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求古深論

유우석 낭도사(劉禹錫 浪淘沙)

소개하고자 하는 유우석((劉禹錫)의 낭도사(浪淘沙)는 당나라 때의 교방곡(敎坊曲 : 당 시대의 관방음악(官方音樂)의 명칭)으로 유우석(劉禹錫)과 백거이(白居易)에 의해 칠언절구(七言絶句)로 만들어졌다. 오대(五代) 때부터 유행한 단조(單調) 28자로 이뤄진 소곡(小曲)이 나중에는 사패(詞牌 : 사(詞)는 원래 먼저 곡조가 있고, 그 후에 곡조에 따라 사구(詞句)를 채워 넣는 것이다. 당시에 모든 사에는 악보가 있었는데, 이 악보를 사패(詞牌)라고 부른다.)로 쓰였다. 악장집(樂章集 : 북송(北宋) 유영(柳永)의 저서로 그는 저명한 사(詞) 작가다. 변변한 벼슬을 지내지 않아, 생졸년이 정확하지 않다. 대략 987년 출생하여 1053년 전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이름은 삼변(三變)이었는데 후에 영(永)으로 개명했고, 자(字)는 기경(耆卿)이다. 북송 시기 새롭게 대두한 시민 계층의 정서를 반영한 만사(慢詞)를 창작하여 이후 송사(宋詞)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민간 문학의 생명력과 활기를 송사에 도입했고, 도시의 풍물을 묘사하거나 나그네의 향수를 토로하는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에는 낭도사령(浪淘沙令)로 기록되어 있으며, 매화성(賣花聲), 과용문(過龍門) 등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우렁차고 비장한 노래가 많다.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 어문(語文)에 실린 유우석의 낭도사 9수를 살펴보면….

九首中 其一.

九曲黃河萬里沙(구곡황하만리사) 굽이치는 황하 만리에 뻗은 모래밭
浪淘風簸自天涯(낭도풍파자천애) 물결에 씻기고 바람에 흔들리며 하늘 끝에서 왔네
如今直上銀河去(여금직상은하거) 이제 곧장 강을 타고 은하수로 올라가서
同到牽牛織女家(동도견우직녀가)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집으로 함께 가보자

其二.

洛水橋邊春日斜(낙수교변춘일사) 낙수교 주변 봄날 저물고
碧流清淺見瓊砂(벽류청천견경사) 맑고 얕은 푸른 물속 모래 반짝이네
無端陌上狂風疾(무단맥상광풍급) 갑작스레 거센 바람 거세게 몰아쳐
驚起鴛鴦出浪花(경기원앙출랑화) 놀란 원앙 물보라에 솟구치네

其三.
汴水東流虎眼文(변수동류호안문) *변수는 동으로 흘러 잔잔한 물결 짓고
清淮曉色鴨頭春(청회효색압두춘) 맑은 새벽빛은 푸른 봄이라
君看渡口淘沙處(군간도구도사처) 모래 거르는 나루터를 바라보며
渡卻人間多少人(도각인간다소인) 변수를 건널 사람 몇 이더냐
*변수(汴水 : 하남성 개봉 근처를 흐르던 강)

其四.
鸚鵡洲頭浪颭沙(앵무주두랑점사) *앵무주 기슭엔 모래 씻는 물소리
靑樓春望日將斜(청루춘망일장사) 누각에서 봄 경치 즐기는데 해는 이미 기울고
銜泥燕子爭歸舍(함니연자쟁귀사) 제비도 흙 물고 다투어 둥지로 돌아가는데
獨自狂夫不憶家(독자광부불억가) 그대는 봄 정취에 취해 집의 일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네
*앵무주(鸚鵡洲 : 호북성 무창현 서남쪽에 있는 섬)

其五.
濯錦江邊兩岸花(*탁금강변량안화) *완화계 강둑 꽃 이여
春風吹浪正淘沙(춘풍취랑정도사) 봄바람 물결 일어 모래 적시고
女郎剪下鴛鴦錦(여랑전하원앙금) 아가씨 원앙금 재단하니
將向中流匹晚霞(장향중류필만하) 흘러가는 물결은 비단같이 한 필 저녁노을이라
*탁금강(濯錦江 : 사천성 성도(成都)에 있는 강. 일명 민강(岷江)
*완화계(浣花溪 : 당(唐) 나라 두보(杜甫)의 성도 초당(成都草堂)이 있던 곳. 그의 초당이 두 채인데 다른 하나는 만리교(萬里橋) 서쪽에 있었다 하며, 성도의 풍속에 매년 4월 19일 이 완화계 초당에 사람들이 모여 연회를 베푸니, 이 날을 완화일(浣花日)이라 했다.)

其六.
日照澄洲江霧開(일조징주강무개) 해가 깨끗한 모래밭에 비추니 강안개는 개는데
淘金女伴滿江隈(도금여반만강우) 사금(砂金)을 이는 여인들이 강굽이에 가득하다
美人首飾侯王印(미인수식후왕인) 미인의 머리에 장식한 후왕의 금도장은
盡是沙中浪底來(진시사중랑저래) 모두가 모래 속 파도 아래에서 나온 것이라네.

其七.
八月濤聲吼地來(팔월도성후지래) 8월의 파도가 포효하듯 땅으로 오르고
頭高數丈觸山回(두고수장촉산회) 몇 길 높이의 파도가 절벽에 부딪쳐 후퇴한다
須臾卻入海門去(수유각입해문거) 파도는 반드시 바다로 돌아갈 것이고
捲起沙堆似雪堆(권기사추사설퇴) 남은 건 하얀 눈 더미 같은 모래만 쌓일 뿐

其八.
莫道讒言如浪深(막도참언여랑심) *참언을 파도가 깊은 것 같이 말하지 말고
莫言遷客似沙沉(막언천객사사침) 좌천된 이에게 모래에 묻힌다 말하지 마라.
千淘萬漉雖辛苦(천도만록수신고) 천만번 일고 거르는 게 비록 고생스럽더라도
吹盡狂沙始到金(취진광사시도금) 모래를 다 불어 내니 비로소 황금이 나타나네
*참언(讒言 : 거짓으로 꾸며서 남을 헐뜯어 윗사람에게 고하여 바침.)

其九.

流水淘沙不暫停(유수도사불잠정) 물과 함께 흙과 모래 쉬지 않고 흘러가고
前波未滅後波生(전파미멸후파생) 앞 물결 지기 전에 뒤에서 물결이 일어나네
令人忽憶瀟湘渚(영인홀억소상저) 사람들이 *소상강의 모래밭을 떠올리며
回唱迎神三兩聲(회창영신삼량성) 몇 번이나 *영신을 돌아가며 불러대네
*소상(瀟湘 :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의 병칭)
*영신(迎神 : 고대에 복을 빌고 재앙을 피하기 위해 신을 맞아 노래하고 춤을 추던 의식)

유우석(劉禹錫 772~842)은 당조(唐朝)의 저명한 시인이다. 소주(蘇州) 가흥(嘉興 : 현재 금의 저장성(浙江省)에 속함) 사람이고 자는 몽득(夢得)이다. 선조가 북방에서 왔으며 스스로 중산(中山 : 지금의 허베이성(河北省) 정주시(定州市)) 출신이라 했다. 정원(貞元) 9년(793년)에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진사가 되었다. 백거이(白居易)는 그를 시호(詩豪)라고 칭했으며, 태자빈객(太子賓客)을 지낸 까닭에 사람들이 유빈객(劉賓客)이라고 불렀다. 만년에 검교예부상서, 비서감 등의 명예직 직함을 가진 적도 있어서 비서유상서(秘書劉尙書)라고도 불렸다. 유우석에 대하여는 앞서 누실명(陋室銘)에서 상세히 소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