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이자 유구하게 이어져 오는 제사(祭祀)의 유래(由來)를 살펴보면, 먼 옛날 인류가 원시적인 생활을 할 때 천재지변이나 맹수의 공격 혹은 질병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써 하늘과 땅 심수(深水), 거목(巨木), 높은 산, 바다, 조상(祖上) 등에게 절차를 갖추어서 빌었다. 즉 신체보전(身體保全)을 위한 구복행위(求福行爲)가 제사가 발생하게 된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제사는 중세와 근대에 이르자 기복(祈福)과 자연숭배 의식에서 차츰 유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조상숭배로 변모하였다.
특히 고려 중기 이후 유교가 유입되면서 조상에 대한 제사 의식은 지배세력인 사대부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보편화되었다.
예서(禮書)에 따르면 '제왕(帝王)은 하늘을 제사 지내고 제후(帝侯)는 산천을 제사 지내며 사대부는 조상을 제사 지낸다.'고 하였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불교의례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주자가례(朱子家禮)와 같은 유교의례가 사회전반에 쉽게 보급되지 않았으나 16세기 중엽부터 성리학(性理學)이 심화되면서 양반 사대부 사회에서 주자가례가 정착하게 되고 주자가례에서 명시된 4대조까지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2대조까지 간소화되어 이어져 오면서 조상에 대한 존경과 추모의 표시로 지내기도 한다.
제사관련 내용은 앞서 상세히 소개한 바 있다. : 제사란 무엇인가? (tistory.com)
함께 살펴볼 한시는 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 1287∼1367)의 구요당(九曜堂)이다.
제사를 지내는 곳 구요당을 찾아 오르는 길 시내를 끼고 올라가는 비탈진 돌길엔 적막만 맴돈다. 오랜 세월로 길게 누운 나무는 봄이 와도 기력이 없어 새로운 잎조차 내지 못하지만 어김없이 꽃은 피어 벌들을 불러 모으고 저 멀리 종소리 들리는 풍경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시를 운치 있게 읊었다.
익재(益齋)선생은 원나라의 만권당(萬卷堂 : 고려 충선왕(忠宣王)이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베이징)에 지은 독서당(讀書堂)이다.)에서 송설 조맹부(松雪 趙孟頫) 등과 교류하며 고려에 신학문과 사상을 소개하고, 성리학을 전파,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호는 익재(益齋)·역옹(櫟翁)으로, 국사(國史), 역옹패설(櫟翁稗說) 등을 남겼다.
*구요당(九曜堂 : 구요당에서)
溪水潺潺石逕斜(계수잔잔석경사) 시냇물 졸졸 흐르며 돌길은 비탈 졌는데
寂寥誰似道人家(적요수사도인가) 누구의 집인가 적막하고 고요하기가 도인의 집 같네.
庭前臥樹春無葉(정전와수춘무엽) 뜰 앞의 누운 나무는 봄이 와도 잎이 없고
盡日山蜂咽草花(진일산봉열초화) 산 벌만 꽃을 찾아 온 종일 날아드네.
夢破虛窓月半斜(몽파허창월반사) 꿈 깨니 빈 창에는 달이 반쯤 기울어 비추고
隔林鐘鼓認僧家(격림종고인승가) 숲 너머 종. 북소리 들리니 스님의 집인가 하네.
無端五夜東風惡(무단오야동풍악) 느닷없이 새벽녘에 동쪽에서 거센 바람 불어오더니
南澗朝來幾片花(남간조래기편화) 아침 되자 남쪽 여울에 몇 꽃잎 떠 흐르네.
*구요당(九曜堂)은 고려시대에 초제(醮祭)를 지내던 곳으로 924년(태조 7)외제석원(外帝釋院)·신중원(神衆院)과 함께 개경(開京) 대궐 밖에 창건되었다. 당(堂)의 이름은 일·월(日月) 두 신(神)과 화·수·목·금·토의 오성을 합한 칠정(七政) 및 사요(四曜) 중에서 나후(羅喉)·계도(計都)의 두 성(星)을 합한 구요(九曜)에서 온 것이다.
초제(醮祭)는 고려 시대에 제신(諸神)에게 지내던 제사이다. 건국 초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궁성(宮城) 내의 구정(毬庭) 혹은 회경전(會慶殿)이나 내정(內庭)에서 왕이 직접 천지(天地), 산천(山川) 등의 제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이중에는 도교의 상제(上帝)나 오방산해신군(五方山海神君) 및 성신(星辰)이 모두 포함되었으며 제사의식도 도 · 불 혼합(道佛混合) 형태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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