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썸네일형 리스트형 이규보 소정희작(李奎報 炤井戱作) 이규보(李奎報 1168~1241) 고려시대의 문신·문인으로 본관은 황려(黃驪:驪興).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지헌(止軒)·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며, 시호는 문순(文順)이다. 1189년(명종 19) 사마시(司馬試), 이듬해 문과에 급제, 1199년(신종 2) 전주사록(全州司錄)이 되고 1202년(신종 5) 병마녹사 겸 수제(兵馬錄事兼修製)가 되었다. 1237년(고종 24)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감수국사(監修國事)·태자대보(太子大保)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호탕 활달한 시풍(詩風)은 당대를 풍미했으며,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그 감상을 읊은 즉흥시는 유명하다. 몽골군의 침입과 관련한 *진정표(陳情表)지은 명문장가였다. 시·술·거문고를 즐겨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 자칭했으.. 더보기 임영 등용문산백운봉(林泳 登龍門山白雲峯) 임영(林泳. 1649~1696) 조선 후기 문신 겸 학자로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덕함(德涵), 호는 창계(滄溪)이다. 1665년 사마시(司馬試), 1671년 정시문과에 각각 급제하고 사가독서(賜暇讀書)했다. 그 후 검상(檢詳) · 대사헌 등을 거쳐 개성부유수가 되고 부제학에 이어 참판에 이르렀다. 문장이 뛰어났고 경사(經史)에 밝았으며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에게도 사사한 기호학파(畿湖學派) 학자였으나 이기설(理氣說)에는 이이(李珥)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에 동조, 기발이승설(氣發理乘說)에 반대한 학자이다. 사후 나주 창계서원(滄溪書院)에 배향되었다. 문집으로 창계집(滄溪集)이 전한다. 창계서원은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에 있다. 여기 소개하고자 하는 시는 등용문산백운봉으로 백운봉은.. 더보기 이집 만청(李集 晩晴) 이집(李集 1314∼1387)은 고려 말기 학자. 자는 성로(成老) 호연(浩然), 호는 묵암자(墨巖子) ·호연(浩然)·둔촌(遁村).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충목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정몽주(鄭夢周)·이색(李穡) 등과 교유하였다. 1368년(공민왕 17) 신돈(辛旽)의 미움을 사 생명의 위협을 느껴 영천(永川)으로 피신하였다. 71년 신돈이 주살되자 개경(開京)으로 돌아와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여주(驪州) 천녕현(川寧縣)에서 자연을 벗 삼아 시(詩)와 학문에 전념하였다. 시에 특히 뛰어나 꾸밈과 가식이 없고, 직설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시풍으로 당대에 이름을 얻었다. 성격 역시 솔직 담백하고 뜻이 곧아 옳지 않은 것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였다. 조선시대에 의정부 좌찬성(左贊成)에.. 더보기 홍세태 우음(洪世泰 偶吟) 위항시인(委巷詩人) 창랑(滄浪) 홍세태(洪世泰)에 대하여는 앞서 야국(野菊)에서 언급하였기에 생략하며, 그의 시 우음(偶吟)을 자서해 보았다. 노년에 지은 시로 그가 살아온 영욕을 뒤로하고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 하고자하는 심경을 담고 있다. 우음(偶吟 : 우연히 읊다) 是非閱來身倦(시비열래신권) 시비를 겪고 나니 몸은 지쳤지만 榮辱遣後心空(영욕견후심공) 영욕을 떨쳐 버린 뒤라 마음이 비워진다. 閉戶無人淸夜(폐호무인청야) 인적 없는 맑은 밤에 사립문 닫고 臥聽溪上松風(와청계상송풍) 누워서 시냇가 솔바람 소리 듣는다. 더보기 김시습 야좌기사, 사청사우(金時習 夜坐記事, 乍晴乍雨) 시 2수 벌써 5월이 가고 6월이 시작되었다. 연일 30도를 넘나드는 날씨가 예사롭지 않게 폭염의 여름을 예고하는 것 같다.여기 소개하고자 하는 시는 김시습(金時習)의 야좌기사(夜坐記事)와 사청사우(乍晴乍雨)이다.선가풍(禪家風)의 시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갈구하고자 하는 그의 인생관과 면모가 잘 나타나 있다.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시원한 가을이 오기를 갈망하는 의미에서 예서체와 행서로 자서해 보았다.김시습은 앞서 습지산거(習之山居)에서 언급하였기에 생략토록 하겠다. 야좌기사(夜坐記事 : 밤에 앉아 적다)東嶺風初急(동령풍초급) 동쪽 고갯마루에 막 바람이 일고西峯月落時(서봉월낙시) 서편 봉우리에 달 지는 시간이로다禪心唯寂寞(선심유적막) 참선하는 마음 적막하고夜色轉淸奇(야색전청기) 밤빛은 맑고도 기이해진다露冷雁聲緊(.. 더보기 증공 시 초하(曾鞏 詩 初夏) 증공(曾鞏, 1019 ~ 1083)은 북송(北宋)의 산문가이다. 자는 子固(자고), 시호는 文定(문정)으로 강서성(江西省) 남풍현(南豊縣) 출신으로 남풍선생(南豊先生)으로 불린다. 12세에 육론(六論)을 썼을 정도로 영민했고 시문에 능하였다. *당송 8대가의 한사람으로 약관의 나이에 널리 명성이 알렸졌으며, 시문집으로 원풍류고(元豊類藁)50巻, 속원풍류고(續元豊類藁)40巻, 륭평집(隆平集)30巻이 전해지고 있다. 어제는 4월인데도 서울기온이 30도로 계절을 거슬러는 한여름 날씨다. 봄이 우리 곁을 빠르게 지나가고 있어 아쉬움과 함께 초여름 관련시를 자서해 보았다. 초하(初夏 : 초여름) - 증공(曾鞏) 雨過橫塘水滿堤(우과횡당수만제) 비 지나자 못 둑엔 물이 가득차고 亂山高下路東西(난산고하로동서) 산은 어.. 더보기 송한필 우음(宋翰弼 偶吟) 송한필(宋翰弼. ?~?) :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문장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계응(季鷹), 호는 운곡(雲谷)이다. 소개하고자 하는 송한필의 우음은 지금의 정취와 어울리는 시로서 작야우(昨夜雨)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간밤에 내린 비에 꽃이 활짝 피었는가 싶더니 아침에 부는 바람에 모두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동서고금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이를 시로 표현한 2구절은 덧없는 인생을 비유한 명구로 꼽힌다. 절정인 듯 활짝 피었다가는 하루아침의 바람에 지고 마는 짧은 봄날의 일처럼 인생살이도 그러하며, 작자인 송한필의 삶을 대변해 주는 슬픔이 내포된 시이다. 송한필은 당대의 문장가로 명성을 누렸으나 동서분쟁의 소용돌이 속에 가족들은 모두 노비가 되었고 송한필 행적 또한 전해지지 않는다.. 더보기 이수광 시 도중(李睟光 詩 途中) 이수광(李睟光, 1563~1628)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峯). 1585년(선조 18) 별시문과에 급제, 지제교(知製敎)를 지냈고, 1590년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92년에 북도선유어사(北道宣諭御史)가 되어 함경도 지방에서 이반한 민심을 돌이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597년에 성균관대사성이 되었으며 진위사(陳慰使)로 2번째 명나라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안남(安南, 지금의 베트남)의 사신과 교유했다. 1625년 대사헌으로서 왕의 구언(求言)에 응하여 12조목에 걸친 조진무실차자(條陳懋實箚子)를 올려 당시 가장 뛰어난 소장(疏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강화로 갔으며, 이듬해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 더보기 정몽주 춘흥(鄭夢周 春興)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21세 때인 1357년(공민왕 6) 감시(監試)에 3등으로 합격하고, 1360년 예부시(禮部試) 을과(乙科)에 장원하였다. 1362년 예문관(藝文館) 검열(檢閱)을 거쳐, 동북면도지휘사(東北面都指揮使) 한방신(韓邦信)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종군하여 화주(和州), 함주(咸州), 정주(定州)에서 여진족을 토벌하였다. 1365년에는 모친상을 당하여 벼슬을 내어 놓고 3년 시묘(侍墓) 살이를 하자 나라에서 정표를 하기도 하였다. 1367년 성균관 박사를 겸임할 때 주자집주(朱子集註)에 대한 강론이 뛰어나서 모두 탄복하였고, 대사성 이색(李穡)은 그를 ‘동방 이학(理學)의 시조’라고 평하였.. 더보기 목은 이색 시(牧隱 李穡 詩) 2수 이색(李穡. 1328 ~ 1396) 고려 후기의 문신, 학자, 문인으로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 본관(本貫)은 한산인(韓山人)이다. 14세에 진사가 되고 21세 때 원나라의 국자감 생원이 되었으며, 26세에 정동행성 향시(鄕試)에 장원하고 이듬해 원나라의 회시(會試)에 장원, 전시(殿試)에 2등으로 합격하여 원나라의 관직에 등용되었다가 귀국하여 홍건적의 난을 치르고 대사성(大司成), 문하시중(門下侍中) 등의 관직을 역임하고 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에 책봉되었다,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함께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저서로는 목은문고(牧隱文藁), 목은시고(牧隱詩藁)등이 있다. 韓山李氏의 중시조(中始祖)로서 불충이군(不忠二君)의 충신으로 후손으로부터 추앙을 받.. 더보기 이전 1 ··· 50 51 52 53 54 55 56 ··· 6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