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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求古深論

소식 염노교 적벽회고(蘇軾 念奴嬌 赤壁懷古)

중국 문예사상 가장 걸출한 인물을 뽑으라면 단연코 소식(蘇軾. 1036~1101)을 들 것이다.

소식은 중국 북송(北宋) 시대의 시인이자 문장가, 학자, 정치가이다. 자(字)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였다. 흔히 소동파(蘇東坡)라고 부르며, 현 쓰촨 성(四川省) 미산(眉山) 현에서 태어났다. 시(詩),사(詞),부(賦),산문(散文) 등 모두에 능해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 천재 예술가요 못 하는 것이 없었던 팔방미인으로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천 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도 존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소개하고자 하는 소식의 사() 염노교 적벽회고(念奴嬌 赤壁懷古)는 그가 황주(黃州)의 적벽에서 삼국시대(三國時代)의 명장인 주유(周瑜)를 회상하며, 이에 편승하여 작가의 인생에 대한 회한을 접목하였다. 그러나 이 적벽은 적벽대전이 있었던 후베이 성(湖北省) 가어현(嘉魚縣)의 적벽과는 다른 적벽이다.

이 염노교 적벽회고 작품의 형식은 사(詞)이기 때문에 염노교(念奴嬌)는 작품의 제목이 아니고, 악보에 해당하는 사패(詞牌)이다. 따라서 내용과는 무관하다. 사패 염노교는 쌍조(雙調)로 2절이며, 100자이다.

 

적벽회고의 탄생 배경은 그가 남긴 여러 편의 글이 문제가 되어 황주(黃州 : 중국 후베이 성)로 유배 아닌 유배를 가게 된다.

황주로 온 소식은 황주성 동문 밖에 있는 언덕에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자신을 가리켜 "동파거사(東坡居士)"라 부르게 된다.

그리고 1082년 이곳에서 그의 대표작이라 일컫어지는 염노교 ·적벽회고가 탄생한다.

소동파가 적벽에 와 오(吳) 나라 명장 주유(周瑜. 175~210)와 조조군(曹操軍)의 적벽대전을 떠올리며 지은 시다.

전체적인 사(詞)의 흐름은 앞서 소개한 바 있는 곤곤장강동서수..(滾滾長江東逝水..)의 삼국지 서사(三國志 序詞)와 맥을 같이한다. 삼국지 서시 : 삼국지 서시(三國志 序詩) (tistory.com)

 

소식이 47세에 지었다는 적벽회고는 중국 서예가들이 즐겨 쓰는 소재(素材)로 널리 알려져 있는 명사(名詞) 1,2절을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염노교 적벽회고(念奴嬌 赤壁懷古 : 적벽에서 옛일을 회고하며) 1절.

大江東去, 浪淘盡, 千古風流人物(대강동거, 랑도진, 천고풍류인물) 동쪽을 향해 흐르는 장강의 물결은 천고의 영웅호걸들을 씻어낸다.

故壘西邊, 人道是, 三國周郞赤壁(고루서변, 인도시, 삼국주랑적벽) 사람들은 옛 보루의 서쪽을 가리켜 삼국시대 주유가 조조군을 물리쳤던 적벽이라고 얘기한다.

亂石穿空, 驚濤拍岸, 卷起千堆雪(난석천공, 경도박안, 권기천퇴설) 가파른 암석은 하늘을 찌를 듯하고, 거센 파도는 석벽에 부딪쳐, 천년의 눈처럼 하얗게 겹겹이 부서진다.

江山如畵, 一時多少豪傑(강산여화, 일시다소호걸) 마치 그림과도 같은 이곳에, 당시 얼마나 많은 영웅호걸이 있었던가.

 

2절.

遙想公瑾當年, 小喬初嫁了, 雄姿英發(요상공근당년, 소교초가료, 웅자영발) *소교와 막 혼인했을 때의 주유를 떠올려보면, 미녀와 함께해 더욱 빛나는 영웅의 모습이었다.

羽扇綸巾, 談笑間, 檣櫓(强虜)灰飛烟滅(우선륜건, 담소간, 장로(강로)회비연멸) 손에는 부채를 들고 머리에는 푸른색 두건을 쓴 채, 담소를 나누는 동안, 조조의 수군은 자욱한 연기 속에 타들어가 재로 변했다.

故國神游, 多情應笑我, 早生華發(고국신유, 다정응소아, 조생화발) 남들은 삼국시대의 전장에 와서 이런 감상에 빠진 나를 비웃는데, 어쩌면 이런 내 성격이 머리를 더 빨리 희게 한지도 모른다.

人生如夢, 一尊還酹江月(인생여몽, 일존환뢰강월) 인생은 한바탕 꿈과 같아, 술 한잔을 강물에 비친 달에게 건네니, 나와 같이 취해보자꾸나.

 

*염노교(念奴嬌 : 당 현종시절 염노(念奴)라는 명창(名唱)인 기생으로 사후 아름다운 목소리를 연상하여 교(嬌)를 붙여 사(詞) 또는 곡(曲)인 악보(樂譜)로 100자로 구성된 사패(詞牌)의 이름)

 

*소교(小橋. ? ~ ?) 후한 말 성은 교씨(橋氏), 이름은 불명, 통칭은 소교(小橋). 언니와 더불어 국색(國色), 즉 나라에서 으뜸가는 미인으로 199년 12월, 환성을 점령한 손책군에게 언니와 같이 사로잡혀 주유와 혼인했다. 주유와 결혼하고 10년 후 주유가 병사해서 언니처럼 과부가 되었으며, 주유의 자식들이 소교의 소생인지 불명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서기 184년 황건적(黃巾賊)의 난부터 서기 280년까지 중국 내륙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집필한 중국의 대표적 연의(古典歷史小說)로, 명나라 때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이 쓴 책이다. 서진(西晉)의 진수가 집필한 삼국지와 배송지(裵松之. 372~451 중국 남북조 시대의 역사가)의 삼국지주(三國志註)에 수록된 야사와 잡기를 근거로,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의 줄거리를 취하여 쓴 작품이다.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라 하여 모두 24권 240칙(則)으로 이루어졌다. 참고로, 중화권에서는 삼국연의(三國演義)라고 하며, 영미권에서는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라는 영문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 전하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명나라 가정(嘉靖) 1년인 1522년에 판각한 최초 판본은 “가정본(嘉靖本)”, 혹은 나관중의 성을 따서 “나본(羅本)”이라 하며, 명나라 때 전해지던 삼국지연의의 읽기 불편한 점을 청나라 때 모종강(毛宗崗. 중국 청나라 강희제 때의 문인, 문학평론가)이 읽기 쉽게 다시 엮은 “모본(毛本)”이 있다. 하지만 “모종강의 삼국지연의”라고는 따로 부르지 않으며, 그것까지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라고 주로 부른다.

이야기는 184년(후한(後漢) 영제(靈帝. 156~189) 중평(中平) 원년)으로부터 280년(진 무제(晉 武帝) 태강(泰康) 원년)에 이르기까지의 이른바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삼국지연의는 기본적으로 유비(劉備)가 주인공이며, 모든 에피소드는 유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당시는, 중국 인구사에 따르면 한나라 중기 5600만 명이었던 인구가 한나라 말 극심한 혼란기에 3000만 명으로 줄었으며, 삼국지 시대에는 1600만 명으로 인구가 급감한, 전란으로 인한 참담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