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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여류시인 이옥봉 시 몇 수(女流詩人 李玉峯 詩 몇 首)

이옥봉(李玉峯)은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으로 16세기 후반인 선조 때 옥천(沃川) 군수를 지낸 이봉(李逢)의 서녀(庶女 : 소실의 딸)로 태어났으며, 호는 옥봉(玉峯)이다. 이후 조원(趙瑗)의 소실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부친에게 글과 시를 배웠으며 영특하고 명민하여 그녀가 지은 시는 부친을 놀라게 하였다. 서녀의 신분이었기에 정식 중매를 넣을 수 없었으며 학식과 인품이 곧은 사람인 조원(趙瑗)의 소실(小室)로 들어가기를 결심하였다. 이에 부친 이봉은 친히 조원을 찾아가 딸을 소실로 받아줄 것을 청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조원의 장인인 판서대감 이준민(李俊民)을 찾아가 담판하고 비로소 받아들여졌다.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선조 때 승지에 오른 조원(趙瑗)의 첩으로 들어간 옥봉은 이후 다른 소실들과 서신으로 예술적 교류를 나누는가 하면 조원의 친구 윤국형(尹國馨) 또한 지사(志士)의 기개가 엿보이는 그녀의 시에 감탄하였다고 전해진다. 옥봉은 중국 명나라에까지 시명(詩名)이 알려진 여류시인으로서 그녀의 시는 맑고 씩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중국과 조선에서 펴낸 시선집에는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시와 나란히 실려 있다. 그녀가 남긴 시 32편이 수록된 옥봉집(玉峰集) 1권 만이 가림세고(嘉林世稿)의 부록으로 전한다. 그녀가 남긴 주옥같은 시 몇 수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閨情(규정 : 규방 여인의 정)        - 이옥봉(李玉峯)

有約來何晩(유약래하만) 온다던 그대 왜 이리 늦을까

庭梅欲謝時(정매욕사시) 뜰에는 벌써 매화가 지는데

忽聞枝上鵲(홀문지상작) 홀연히 매화가지 위 까치소리 들리니

虛畵鏡中眉(허화경중미) 부질없이 거울 보며 눈썹 그려요

 

夢魂(몽혼 : 꿈속의 혼)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나요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사창에 달이 뜨니 한만 서려요.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꿈속에 오고 간 길 흔적이 난다면

門前石路半成沙(문전석로반성사) 그대 문 앞 돌길은 반이 모래가 되겠네요.

 

閨恨(규한 : 규방여인의 한)

平生離恨成身病(평생이한성신병) 평생 이별의 한이 이 몸의 병이 되어

酒不能療藥不治(주불능료약불치) 술로도 못 고치고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하네.

衾裏泣如氷下水(금리읍여빙하수) 이불속 눈물은 얼음 밑 물과 같아

日夜長流人不知(일야장류인부지) 밤낮 길이 흘린 들 그 누가 알랴.

 

雨(우)

終南壁面懸靑雨(종남벽면현청우) 종남산 벽면에 푸른 비 드리우고

紫閣霏微白閣晴(자각비미백각청) 자색 누각에 이슬비 내리고 흰 누각은 개었구나

雲葉散邊殘照淚(운엽산변잔조루) 조각구름 사이로 저녁 햇살 흘러나오니

漫天銀竹過江橫(만천은죽과강횡) 하늘 가득 뻗은 은빛 대나무 강 건너 펼쳐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