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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求古深論

이사 상진황축객서(李斯 上秦皇逐客書) 20여 년 전 오랜 지인으로부터 모략(謀略)이라는 책을 선물 받은 기억이 있다. 총 3권으로 5천 년 중국역사를 개척한 모략(謀略)의 거장들을 만나보는 시간으로 한번 읽어서는 그 모든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책의 저자 차이위치우(柴宇球 1952 ~ )는 1952년 장쑤성 쑤양 출생. 1968년 열일곱의 나이로 군 입대하여 소장(少將)으로 퇴역했다. 군에서는 군사작전훈련처 부처장, 보병단장, 교도단장, 난징(南京) 육군지휘학원 부원장 겸 교수(박사 지도교수) 등을 역임했고, 1986년에 국방대학을 졸업했다. 1987년에 중국 군사지도학과 최초의 전문서인 군사영도학(軍事領導學)을 냈고, 많은 훈장과 표창을 받은 인물이다. 모략가들의 창조성은 인류의 지혜와 재능.. 더보기
주돈이 태극도설(周敦頥 太極圖說) 태극(太極)이라 함은 유학(儒學), 특히 성리학(性理學)에서 모든 존재와 가치의 근원이 되는 궁극적 실체를 가리키는 유교용어다. 태극도설(太極圖說)은 중국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頥)가 만년(晩年)에는 여산(廬山) 기슭의 염계서당(濂溪書堂)에서 은거(隱居)하면서 지은 책으로 전문(全文) 249자(字)의 글로 지었다. 염계선생(濂溪先生) 주돈이는 애련설(愛蓮說)에서 소개한 바 있다. :  주돈이 애련설(周敦頤 愛蓮說) (tistory.com)  우주의 근원을 태극(太極)이라 하고 태극에서부터 만물이 생성되는 과정을 도해(圖解)하여 태극도(太極圖)를 그리고 그 이론을 쓴 글로 태극에서 음양(陰陽), 오행(五行), 남녀(男女), 만물(萬物)이 나오고, 만물 가운데 인간이 가장 빼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중정(中.. 더보기
회문시 2수(回文詩 2首) : 김시습 춘하추동사절시(金時習 春夏秋冬四節詩), 이지심 감추회문(李知深 感秋回文) 가을밤이 길고도 긴 추야장장(秋夜長長) 객지에서 홀로 지세며 평소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시구(詩句)를 화선지를 펴고 문진(文鎭 : 책장이나 종이 쪽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눌러주는 물건으로 쇠나 돌로 만든다)으로 고정시킨 다음 벼루에 먹물을 담고 적당히 농담(濃淡)을 맞춘 후 붓을 잡고 글을 쓴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주로 사용하는 붓의 크기는 20호(붓의 모(毛)폭이 2Cm, 모 길이가 대략 10Cm 내외) 정도로 새 붓이면 가늘고 섬세한 글을 쓸 수 있지만 마모가 심한 붓은 먹의 농담에 의한 운필(運筆)의 묘미(妙味)를 살려낼 수 있다. 글을 쓰는 목적은 글씨보다 내용을 중심으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함이기에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삐뚤빼뚤 졸필의 범주를 넘지 못하지만 어쩌다 작품용.. 더보기
고려사 권 106. 12~14(高麗史 卷 一百六. 十二~十四). 김구(金坵) 한시를 공부하며 가장 기억에 남은 시를 선택하라 한다면 먼저 생각나는 것은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산중설야(山中雪夜)와 지포(止浦) 김구(金坵. 1211~1278) 선생의 낙이화(落梨花)가 떠오른다. 이제현 산중설야 : 익재 이제현 산중설야(益齋 李齊賢 山中雪夜) (tistory.com) 김구 낙이화 : 지포 김구 낙이화(止浦 金坵 落梨花) (tistory.com)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명성이 높으며 약 10년을 넘게 동시대에 함께한 인물이기도 하다. 두 시는 앞서 소개한 바 있다.이런 시를 접할 때마다 지혜가 샘솟고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마침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에 실려있는 지포 김구선생에 대한 기록과 해설을 찾아 함께 지포선생의 행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 더보기
소식 염노교 적벽회고(蘇軾 念奴嬌 赤壁懷古) 중국 문예사상 가장 걸출한 인물을 뽑으라면 단연코 소식(蘇軾. 1036~1101)을 들 것이다. 소식은 중국 북송(北宋) 시대의 시인이자 문장가, 학자, 정치가이다. 자(字)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였다. 흔히 소동파(蘇東坡)라고 부르며, 현 쓰촨 성(四川省) 미산(眉山) 현에서 태어났다. 시(詩),사(詞),부(賦),산문(散文) 등 모두에 능해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 천재 예술가요 못 하는 것이 없었던 팔방미인으로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천 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도 존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소개하고자 하는 소식의 사(詞) 염노교 적벽회고(念奴嬌 赤壁懷古)는 그가 황주(黃州)의 적벽에서 삼국시대(三國時代)의 명장인 주.. 더보기
유우석 낭도사(劉禹錫 浪淘沙) 소개하고자 하는 유우석((劉禹錫)의 낭도사(浪淘沙)는 당나라 때의 교방곡(敎坊曲 : 당 시대의 관방음악(官方音樂)의 명칭)으로 유우석(劉禹錫)과 백거이(白居易)에 의해 칠언절구(七言絶句)로 만들어졌다. 오대(五代) 때부터 유행한 단조(單調) 28자로 이뤄진 소곡(小曲)이 나중에는 사패(詞牌 : 사(詞)는 원래 먼저 곡조가 있고, 그 후에 곡조에 따라 사구(詞句)를 채워 넣는 것이다. 당시에 모든 사에는 악보가 있었는데, 이 악보를 사패(詞牌)라고 부른다.)로 쓰였다. 악장집(樂章集 : 북송(北宋) 유영(柳永)의 저서로 그는 저명한 사(詞) 작가다. 변변한 벼슬을 지내지 않아, 생졸년이 정확하지 않다. 대략 987년 출생하여 1053년 전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이름은 삼변(三變)이었는데 후에 .. 더보기
조조 단가행(曹操 短歌行) 단가행(短歌行) 또는 시의 첫 구절 4글자를 따서 대주당가(對酒當歌)라고 하는 조조의 한시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는 조조(曹操)가 적벽대전(赤壁大戰)을 앞두고 연회 도중 지은 것으로 삼국지 관련 연극이나 영화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시다. 내용면에서도 문학성이 뛰어나 널리 회자(膾炙)되는 시로 조조의 성품을 단편적으로 들어낸 야망과 포부, 비장함과 불확실성 한 미래의 복합성에 대한 묘사들이 한치의 오차 없이 장중한 어조로 천하를 얻고자 하는 웅심(雄心)을 표현 함으로서 삼국지를 대하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명시로 알려져 있다. 시구에 등장하는 두강(杜康), 자금(子衿), 녹명(鹿鳴) 등은 주명(酒名)의 유래와 시경(詩經)에 대한 인용 등 내요을 살펴볼 수 있게 해설과 함께 4구절로 나누어 행서체로 자서.. 더보기
돈암서원 양성당 십영(遯巖書院 養性堂 十詠) 지난겨울 광김(光金)을 대표하는 사계 김장생의 학문을 기리기 위하여 창건한 논산 돈암서원((遯巖書院)을 찾게 되었다. 매서운 날씨와 코로나로 서원을 찾는 사람은 없어 홀로 원내를 살펴보았다. 광김의 후예(後裔) 답게 선조의 자취를 세세히 살펴보고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마침 서원 문화해설사로 계신 이재철 님의 친절한 안내와 함께 궁금해하시는 양성당 내부 편액에 대한 해석과 판독이 어려운 현판 글씨 쓰신 분에 대한 궁금증을 상세하게 설명드렸더니 고마움에 따뜻한 차 한잔을 대접받았다. 또한 정문 산앙루(山仰樓) 주련(柱聯)에 대한 해석과 함께 소강절(邵康節)의 세한음(歲寒吟) 주련은 걸린 순서가 잘못되어 빠른 시일 내 수정을 요청하였는데 수정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지금은 계절이 바뀌어 한 낮 기온이 30.. 더보기
단양 사인암 (丹陽 舍人巖 ) 근자에 한가함이 찾아와 오랜만에 수묵담채(水墨淡彩)의 시간을 가졌는데 화재(畵材)로 단양 사인암의 봄 풍경을 그려보았다. 사인암은 단양을 대표하는 팔경중 하나로 앞을 흐르는 강과 암자가 있어 옛 선비들이 즐겨 찾아 시흥을 즐기며, 바위에 글을 새겨 그때의 흔적을 남겼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과 함께 그때의 흥취를 느껴보고자 한다. 사인암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암리에 위치한다. 높이는 약 50m이며 기암 아래는 남조천이 흐르며 소(沼)를 이루고 있어 아름다운 풍치를 더해주는 곳이다. 사인암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고려 때 유학자인 역동(易東) 우탁(禹倬) 선생의 행적 때문에 지어졌다. 고려 시대 우탁이 임금을 보필하는 직책인 정 4품 '사인(舍人)'이라는 벼슬에 있을 당시 이곳에 머물렀다는 사연이 있어 조선 .. 더보기
왕발 등왕각서(王勃 滕王閣序) 등왕각(滕王閣)은 중국 강남 3대 명루(江南三大 名楼)로 후베이성(湖北省) 우한시(武汉市, 무한시)의 황학루(黄鹤楼), 후난성(湖南省) 웨양시(岳陽市, 악양시)의 악양루(岳陽楼)와 더불어 강남 3대 명루(江南三大名楼)의 하나다. 당(唐)의 고조(高祖) 이연(李渊)의 아들인 등왕(滕王) 이원영(李元嬰)이 영휘(永徽) 4년인 653년에 처음 건립하였으며 장시성(江西省) 난창시(南昌市, 남창시) 서남쪽, 장강의 지류인 간강(赣江, 감강) 동안, 둥후구(东湖区, 동호구)에 위치하고 있다. 최초 건립 후 20여 년 후 후임 홍주도독(洪州都督)이 이를 재건하고 문인들로 하여금 시문을 짓게 하였는데 그중 왕발(王勃)이 지은 등왕각서(滕王閣序)가 유명하다. 이후 송(宋), 원(元), 명(明), 청(清)에 걸쳐 수십 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