를 받아 인조 때 세자사부(世子師傅)를 지내고 1660년 호군(護軍)으로 공조참의를 거쳐 이듬해 이조참의가 되었다. 1663년 균전사(均田使) ·동부승지(同副承旨) 등을 지내고 효종 즉위 후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등과 함께 북벌계획(北伐計畵)에 참여했다. 3사(司)가 김상헌(金尙憲)을 탄핵하자 장문(長文)의 상소를 올려 김상헌의 충의도덕(忠義道德)을 높이 찬양하여 그 처벌을 극력 반대했다. 1675년 복상문제(服喪問題)로 제.. 더보기
재사당 이원 절구(再思堂 李黿 絶句) 재사당 이원(再思堂 李黿. 미상 ~ 1504년)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는 낭옹(浪翁), 호는 재사당(再思堂).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현령(縣令) 공린(公麟)의 셋째 아들. 박팽년(朴彭年)의 외손자이다. 1480년 진사에 합격, 1489년(성종 20) 문과에 급제, 괴원(槐院)을 거쳐 예랑(禮郎)으로 있을 때 연산군의 광포가 날로 심하여 김종직(金宗直)을 비롯, 많은 사류(士類)들이 피살되거나 귀양 갔었다. 후에 태상(太常)에 있으면서 종직(宗直)에게 문충(文忠)의 시호를 주려고 주장하다 곽산(郭山)에 귀양가 4년 동안 있었고 다시 나주(羅州)에 이송되었다. 1504년 갑자사화에 죄가 더해져 사형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의 종이 함께 도망가기를 간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형을 받음에 있어 얼굴빛이 변치 .. 더보기
교은 정이오 죽장사(郊隱 鄭以吾 竹長寺) 교은 정이오(郊隱 鄭以吾 1347~1434)에 대하여는 앞서 그의 시 3월(三月)에서 상세히 소개하였기에 생략토록 하겠다. 이 시는 선산부사(善山副使)로 있을 때 관청 일을 마치고 시간을 내어 인근(隣近)에 있는 죽장사(竹長寺)에 올라 쓴 시이다. 죽장사는 뛰어난 명시로 손색이 없으며, 서거정(徐居正)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아려하고 청일하여, 비록 당시(唐詩) 속에 두더라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아려청일(雅麗淸逸) 수치지당시(雖置之唐詩) 무괴(無媿)).”라 하였고, 허균(許筠)은 국조시산에서, “중당(中唐)의 높은 품격이다(중당고품(中唐高品)).”라 평하고 있다. 해동잡록(海東雜錄)에 정이오의 시명(詩名)에 대한 간략한 일화(逸話)가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호는 교은(郊隱.. 더보기
백운거사 이규보 촌가(白雲居士 李奎報 村家) 고려의 이태백이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에 대하여는 앞서 이화(梨花), 소정희작(炤井戱作)에서 소개하였기에 생략토록 하겠다.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 백운거사는 고려 고종시절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에 천도할 때 들어와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소개하고자 하는 그의 시 촌가는 전원생활의 즐거움과 목가적인 시골풍경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멋진 시 3수중 한수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村家 其 1(촌가 : 시골집) 斷煙橫處響村舂(단연횡처향촌용) 띄엄띄엄 연기 낀 마을에 방아 소리 들리고 深巷無垣刺樹重(심항무원자수중) 깊은 골목 담은 없고 가시나무들만 무성하다. 萬馬布山牛散野(만마포산우산야) 말들은 산에 가득하고 소는 들에 흩어져 있고 望中渾是太平容(망중혼시태평용) 눈에 보이는 것.. 더보기
이신 민농(李紳 憫農) 이신(李紳. 772 ~ 846)은 풍격이 평범하고 세속적인 시를 쓴 중국 당나라의 문학가이며, 자는 공수(公垂)이며, 장쑤성(江蘇省) 우시[無錫] 사람이다. 진사에 급제한 뒤국자조교(國子助敎), 절동관찰사(浙東觀察使)를 거쳐 무종(武宗) 때에는 재상에 올랐다. 백거이(白居易), 원진(元稹)과 매우 친하였고, 가장 먼저 악부신제(樂府新題) 20수를 지어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 시는 전해지지 않고, 추석유시(追昔游詩) 3권)과 잡시(雜詩) 1권이 현존한다. 주요 작품 가운데 민농(憫農)이 가장 널리 애송되며 통속적인 언어로써 당시 농민착취와 여기에 따른 민초들의 빈곤하고 고통스러운 심정을 사실적으로 묘사가 되어 있다. 한 톨의 밥알이 우리 입에 들어오기 까지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되는.. 더보기
범성대 희청(范成大 喜晴) 범성대(范成大. 1126 ~ 1193) 중국 남송(南宋)의 정치가, 시인이며, 자는 치능(致能). 호는 석호거사(石湖居士). 우셴(吳縣: 蘇州) 출생. 29세에 진사(進士)가 되고 지방관을 거쳐, 뒤에 재상(宰相)의 지위인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 황제의 신임이 두터웠고, 금(金)나라에 사절로 갔을 때 부당한 요구에 굴하지 않고 소신을 관철하여, 사가(史家)들의 찬양을 받았다. 시인으로서는 남송 4대가(범성대(范成大),육유(陸遊),우무(尤袤), 양만리(楊萬里))의 한 사람으로 청신(淸新)한 시풍으로 전원의 풍경을 읊은 시가 유명하다. 저서로 석호거사시집(石湖居士集) 34권, 석호사(石湖詞) 1권이 있고, 그 밖에 기행문도 있다. 소개하고자 하는 범성대의 희청(喜晴)은 매실이 익어 떨어지는 이맘때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