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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혜환재 이용휴 방산가(惠寰齋 李用休 訪山家)

조석으로 부는 바람에 한기가 스며는 가을의 정점이다. 들녘은 가을걷이에 한창이고 출근길 주변에는 무서리(처음 내리는 묽은 서리)가 내려서인지 시들어 가는 잎이 눈에 들어온다. 작년 가을은 단풍이 곱게 물들기 전에 된서리가 미리 내려서 그리 곱지 않았는데 올해 단풍은 기대해 볼만 할 것 같다. 초록이 우거진 봄에 찾았던 대둔산 단풍은 10월 말 11월 초가 절정이라니 조만간 찾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해 보리라.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혜환재 이용휴(惠寰齋 李用休)의 시 방산가는 석류꽃 피는 어느 5월에 벗이 있는 산골 집을 방문하면서 지은 시로 음미해 볼수록 많은 여운이 남는다. 심산유거(深山幽居)하는 벗이 있어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다면 이 또한 인생의 행복함이 아니겠는가?

 

방산가(訪山家 : 산골 집을 방문하면서..)

松林穿盡路三丫(송림천진로삼아) 솔숲을 다 지나니 세 갈래 길 나와

立馬坡邊訪李家(입마파변방이가) 언덕 가에 말 세우고 이 씨 집을 물었네

田父擧鋤東北指(전부거서동북지) 농사꾼 호미 들어 동북쪽 가리키는데

鵲巢村裏露榴花(작소촌리로류화) 까치둥지 있는 마을에 석류꽃 드러나네

 

혜환재 이용휴(惠寰齋 李用休 1708 ~ 1782)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경명(景命), 호는 혜환재(惠寰齋). 아버지는 이침(李沉)이다. 이잠(李潛)의 조카이며 남인 실학파의 중심이었던 이가환(李家煥)의 아버지이다.

어려서는 작은아버지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배웠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나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세속의 일에서 벗어나 옛 성현들의 책에 모범을 두고 옛사람의 문장을 몸으로 익히는 데에 모든 노력을 쏟았다. 음보(蔭補 : 조상의 덕으로 벼슬을 얻음)로 벼슬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그는 실학(實學)의 학맥을 따라 천문·지리·병농 등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사상에 입각한 것이 많다. 특히 하층민 입장에서 그들에 관한 전(傳)을 썼다. 해서개자(海西丐者)라는 한문소설에서 거지(개글:丐乞)와의 묻고 답하는 내용을 통해 그 거지가 순진하고 거짓 없는 마음씨를 가졌다고 한데 이어서, 거친 들판, 옛 산협(山峽)에 숨은 선비 또는 농촌에서 일하는 이들 가운데에 참된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정통의 전 양식과는 성격이 다르다.

해서개자 통해 그의 문학관은 영달을 위한 수단이 아닌 문학 그 자체의 진실을 추구하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주자학적 권위와 구속을 부정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상적 고민이 깊지 않은 한계를 지녔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문인의 사명과 창작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했고, 30여 년을 문장가로서 남인계의 문권(文權)을 잡았다.

작품으로는 신광수(申光洙)가 연천 고을에 사또로 부임할 때 지어 준 송신사군광수지임연천(送申使君光洙之任漣川)등이 있고, 저서로는 탄만집(炭+文 曼+文 集)·혜환시초(惠寰詩抄)와 혜환잡저(惠寰雜著)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