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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허당 신년정우, 과동정호(許棠 新年呈友, 過洞庭湖)

민족 최대명절 설날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설 풍경도 예전과 다르게 변했을 뿐만 아니라 나이가 한 살 더 먹었다는 것과 양력이 보편화됨에 따라 설날 새해인사보다 “설 잘 쉬셨습니까?”라는 인사가 더 어울리는 말이 되었다.
부모님 생전 명절은 귀향을 위한 극심한 차량 정체조차 성가시지 않았고 형제들을 만나는 기대감으로 고향 찾는 즐거움이 컸었는데 부모님 떠난 이후의 명절모습은 점점 쓸쓸하게 느껴진다.
 
함께 살펴볼 당(唐) 시인 허당(許棠)의 신년정우(新年呈友)는 새해 아침 시인은 거울 속 자신의 쇠약해진 모습을 발견하고는 친한 벗을 떠올린다. 세파에 시달리며 살아온 지난 날의 발자취가 허망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돌이켜보며 봄바람에 취해 친구와 술 한잔 나누며 맘껏 봄을 만끽하고자 하는 희망적 요소가 담겨있다. 또한그를 유명하게 만든 시 과동정호(過洞庭湖)를 같이 올려보았다.
 
신년정우(新年呈友 : 새해 친구에게 드리다)

一月月相似(일월월상사) 한 달 한 달은 서로 비슷해도
一年年不同(일년년부동) 한 해 한 해는 같지가 않네.
淸晨窺古鏡(청신규고경) 맑은 아침 낡은 거울 들여다보니
旅貌近衰翁(려모근쇠옹) 객지살이에 얼굴은 쇠약한 노인의 모습.
處世閑難得(처세한난득) 한가롭게 살아가기란 정말 어렵고
關身事半空(관신사반공) 나와 관련된 일 대부분 공허하기만.
浮生能幾許(부생능기허) 덧없는 인생 그 얼마나 남았으랴
莫惜醉春風(막석취춘풍) 후회 없이 한바탕 봄바람에 취해나 보세
 
과동정호(過洞庭湖 : 동정호를 지나며)

驚波常不定(경파상부정) 솟구치는 파도는 늘 가만히 있지 않고,
半日鬓堪斑(반일빈감반) 반나절에 귀밑머리 반백이 되었네.
四顧疑無地(사고의무지) 땅이 없는가 의심되어 사방을 살펴보니
中流忽有山(중류홀유산) 호수 가운데 홀연히 산이 솟아 있네.
鳥高恒畏墮(조고항외타) 높이 나는 새도 떨어질까 늘 두려워하고
帆遠却如閑(범원각여한) 저 멀리 돛단배는 도리어 한가롭네.
漁父閑相引(어부한상인) 어부들은 한가롭게 서로 그물을 당기며
時歌浩渺間(시가호묘간) 망망한 호수에서 때때로 노래 부르네.
 
허당(許棠, 822 ~ ?)은 당(唐) 말기사람으로 자(字) 문화(文化)이며, 특히 시(詩)에 능했다. 과동정호(過洞庭湖)이란 시로 명성을 얻어 당시 허동정(許洞庭)이라 불렸다고 한다. 허당(許棠), 유탄지(喩坦之), 극연(劇燕), 오한(吳罕), 임도(任濤), 주요(周繇), 장빈(張蠙), 전곡(鄭谷), 이서원(李棲遠)과 함께 함통십철(咸通十哲)이라 일컬어졌다. 함통(咸通) 12년(871년), 진사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화이난관의 역관(驛官)이 되었고, 경현위(涇縣尉)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건주(虔州)에 강녕승(江寧丞)을 지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가 징현(涇縣)의 링양(陵陽) 별업(別業)에 머물렀다.
허당은 평소에 원역(遠役)과 귀수(歸愁)에 대한 시를 많이 썼으며, 시에는 험난한 인생과 뜻을 이루지 못하는 불평등한 기운이 녹아 있었기에 당시 어려웠던 현실에 대한 적시(適視)로 많은 이로 하여금 칭송을 받았다. 오언율시(五言律詩)에 뛰어났으며 과동정호(過洞庭湖) 외에도 장귀강남유별우인(將歸江南留别友人), 객행(客行), 안문관야망(雁門關野望), 추강제망(秋江霽望) 등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 신당서예문지(新唐書藝文志)에 허당시(許棠詩) 1권과, 전당시(全唐詩)에 그의 시 2권이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