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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고조기 산장우야(高兆基 山庄雨夜), 변계량 차자강운(卞季良 次子剛韻) 시 2수

흔히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인간사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연속이 듯이 시간이 지나면 괴로웠던 일과 아픔이 무뎌지고 잊힌다는 의미이다.

시간의 흐름을 통한 망각(忘却)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현실에서 극복 불가능한 어떠한 어려움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시간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묘약(妙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은산철벽(銀山鐵壁)에 갇힌 신세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뚫고 나올 수 있기에 지금의 처지를 낙담(落膽)할 필요가 없다. 단 시간의 해결은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조건에서만 긍정적 답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오늘은 24절기 중 두 번째인 우수(雨水)다. 겨울 내 내 쌓인 눈이 녹아서 비가 내린 것처럼 된다는 말이다. 비록 한낮에도 쌀쌀한 날씨지만 남녘에는 벌써 매화소식이 들려온다. 찬란한 봄이 목전에 다가왔다.

 

이어서 함께 살펴볼 한시는 고조기(高兆基)의 산장우야(山庄雨夜)와 변계량(卞季良)의 차자강운(次子剛韻) 2수를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산장우야(山庄雨夜 : 산장에 비 내린 밤)   - 고조기(高兆基)

昨夜松堂雨(작야송당우) 어젯밤 송당의 비 내리고

溪聲一枕西(계성일침서) 서쪽 시냇물소리를 베개 삼고 누웠네.

平明看庭樹(평명간정수) 새벽녘 뜰 앞 나무 바라보니

宿鳥未離棲(숙조미리서) 자던 새는 아직도 둥지를 떠나지 않았네.

 

계림 고조기(鷄林 高兆基. ? ~ 1157)는 고려의 문신으로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우복야(右僕射) 고유(高維)의 아들이다. 초명은 고당유(高唐愈), 호는 계림(鷄林)이다. 의종 때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1107년(예종 2년) 과거에 급제하여 남주(南州)의 수령으로 나가 청렴하게 봉직했다. 인종 때 시어사(侍御史)로서 봉우(奉佑 : 하음 봉씨(河陰 奉氏) 시조)에 대해 논박하다가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으로 좌천되었다. 뒤에 다시 대관(臺官 : 고려 ·조선시대에 탄핵 ·감찰 등을 담당한 관료)이 되어 이자겸(李資謙) 일당을 배척할 것을 상소하였다가 예부낭중(禮部郞中)으로 물러났다.

1147년(고려 의종 1년) 수사공상주국(守司空上柱國)을 거쳐 1148년 정당문학판호부사(政堂文學判戶部事)가 되어 지공거(知貢擧)로서 류정견(柳廷堅) 등 25인의 급제자를 선발하였고, 권판병부사(權判兵部事)·참지정사판병부사(參知政事判兵部事)로 임명되었다.

1149년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로 승진하여 김존중(金存中)에 영합하다가 탄핵을 받아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김존중(金存中)에 의해 평장사(平章事)로 복귀했다.

1150년 판병부사(判兵部事), 1151년 중군병마판사 겸 서북면병마판사(中軍兵馬判事兼西北面兵馬判事)를 역임하였다. 1157년 졸하자 문경(文敬)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성품이 강개(慷慨)하고,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섭렵했으며, 오언시(五言詩)에 뛰어났다고 고려사 열전(高麗史 列傳)에 기록되어 있다.

 

차자강운(次子剛韻 : *자강의 시에 차운하다.)   - 춘정 변계량(春亭 卞季良)

關門一室淸(관문일실청) 문 닫은 방에 맑은 기운이 감돌고

烏几淨橫經(오궤정횡경) 까만 책상에 경전이 가지런히 놓여있네.

纖月入林影(섬월입림영) 초승달은 숲에 들어 그림자 비추고

孤燈終夜明(고등종야명) 외로운 등불은 밤새도록 밤을 밝히네.

 

*자강(子剛)은 유정 장옥(張玉 柳亭. 1493 ~ ? )으로 자 자강(子剛), 호 유정(柳亭)이며,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조선전기 군자감부정(軍資監副正), 예빈시정(禮賓寺正 : 조선시대 예빈시(禮賓寺)에 둔 정3품 관직)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