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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求古深論

조조 단가행(曹操 短歌行)

단가행(短歌行) 또는 시의 첫 구절  4글자를 따서 대주당가(對酒當歌)라고 하는 조조의 한시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는 조조(曹操)가 적벽대전(赤壁大戰)을 앞두고 연회 도중 지은 것으로 삼국지 관련 연극이나 영화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시다.

내용면에서도 문학성이 뛰어나 널리 회자(膾炙)되는 시로 조조의 성품을 단편적으로 들어낸 야망과 포부, 비장함과 불확실성 한 미래의 복합성에 대한 묘사들이 한치의 오차 없이 장중한 어조로 천하를 얻고자 하는 웅심(雄心)을 표현 함으로서 삼국지를 대하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명시로 알려져 있다.
시구에 등장하는 두강(杜康), 자금(子衿), 녹명(鹿鳴) 등은 주명(酒名)의 유래와 시경(詩經)에 대한 인용 등 내요을 살펴볼 수 있게 해설과 함께 4구절로 나누어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단가행(短歌行 : 짧은 노래)

對酒當歌, 人生幾何(대주당가 인생기하) 술을 마주하고 노래하세, 인생 그 얼마나 되리오!
譬如朝露, 去日苦多(비여조로 거일고다) 마치 아침이슬같이 짧지만, 지나간 나날 고난이 적지 않았지
慨當以慷, 憂思難忘(개당이강 우사난망) 분개하고 탄식하며 노래하여도 근심을 잊기는 쉽지 않으니
何以解憂, 唯有杜康(하이해우 유유두강) 어찌 근심을 잊을까? 오로지 술 뿐 일세

 

靑靑子衿, 悠悠我心(청청자금 유유아심) 푸르고 푸른 현인들의 옷깃은, 내 마음에 아련히 남아 있네
但爲君故, 沈吟至今(단위군고 침음지금) 오로지 그대들이 있기에 지금까지 나직하게 노래하네.
呦呦鹿鳴, 食野之苹(유유녹명 식야지평) 우우하며 울부짖는 사슴들이 들판의 풀을 먹고 있구나.
我有嘉賓, 鼓瑟吹笙(아유가빈 고슬취생) 나에게는 훌륭한 손님이 있어, 슬(瑟)을 타고 생황(笙篁)을 부노니

 

明明如月, 何時可掇(명명여월 하시가철) 밝기는 달과 같은데, 어느 때나 그것을 딸 수 있으랴.
憂從中來, 不可斷絶(우종중래 불가단절)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근심, 끊어버릴 수 없구나.
越陌度阡, 枉用相存(월맥도천 왕용상존) 논둑과 밭둑을 넘어, 힘들여 인사하러 와 주었으니.
契闊談讌, 心念舊恩(계활담연 심념구은) 서로 깊이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속으로 옛 은혜를 생각하네.

 

月明星稀, 烏鵲南飛(월명성희 오작남비) 달이 밝아 별빛이 흐릿한데, 까막까치는 남쪽 향해 날아가나
繞樹三匝, 何枝可依(요수삼잡 하지가의) 나무를 빙빙 돌지만, 어느 가지에 의지할 수 있으랴?
山不厭高, 海不厭深(산불염고 해불염심) 산은 높은 것을 마다하지 않고, 바다는 깊은 것을 싫어하지 않으니
周公吐哺, 天下歸心(주공토포 천하귀심) 주공은 먹은 것을 토해내며, 천하의 마음을 얻었네

조조(曹操. 155 ~ 220) 중국 후한(後漢) 말기의 정치인으로 위(魏) 나라 건국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자(字)는 맹덕(孟德), 아명(兒名)은 아만(阿瞞)·길리(吉利)이다. 패국(沛國) 초현(譙縣, 지금의 安徽省 亳州市) 사람이다. 조조는 어려서부터 책을 즐겨 읽었으며,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드러냈다. 고대 병법가의 저술을 연구하여 《손자병법(孫子兵法)》에 주석을 붙인 《위무 주손자(魏武註孫子)》라는 저술을 남겼다. 그리고 시부(詩賦)에도 뛰어난 성취를 보여 두 아들인 조비(曹丕), 조식(曹植)과 함께 ‘삼조(三曹)’라 불리기도 한다. 213년 조조는 위공(魏公)으로 봉해졌으며, 216년에는 스스로를 위왕(魏王)으로 봉하고 황제와 마찬가지의 권력과 위세를 행사하였다. 그는 220년 3월 15일(建安 25년 1월 23일)에 병으로 낙양에서 죽었는데, 죽은 뒤 무왕(武王)의 시호를 받았으며, 4월 11일에 업성(鄴城)의 고릉(高陵)에 묻혔다. 조조가 죽자 그의 아들 조비(曹丕)가 위왕 지위를 계승했다. 이후 조비는 헌제에게 선양을 받아 위나라 황제가 되었으며, 조조는 무황제(武皇帝)로 추존되고 태조(太祖)라는 묘호(廟號)를 받았다.

 

두강(杜康)은 본문에서는 '술'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두강'이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두강은 동주시대의 술 빚는 명인으로, 이후 잘 빚어진 술을 '두강주(杜康酒)'라고 한다.

중국인명사전에 따르면 두강은 소강(少康)으로도 불리며, 술을 최초로 만들었다고 하는 전설상의 인물이다. 

현재 하남성 여양현(汝陽縣)에 두강촌(杜康村)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두강이 술을 만든 곳이다.



[작품해설]
조조(曹操)의 한시 단가행(短歌行 : 짧은 노래), 즉 「단가행」은 원래 두 수로 이루어져 있으나, 첫 수가 널리 알려져 있다. 조조는 문학적으로는 시인이지만 정치가로서 더욱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이 시 역시 정치가적인 결의를 드러내고 있다. 시의 마지막에 언급된 천하의 인심을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은 바로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웅지를 드러낸 것으로, 이 시의 핵심 주제이다. 그러나 조조는 단순히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웅지만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그 웅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현명한 인재가 있어야 함을 통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주로 인재를 얻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토로하고 있다.

서두에서는 현재까지 겪은 인생길을 회고하고 있다. 숱한 전쟁으로 얼마나 고난이 많았던가?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렇게 괴로워야 하는가? 이 말들은 조조가 자신의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인생길에 대한 탄식일 뿐이다.

조조는 당시 아직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 이후의 내용은 현실적인 근심을 언급하고 있다. 시 중에서 ‘두강(杜康)’이란 최초로 술을 만들었던 인물이다. 물론 근거는 없지만 조조는 두강을 빌어 술을 비유하고 있다. 조조가 말하는 근심은 인재에 대한 갈구이다.

조조는 자신의 통일이라는 이상은 훌륭한 인재들을 바탕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조는 시경(詩經)의 시 「그대의 옷깃(子衿 : 자금)」을 이용하고 있다. 이 시는 원래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내용이지만, 조조는 이를 이용하여 그리워하는 대상을 인재로 비유하고 있다. 이어서 인용한 『시경』의 시 「우는 사슴(鹿鳴 : 녹명)」 역시 인재에 대한 갈구와 관련된다.

이 시는 주인과 손님이 연회를 베푸는 내용인데, 조조는 자신을 주인으로 손님을 인재로 상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손님은 바로 인재를 지칭하는 것이며, 자신은 악기를 타며 그들을 환영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앞부분에 언급된 근심은 이러한 인재를 아직 얻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밝은 달을 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염원은 바로 인재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이며, 역시 아직 얻지 못했기에 근심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조조는 남북의 논길을 넘어서 인재를 구하려고 하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이들을 만나 잔치를 열면 먼 훗날에 자신이 이렇게 인재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일들을 회상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는 여전히 인재를 구하는 중이다. 어디에 있는 인재인지 모르지만 조조의 입장에서 이들은 존재하며, 새들이 나뭇가지에 깃들 듯이 인재들이 머물만한 곳을 찾을 것이므로 자신은 그 머물만한 곳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비유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어서 자신이 얼마나 인재를 찾고자 하는가를 묘사하고 있다. 산이 높든 바다가 깊든 자신은 모든 것을 무릅쓰고 인재를 찾아갈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연에서는 인재를 구하기 위해 먹고 있던 음식을 뱉어내고 인재를 예우했다는 주나라 주공의 고사를 이용하여 인재에 대한 갈망을 단적으로 말하고 있으며, 이렇게 하여 자신의 이상인 천하통일을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피력하고 있다.

(작품 속의 명문장)
對酒當歌, 人生幾何!
譬如朝露, 去日苦多
술을 마주하고 노래하세, 인생은 그 얼마나 되리오!
마치 아침이슬 같이 짧지만, 지나간 나날 고난이 적지 않았지.
술을 마주하며 노래한다는 것은 향락이 아니다. 이 구절은 조조가 전쟁의 와중에 연회를 열어 군장들을 위로하며 잠시 자신의 인생길을 회고하고 있는 장면이다. 인생의 짧음을 아침이슬이 햇빛을 받으면 금방 증발해 버리는 것에 비유하고 있는데, 교묘하면서도 시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조조는 이렇게 짧은 인생이지만 고난이 많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고난은 천하통일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느라 생긴 것이며, 이 구절이 탄식하는 듯하지만 사실상 후회하는 탄식이 아니라 다시 자신의 결의를 다지겠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山不厭高, 海不厭深.
周公吐哺, 天下歸心.
산은 높은 것을 마다하지 않고, 바다는 깊은 것을 싫어하지 않으니.
주공(周公)은 먹은 것을 토해내며, 천하의 마음을 얻었네.
조조가 산과 바다가 높거나 깊거나를 개의치 않겠다는 것은 다음 구의 주공(周公)의 고사로써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주나라의 주공은 주나라 초기의 정치가로 황제를 도와 국가의 기초를 견고하게 한 인물이다. 그는 인재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입에 든 음식을 뱉고 인재를 찾아갈 정도였다고 하며, 이렇게 했기 때문에 주나라가 안정되었다고 한다. 조조는 이 고사를 이용하여 산과 바다의 높고 깊음을 생각하지 않고 주공처럼 인재를 찾을 것이며, 이로써 천하를 통일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작품 해설 참조 : 책 (三國)曹操 著, 『조조집(曹操集)』, 중화서국(中華書局) 짧은 노래 [短歌行]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중국문학, 2013. 11., 임원빈, 박재우, 위키미디어 커먼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