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

주문공권학문(朱文公勸學文) 누구나 한 번쯤은 접했을 주희(朱熹)의 권학문(勸學文) 경구(警句)다. 시간과 나이의 개념은 달리는 속도의 느낌과 같다. 60대는 시속 60Km로 달려가고 있듯이. 눈 깜빡하는 사이에 하루가 지나간다. 돌이켜보면 이루어놓은 것이 하나도 없이 세월이 흘러 내 허물만 쌓여간다.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시간이라고 한다. 이제부터라도 촌음(寸陰)을 아껴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한 공부를 새로이 해야겠다. 주희는 앞서 소개하였기에 생략하며, 간과할 수 없는 이 경구를 뇌리에 묶어 놓고자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주문공 권학문(朱文公 勸學文) 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물위금일불학이유내일) 오늘 배우지 않으면서 내일이 있다 하지 말고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물위금년불학이유내년) 금년에 배우지 않아도 내년이 있다고 .. 더보기
번암 채제공 시 몇 수(樊巖 蔡濟恭 詩 몇 首) 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 1720 ~ 1799)선생은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부친은 현감을 지낸 채응일(蔡膺一), 조부는 좌윤을 지낸 채성윤(蔡成胤), 증조는 현감을 지낸 채시상(蔡時祥), 고조는 현감을 지낸 채진후(蔡振後)이다. 그는 영ㆍ정조 대에 활동한 남인(南人)의 지도자였다. 남인은 숙종 연간 권대운(權大運)이 재상을 지낸 이래 근 100여 년간 재상에 오른 인물이 없었는데, 채제공 대에 와서야 비로소 재상을 배출하였다. 채제공은 1720년(숙종46) 충청도 홍성(洪城)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홍성의 외가에서 자랐다. 병조 판서를 지낸 이지억(李之億)이 그의 외삼촌이다. 본인이 외삼촌댁에서 자랐으니만큼 그는 친누.. 더보기
위야 심은자불우(魏野 尋隱者不遇) 위야(魏野. 960~1019) 북송시인(北宋詩人)으로 자는 중선(仲先) 호는 초당거사(草堂居士). 명리를 멀리하고 일생 동안 청빈한 농부의 삶을 살았다. 시풍 또한 산수 전원을 주제로 맑고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어 후인들로 하여금 진정한 은사(隱士)로 칭송을 받고 있다. 저서로 초당집(草堂集)이 있다.앞서 소개한 가도(賈島)의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 : 가도 심은자불우(賈島 尋隱者不遇) (tistory.com) 와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 위야의 대표적 시로 지금까지 애송되고 있어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 : 은자를 찾아왔으나 만나지 못함)   - 위야(魏野)尋眞誤入蓬萊島(심진오입봉래도) 眞人 찾으러 봉래 섬에 잘못 들어온 듯香風不動松花老(향풍부동송화로) 향기로운 바람은 고요하고 송화는.. 더보기
순치황제 출가시(順治皇帝 出家詩) 순치제(順治帝)는 청나라 3대 세종(世宗)인데 재위 18년(1644~1661) 동안 만주와 중국까지 통일한 영웅으로 알려져 있으며, 연호는 순치(順治)인데 역사적으로는 18년간 황제의 자리에 있다가 1661년 1월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일설에 의하며 태종(太宗)과 더불어 수없는 정복전쟁으로 청(淸)을 세우고 18년간 권좌에 있었으나 이 시를 남기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홀연히 납자(衲子)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후에 조정에서 황제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더 조사해보아야 할 일이지만 불가에 이 시가 전해오고 있다. 개인 생각으로는 당시 상황이나 일부 기록 등을 통하여 판단해보면 천연두(天然痘)로 붕어(崩御) 한 것으로 사료된다. 순치 황제의 출가 시는 불가(佛家)에서 널리 .. 더보기
백거이 시 몇 수(白居易 詩 몇 首) 백거이(白居易, 766-826) 중당시대(中唐時代)의 시인. 자는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 시호는 문(文)이다. 백거이는 지금도 중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시인으로 그의 인품과 문학적 성과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그가 남기 작품의 수는 대략 3,840편이라고 하는데 작품 하나하나마다 시대적 애환과 함께 오묘한 뜻이 담겨져 있다. 그 중 몇 시 수를 통해 그의 일면목을 살펴보고자 하며, 향산거사에 대하여는 앞 백거이 시 대주 2(對酒 2)에서 간단하게 소개하였기에 생략토록 하겠다. 부득고원초송별(賦得高原草送別 : 고원초의 이별시를 지어 부침) 離離原上草(이이원상초) 무성한 초원의 풀들은 一歲一枯榮(일세일고영) 해마다 자라고 시드는데 野火燒不盡(야화소부진) 들 불도 다 태우지 못하고 春風.. 더보기
익재 이제현 시 마하연(益齋 李齊賢 詩 摩訶衍)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은 고려 후기의 고려사회를 대표하는 정치가이며, 시인, 문신, 성리학자, 화가이다. 초명은 지공(之公),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 역옹(櫟翁), 실재(實齋)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익재선생께서 늦은 여름 한낮에 금강산 마하연을 오르는데 한 낮인데도 이슬이 남아 짚신을 적실 정도로 서늘함이 감도는 깊은 산속에 위치하고 있다. 도착해보니 오래된 절은 스님도 살지 않고 경내에는 흰구름만 가득 차 있는 정경을 정갈하면서도 지혜롭게 표현한 멋진 시를 자서해 보았다. 마하연(摩訶衍 : 金剛山 마하연에서) - 이제현(李齊賢) 山中日亭午(산중일정오) 산중에 해는 정오인데 草露濕芒屦(초로습망구) 풀 이슬은 짚신을 적시네 古寺無居僧(고사무거승.. 더보기
고병 시 산정하일(高棅 詩 山亭夏日) 어제는 온종일 비가 내렸다. 해갈에는 다소 미흡하지만 긴 가뭄에 목말라하던 밭작물들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다. 雨後라서 그런지 小滿을 하루 앞둔 날이지만 제법 서늘한 감마저 드는 날씨이다. 이제 곧 장미의 계절 6월이 시작되면 기나긴 여름으로 접어든다. 이때를 연상하며 명나라 시인 고병(高棅)이 지은 산정하일(山亭夏日)의 한시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고병(高棅 1350 ~ 1413) 중국 명나라 초기의 시인으로 자(字)는 언회(彦恢),호(號)는 만사(漫士)이다. 푸젠성[福建省] 창러[長樂] 출신. 벼슬은 한림원(翰林院) 대조(待詔)·전적(典籍)을 지냈다. 시(詩)는 물론 서화(書畵)에도 능하여 삼절(三絶)이라 일컬어졌고, *민중십재자(閩中十才子 : 福建省의 十才士)의 한 사람이다. 당시(唐詩)를 초(初.. 더보기
해동서성 김생(海東書聖 金生) 몇 일전 예술의전당 서예관에 전시중인 제27회 대한민국서예전람회 전시작품을 둘러보았는데 갈수록 퇴보해 가는 한국서단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고 돌아온 적이 있다. 글은 나이 들어 갖추어 진다는 인서구노(人書俱老) 격언처럼 작품을 낸다는 것은 젊어서부터 갈고 닦아 중년을 넘어서 자신만의 독창성을 갖추고 한학에 대한 일정 이상 소양을 지닌 출품자들이 여야 하는데, 과연 몇 이나 될까 하는 의구심을 차마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나름 심사를 위한 객관성을 유지하겠지만 갈수록 획일화, 계파화, 하향화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며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안타까운 현실이 암울하기만 하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우리나라 서예사를 살펴보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해동서성 김생이다. 비록.. 더보기
이익 시 2수 무등호운, 등염(李瀷 詩 2首 無燈呼韻, 燈焰)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 선생에 대하여는 앞서 언급하였기에 생략토록 하겠다. 소개하고자 하는 성호선생의 시는 등(燈) 관련 2 수로 음미할수록 잔잔한 감동과 희망을 선사한다. 무등호운(無燈呼韻 : 불 끄진 등잔을 바라보며 운자를 불러 읊다) 貧家無力辦油燈(빈가무력판유등) 가난하여 기름등잔 마련할 길 없으니 縱羨何殊夏語冰(종선하수하어빙) 구하려 해도 한여름 얼음과 다름없다 惟有此心明較火(유유차심명교화) 그러나 나에게는 등불 같은 마음 있어 煌煌傍燭待晨興(황황방촉대신흥) 찬란한 그 빛 옆에서 새벽을 기다린다 등염(燈焰 : 등불을 밝히며) 靠壁寒燈照向人(고벽한등조향인) 벽에 걸린 찬 등잔 나를 향해 비추는데 淸明光裏發花新(청명광리발화신) 청명한 저 빛 속에서 피는 꽃 새롭구나 風霜雨露渾佗界(.. 더보기
사숙재 강희맹 시 병여음성(私淑齋 姜希孟 詩 病餘吟成) 사숙재 강희맹(私淑齋 姜希孟. 1424~1483)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운송거사(雲松居士)·국오(菊塢)·만송강(萬松岡). 강시(姜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북면순무사(東北面巡撫使) 강회백(姜淮伯), 아버지는 지돈녕부사 강석덕(姜碩德), 어머니는 영의정 심온(沈溫)의 딸이다. 형이 인순부윤(仁順府尹)이자 화가 강희안(姜希顔)이며, 이모부가 세종이다. 1447년(세종 29) 24세로 친시 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가 되었다. 1450년 예조좌랑과 돈녕판관을 역임하고, 1453년(단종 1) 예조정랑이 되었다. 1455년(세조 1)에 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고, 그 뒤 예조참의·이조참의를 거쳐, 1463년 중추원부사로서 진헌부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