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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빛 바랜 옛 비문(碑文) 농사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가을비가 주룩주룩 줄기차게 내리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세종현장 옆에 위치한 제법 잘 가꿔진 한적하면서도 아름다운 공원이 있다. 점심시간에 잠시 운동 삼아 걷는 공원인데 이름이 오가낭뜰 근린공원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라 찾아보니 순수한 우리나라 말로 이곳 예 옛 지명이 오가낭골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오가낭의 뜻은 잘 모르겠지만 한번 들으면 쉽게 잊어버리지 못하는 아름다운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가랑비 내리는 오가낭뜰공원을 동료들과 산책도중 나지막한 산기슭에 위치한 잘 조성된 묘(墓)가 있다. 이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오늘은 묘비명을 살펴보니 석질의 경도(硬度)가 약한 오래된 비석임에도 새긴 글의 마모가 심했지만 몇 자는 판독이 가능함에 따라 잠시 옛 .. 더보기
촌은 유희경 산중추우, 강정, 월계도중(村隱 劉希慶 山中秋雨, 江亭, 月溪途中) 추야장장(秋夜長長) 말처럼 하루가 다르게 가을밤이 길어지며 깊어간다. 습관처럼 몸에 배어진 하루 일과의 마무리는 늦은 저녁시간에 붓을 잡고 마음에 새겨둔 글씨를 쓰는 것이다. 글의 소재는 선조들이 남긴 기록의 유산을 찾아보면 무한대에 가깝다. 그들이 남긴 시 한 수 한 수 마다 간과할 수 없는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 그때 시인의 마음으로 돌아가 화선지(주로 반절지 송지(松紙)를 사용)에 붓에 먹물을 묻혀 사전 고민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자연스레 써내려 가는 것이기에 힘들거나 거추장스러움이 전혀 없다. 어쩌다 오자나 탈자가 나타나면 다시 쓰면 되긴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 부끄러운 글씨라도 지나간 나의 흔적이며 글씨보다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개의치 않고 내용.. 더보기
청담 이중환 산자수명(淸潭 李重煥 山紫水明) 예로부터 우리나라 산천을 두고 삼천리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고 불렀다.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국토의 70%가 산지임야로 도심지 근교에는 명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수도를 정할 때도 배산임수(背山臨水)를 기본으로 산을 등지고 물을 마주 보고 있는 곳에 혈(穴)을 찾아 터를 택했다. 서울은 삼각산과 한강을 두고 배산임수의 완벽한 풍수적 조건을 갖춘 곳이다. 이처럼 길지를 선택하는 것은 삶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였기에 풍수지리에 대한 관심도 지대했을 것이다. 300여 년 전 청담 이중환(淸潭 李重煥)은 당쟁(黨爭)에 의한 옥고와 유배생활을 청산하고 30여 년간 전국을 순회하며 각 지역의 교통, 지리, 문화, 인물, 특산물 등을 정리하여 인문지리서(人文地理書).. 더보기
오산 차천로 야교귀승(五山 車天輅 野橋歸僧) 초록의 식물들은 봄, 여름에 광합성 작용(光合成作用)을 왕성하게 한다. 이는 녹색식물이 빛 에너지를 이용하여 자신이 필요로 하는 유기 양분과 에너지를 만드는 작용으로 초록색을 띤 엽록소(葉綠素)가 빛 에너지를 모아서 이산화 탄소와 물을 원료로 하여 탄수화물을 만들어 낸다. 이와 같이 숲의 식물들이 초록색을 띠는 이유는 빛의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광합성 작용을 위한 엽록소의 특성으로 녹색 빛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일조량이 줄고 온도가 떨어지게 되면 나무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줄기와 잎 사이에 떨겨(식물의 잎이 줄기와 붙어 있는 조직)를 만들어 잎으로 가는 수분을 차단하면서 나뭇잎의 엽록소는 파괴되고 엽록소에 가려졌던 원래의 색소들이 나타나 울긋불긋한 단풍색(丹楓色)을 보여주는 것.. 더보기
가을 관련 한시 3수 : 서거정 추풍, 두보 신추, 유장경 추운령(徐居正 秋風, 杜甫 新秋, 柳長卿 秋雲領) 새벽부터 가을비가 촉촉이 내려 매 마른 대지를 적시고 있다. 우산을 쓰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의 짐을 벗어 버리고 상큼한 가을의 짐으로 바꿔진 모습을 그려본다. 들녘에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결에 논 풍경도 서서히 누런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곧 황금물결 넘실대는 결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근무처인 세종시의 주변 풍경도 서서히 가을 빛으로 변하고 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자연의 변화하는 순리에 순응하며 바라보는 것 또한 인생흐름을 관조(觀照)하는 즐거움이리라. 평소 가슴에 담아 둔 초가을 관련 한시 3수를 자서와 함께 주변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작자는 앞서 수 회 소개하였기에 생략 토록 하겠다. 추풍(秋風) - 서거정(徐居正) 茅齋連竹逕(모재연죽경) 초가집 대나무 길에 .. 더보기
백사 이항복 시 3수 : 산수도, 추일유도봉산, 좌야(白沙 李恒福 詩 3首 : 山水圖, 秋日遊道峯山, 坐夜) 주말농장 귀퉁이에 두 달 전에 완성한 조그마한 닭장에 부화한 지 6 주령 토종닭 15마리를 방사했다. 닭들이 더 나은 환경으로 왔다고 판단해 서인지 금방 적응하는 모양새다. 암수 비율은 14:1 정도가 가장 적당하다고 하나 보통 10~20:1 정도면 무난하리라 본다. 닭은 닭목 꿩과에 속하는 가축화된 새이며, 적색야계의 아종이다. 닭은 가장 흔하고 널리 퍼져 있는 가축 중 하나이다. 미국의 통계 전문 기관인 스테티스타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지구상에 최소 227억 마리의 닭이 존재하며, 이는 다른 어떤 조류보다도 수요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 인간은 닭을 주로 고기와 알과 같은 식품을 얻기 위해 기르며, 드물게는 반려동물로 키우기도 한다. 닭의 기원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으나 기원전 6000~8000년.. 더보기
만리 백대붕 추일(萬里 白大鵬 秋日) 세종에서의 이른 출근길이 상큼하다. 아침 기온이 16도를 가리키고 있어 반팔 옷 사이로 서늘함이 스며오는 기분 좋은 초가을 아침이지만 한낮은 31℃가 예보되어 있어 따가운 햇살을 견뎌내야 한다. 보통 사람이 살기 좋은 온도는 14도에서 24도 사이라는데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쾌적함을 느끼는 습도 또한 일반적으로 40%에서 60% 사이가 좋다고 한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는 추석이 지난 10월 초 . 중순으로 이때가 높은 높은 산을 기점으로 서서히 단풍이 물들어 가는 시기다. 이맘때쯤 떠오르는 시 한 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만리 백대붕(萬里 白大鵬) 선생의 추일(秋日)은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많은 여운을 선사하기에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추일(秋日 : 가을날) 秋天生薄陰(추천생박음) 가.. 더보기
굉지선사, 대혜종고 게송 2수(宏智禪師, 大慧宗杲 偈頌 2首) 우리나라는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다방면에 경이적이고 창의적인 특출한 민족이다. 국토면적은 작지만 일제 강점기와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대 혼란을 겪으며 빠른 시일 내에 기적을 일구며 모든 산업의 기반인 반도체, 자동차, 철강, 화학, 조선사업 등을 두루 갖춘 세계에서 몇 안되는 일류국가가 되었다. 최근 K-Pop뿐만 아니라 문화, 음식, 패션, 국방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하지만 정치 분야는 3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념적 갈등과 정쟁으로 국민에게 실망과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서로 표독스러운 얼굴로 대립하는 모습에서 소신(所信)은 간데없고 오로지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따라 서로 발톱을 내 새우며 헐뜯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은 절로 한숨이 나온다. 협치(協治)라는.. 더보기
천동여정 반야송(天童如淨 般若頌) 가끔 선시(禪詩)를 접하다 보면 심미안(審美眼)적 요소에 빠지곤 한다. 심미안은 뭔가 아름다움을 살펴 찾는 안목을 말하는데 선시 중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의 백미(白眉)로 손꼽히는 선시가 있다. 중국 남송 때 묵조선(默照禪) 계통 선승(禪僧)인 천동여정(天童如淨. 1163~1228) 선사가 지은 반야송(般若頌)이다. 고찰에 가면 바람 불면 뎅그렁, 뎅그렁 청아(淸雅)한 소리를 내는 처마 끝에 풍경(風磬) 소리를 듣게 된다. 바람과 더불어 반야를 노래하는 풍경소리는 소동파(蘇東坡)의 오도송(悟道頌) 중 계성변시광장설(溪聲便是廣長設 : 개울 물소리는 장광설이요..)과 나옹선사(懶翁禪師) 선시 산거(山居) 중 간수냉냉담반야(磵水冷冷談般若 : 산골짜기 차가운 물은 반야를 노래하며 흐르고..)와 함께 깨달은 자 만.. 더보기
김삿갓 난고평생(김병연(金炳淵) 蘭皐平生) 조석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사뭇 다르다. 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여름 탓인지 맞이하는 초가을이 무척 반갑다. 밤 창가에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는 전령사(傳令使) 답게 가을이 왔음을 우렁차게 알리고 있다. 8년 전 소개한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은 도연명(陶淵明)의 자전(自傳)이다. 스스로를 나타내지 않으면서 읽어가면 결국 도연명의 자서전(自敍傳)이라고 생각되는 약 170자 정도의 명문장으로 이해되고 있다. 중국에 오류선생전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김삿갓의 난고평생(蘭皐平生)이 있다. 난고(蘭皐)는 김삿갓의 아호이다. 난고평생(蘭皐平生) 시는 김삿갓 자서전(自敍傳)과도 같은 일대기로 1863년 경 57세의 일기로 임종 직전에 전라남도 화순 창원 정 씨의 사랑채에서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앞서 수회 소개한 바 있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