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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경칩 관련 한시 목만중 경칩일우좌(睦萬中 驚蟄日雨坐)

매년 3월 초에 이르면 24 절기 중 경칩(驚蟄) 일이 다가온다. 경칩은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로 들에는 새싹이 돋는 것을 기념하고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는 중요한 절기이다.

경칩이 지나면 기온은 날마다 상승하며 마침내 봄으로 향하게 된다. 한서(漢書)에는 열 계(啓) 자와 겨울잠을 자는 벌레 칩(蟄) 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고 기록되었는데, 후에 한(漢) 무제(武帝)의 이름인 계(啓)를 피휘(避諱 : 휘(諱)로 쓰인 글자를 사용하지 않는 관습이다. 휘(諱)는 원래 군주의 이름을 일컫는 말로 음이 비슷한 글자를 모두 피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행해졌다.)하여 놀랠 경(驚) 자를 써서 경칩(驚蟄)이라 하였다. 옛사람들은 이 무렵에 첫 번째 천둥이 치고, 그 소리를 들은 벌레들이 땅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올해는 초봄추위로 예년에 비하여 10여일 늦게 꽃 소식이 전해질 것이라고 한다. 3월 5일 경칩일에는 남으로부터 매화소식이 반갑게 전해질 것이기에 여와 목만중(餘窩 睦萬中)의 경칩 관련 한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경칩일우좌(驚蟄日雨坐 : 비 내리는 경칩 날 앉아서)

幽人睡足喚新茶(유인수족환신차) 은거하며 잠에서 깨어 새 차(茶) 달라 부르고

簾几翛然烏帽斜(염궤소연오모사) 주렴 안석(案席) 오사모(烏紗帽)에 느긋이 앉아 있네.

龍氣噓成驚蟄雨(용기허성경칩우) 용의 기운 뿜어내니 경칩 날에 비 이루고

鳥聲催動過冬花(조성최동과동화) 새소리 재촉하며 겨울 꽃 지나가네.

每年無恙唯山色(매년무양유산색) 해마다 근심 없음은 다만 산의 빛깔뿐

垂老關情是物華(수로관정시물화) 나이 들어 정 솟음은 자연 경치 이라오.

多謝諸君遠來意(다사제군원래의) 멀리서 찾아온 뜻 여러분께 감사하니

書齋信宿碧雲賖(서재신숙벽운사) 이 틀 밤 머문 서재에 푸른 구름 아득히 멀어지네.

 

여와 목만중(餘窩 睦萬中. 1727 ~1810년)은 목만중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18세기 남인 문단을 대표하는 문장가이다.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유선(幼選), 호는 여와(餘窩)이다. 홍문관수찬을 지낸 목취선(睦取善)의 6대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승정원승지 목천성(睦天成)이다. 아버지는 진사 목조우(睦祖禹), 어머니 청주한씨(淸州韓氏)는 한명익(韓命翼)의 딸이다. 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이한덕(李漢德)의 딸이다.

1727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시재(詩才)가 뛰어나다는 평을 들으며 성장하였다. 1747년(영조 23) 식년 생원시에 입격 하였고, 1759년(영조 35) 33세의 나이로 별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본격적인 관직 활동을 시작하였다.

1759년(영조 35) 문과 급제하여 관직 활동을 시작하였다. 채제공, 정범조 등과 함께 18세기 남인 문단을 대표하는 문장가로 평가받고 있다. 정치적으로 남인 벽파(南人 僻派)에 속하였으며,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천주교인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남인 시파(時派)를 탄압하는 데 일조하였다.

의정부사록(議政府司錄)을 거쳐 1762년(영조 38)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에 올랐으나 그해 임오화변(壬午禍變)에 관계되어 함경도 이원(利原)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1764년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으로 복직하여 예조정랑(禮曹正郞), 병조정랑(兵曹正郞)을 거쳤다.

이후 감사 홍낙순(洪樂純)과의 불화로 벼슬을 버리고 서울로 돌아와 17년간의 칩거에 들어간다. 이 기간에 목만중은 채제공(蔡濟恭), 정범조(丁範祖) 등과 시사(詩社)를 결성하였고, 문우(文友)들과 함께 금강산 및 강원도, 평안도 등을 유람하며 기행문과 많은 시를 남겼다. 목만중은 채제공, 정범조와 함께 18세기 남인 문단을 대표하는 문장가로 평가받고 있다.

1786년(정조10) 중시(重試)에서 장원을 차지한 목만중은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으로 관직에 복귀하였고, 태천현감(泰川縣監)을 거쳐 병조참의・공조참의・병조참의・동부승지・우승지・돈영부동지사(敦寧府同知事) 등에 제수되었다. 1806년(순조 6)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에 올랐으며, 다음 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이후 1810년 8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18세기 남인 문단의 주요 일원으로 활동하였고, 『삼명시화(三溟詩話)』・『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 등 당대 시화집에서 언급될 만큼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의 시문집인 『여와집(餘窩集)』에 수록된 시를 포함하여 현전 하는 시는 모두 2,600여 수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봄날의 향연)

끈끈이대나물 꽃 군락
죽단화
박태기나무 꽃
명자꽃
제비꽃
금낭화
홍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