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썸네일형 리스트형 영재 이건창 초하즉사, 홍류동희제(寧齋 李建昌 初夏卽事, 紅流洞戱題) 올해 추석(秋夕)은 여름보다도 더 더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날씨다. 9월 중순이 지났음에도 전국이 열대야로 잠을 설친 하석(夏夕)이 되었다. 뉴스를 보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최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폭우와 폭염, 산불 등 기상이변에 따른 피해가 유례가 없는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기후변화로 인해 고온 건조한 날씨가 많아지고 그에 따라 산불의 빈도와 규모가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기후 위기로 인한 문제가 완전히 통제 불능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지구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인간의 무분별한 환경파괴와 통제를 상실한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 무차별 댐 건설, 지하수 난개발 등으로 300년을 걸쳐 변화를 가져올 지구 온난화가 불과 30년으로 단축됨에 따라 지.. 더보기 영재 이건창 전가추석(寧齋 李建昌 田家秋夕) 두 번째 부분 어제 소개한 영재 이건창(寧齋 李建昌)의 전가추석(田家秋夕)의 첫 번째를 이어서 두 번째 부분이다. 첫 번째의 분위기와 상반되게 펼쳐지는 농촌의 참혹한 실상을 한 과부를 등장시켜 애절하게 읊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여 년 전에 한 농민이 겪어야 할 가렴주구(苛斂誅求 : 세금(稅金)을 가혹(苛酷)하게 거두어들이고, 무리(無理)하게 재물(財物)을 빼앗음)의 처참함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지금은 상상하기 조차 힘든 그 시절의 단상(斷想)을 그려보며 현재의 풍족함 속에 소외된 이웃이 없는가를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연이어 두 번째 구절을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전가추석(田家秋夕 : 농가에서 맞이하는 추석) 2. 흉년이 어느 농부에게 끼치는 참상南里釀白酒(남리양백주) 남쪽 마을에는 막걸리를.. 더보기 영재 이건창 전가추석(寧齋 李建昌 田家秋夕) 첫 부분 다음 주면 민족명절 추석이다. 추석(秋夕) 또는 한가위는 음력 8월 15일에 치르는 행사로 설날과 더불어 한국의 주요 연휴이자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추석은 농경사회였던 예로부터 지금까지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연중 최대 명절이며, 가배일(嘉俳日), 한가위, 팔월 대보름 등으로도 부른다. 지금은 명절 풍습도 많이 변하여 소싯적 모습들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추석관련 함께 살펴볼 한시는 구한말 문인 영재 이건창(寧齋 李建昌 1852~1898)의 전가추석(田家秋夕)이다. 이 시는 그가 26세 때인 1877년에 충청우도(忠淸右道) 암행어사 때에 목도(目睹)한 추석을 맞은 농가의 모습을 두 부분(넉넉함과 비참함)으로 표현하였다. 첫 부분은 '지난해'의 참혹한 흉년을 겪고도 살아남.. 더보기 백거이 비파행(白居易 琵琶行) 인생을 살다 보면 뜻하든 뜻하지 않았든 타인과의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것을 인연이라 말한다.연고(緣故) 또는 인연(因緣)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또는 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을 뜻하며, 불교의 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기도 하며, 인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이고, 연은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이다. 비슷한 말로 유연(有緣)이 있다. 인연의 결과에 따라 선연(善緣), 악연(惡緣)으로 나눠지기도 한다. 선업(善業)을 쌓아간다면 그 결과는 선연으로 귀결될 것이다. 1200여 년 전 백거이와 비파를 구슬프게 연주하는 여인의 애절함을 자신의 처지와 빗대어 비파행(琵琶行)을 지었으리라. 그 여인과 백거이와의 만남은 이 시를 탄생하게 된 깊은 연(緣)의 결과일 것이다. 당시 노년기 들어선.. 더보기 백거이 신추희량(白居易 新秋喜凉) 나의 첫 직장은 법무부 소속으로 지방에 발령받아 6개월의 시보(試補) 기간 동안 문화의 갈증을 참지 못하고 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입사하게 되었다. 그 당시 법무훈(法務訓)이 소신(所信), 겸허(謙虛), 순리(順理)였다. 워낙 강력하게 뇌리에 남아있기에 지금까지 법무훈이 내 삶의 이정표와 같이 나를 인도하고 있다. 소신은 떳떳한 내 자신을 굳게 믿는 것이요, 겸허는 스스로를 낮추고 비우는 태도요, 순리는 도리나 이치에 순종하는 것이다. 삶이란 바르게 자기의 길을 간다고 하나 여지없이 난관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풀지 못하는 난관을 헤쳐나가는 길을 법무훈에서 찾곤 한다. 또한 길을 못 찾는다 할지라도 시간이라는 순리에 기탁하기 마련이다. 해결하지 못하는 모든 난관은 시간이 풀어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시간은 .. 더보기 편지로 주고받은 한시(퇴계와 율곡) 지금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여 모든 소식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전국 어디든 반나절이면 닿을 수 있다. 500여 년 전 부산에서 한양까지 하루 12Km를 걷는다고 가상할 때 대략 40일이 넘게 소요된다.참다운 스승을 찾아 학문을 구하고자 하는 열의는 있다 하나 직접 찾아 나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당시를 떠올리며 대 학자 간 주고받았던 격조가 흐르는 시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만나기 쉽지 않은 율곡(栗谷)이 퇴계(退溪) 선생을 찾아간 것이 명종 13년(1558)이니, 그의 나이 23세였고 퇴계는 58세였다. 당시 율곡은 자경문(自警文)을 짓고 스스로를 경계하면서 공부에 전념했으며, 특히 성혼(成渾 : 1535 ~ 1598.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의 학문에 감탄하며 주자학을 깊이 연구했다고 .. 더보기 덕숭산 수덕사(德崇山 修德寺) 8월 중순이 지났음에도 폭염의 위세가 여전하다. 광복절 독립운동가 겸 승려이자 민족시인 만해 선생의 탄생지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수덕사(修德寺)를 찾게 되었다. 수덕사(修德寺)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德崇山)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충남 일원의 36개 말사(末寺)를 관장(管掌)하고 있으며, 백제 때에 창건되어 내려오는 유서 깊은 고찰(古刹)이며 내포(內浦 : 충남 가야산 인근 지역을 일컫는 용어로 바다가 육지 안으로 쑥 들어와 있다는 뜻)땅 가야산(伽倻山. 678m)의 가장 이름 높은 명승지로 가야산 남쪽 덕숭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우리나라 4대 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있다. 첫 인상은 주산(主山)의 수려함과 득수(得水)의 부.. 더보기 선자덕성 발도가 어부송( 船子德誠 撥棹歌 漁父頌) 어제는 한낮 최고기온이 36도까지 올랐다. 혹서의 절정으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야속하다.오늘도 어김없이 이른 새벽 6시에 출발하여 영종에 있는 백운산(255m) 정상을 향하는데 쉬지않고 오르면 약 25분이 소요된다. 정상에서 맞이하는 시원한 바람이 나를 반기며 정면에는 인천공항 활주로와 좌측의 인천대교, 우측에는 강화도가 오늘따라 선명하게 다가온다. 어제는 백운사(白雲寺)는 안내표시가 있어 찾아가 보니 아담하고 소박한 작은 사찰이 편안한 장소에 터를 정하여 남향을 향해 있다. 사찰을 관리하는 노인에게 여쭤보니 약 75년전에 세워진 사찰로 스님 한 분이 주석하고 있다고 하며 마당 앞에는 큰 화분에 연꽃 이 피어있어 아름다운 사찰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다. 대웅전 편액은 일붕 서경보(一鵬 徐京保)의 .. 더보기 위응물 기전초산중도사, 기찬율사(韋應物 寄全椒山中道士, 寄璨律師) 아침마다 오르는 새벽 산행 길 옆으로 많은 버섯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장마철 습한 토양에서 돋아나는 여러 가지 빛깔과 모양의 버섯들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쉽게 사라지기 때문에 옛날부터 사람의 눈길을 끌어 고대 사람들은 땅을 비옥하게 하는 ‘대지의 음식물’ 또는 ‘요정(妖精)의 화신(化身)’으로 생각하였으며 수많은 전설이 남아 있다. 또한 버섯은 그 독특한 향미로 널리 식용되거나 또는 약용으로 하는가 하면 목숨을 앗아가는 독버섯으로 두려움을 받기도 하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버섯의 맛을 즐겨 ‘신(神)의 식품’이라고 극찬하였다고 하며, 중국인들은 불로장수(不老長壽)의 영약(靈藥)으로 진중하게 이용하여 왔다. 세상에는 2만여 종의 버섯이 있는데 먹을 수 있는 것은 1,800여 종에 불과하다고 한다. .. 더보기 위응물 동교(韋應物 東郊) 연일 장마철답게 고온 다습한 날씨가 지속되고 있어 조금만 움직여도 등 줄기에 땀이 흐른다.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하는 인간은 진화의 과정을 밟으며 오늘에 이르렀는데 그 과정을 살펴보면 직립보행이 가능해지면서 자유로워진 양손의 활용성이 높아짐에 따라 창이나 활을 지니고 어떠한 동물도 모두 사냥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서면서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수 십 Km를 쉬지 않고 사냥할 수 있는 능력은 달리면서 체온이 상승할 때 도움이 되지 않는 털은 퇴화되었고 그 대신 땀샘의 발달로 땀이 피부 표면으로 배출되면서 체온 조절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기후 변화에 적응하면서 필요성이 낮아진 털은 머리, 눈썹, 겨드랑이만 남기고 나머지는 털이 없는 맨 살로 진화되었다. 머리털은 체온유지에 도.. 더보기 이전 1 2 3 4 5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