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오랜 지인으로부터 모략(謀略)이라는 책을 선물 받은 기억이 있다. 총 3권으로 5천 년 중국역사를 개척한 모략(謀略)의 거장들을 만나보는 시간으로 한번 읽어서는 그 모든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책의 저자 차이위치우(柴宇球 1952 ~ )는 1952년 장쑤성 쑤양 출생. 1968년 열일곱의 나이로 군 입대하여 소장(少將)으로 퇴역했다. 군에서는 군사작전훈련처 부처장, 보병단장, 교도단장, 난징(南京) 육군지휘학원 부원장 겸 교수(박사 지도교수) 등을 역임했고, 1986년에 국방대학을 졸업했다. 1987년에 중국 군사지도학과 최초의 전문서인 군사영도학(軍事領導學)을 냈고, 많은 훈장과 표창을 받은 인물이다.
모략가들의 창조성은 인류의 지혜와 재능을 이끌어왔고, 새로운 시대를 선도했다. 원교근공(遠交近攻 : 먼 나라와 화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하는 수법)이라는 범수(凡數)의 외교모략이 있었기에 진시황(秦始皇)은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분열을 마감하고 천하통일을 일구어낼 수 있었다. 한비자(韓非子: 전국 말의 대사상가이자 철학자인 한(韓) 나라 공자 한비(韓非)가 자신의 법가(法家) 사상을 계통적으로 정리하여 저술한 책)의 정치모략인 법가사상(法家思想), 제왕학(帝王學)은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나라를 비롯해 역대 중국왕조의 실질적인 통치이데올로기 역할을 해왔다. 이들 외에도 당대를 주름잡았던 수많은 모략의 거장들은 역사 속에서 회자되었고, 지금도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활용되고 있다. 이 책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이전인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청나라 말기까지, 시대정신을 주도했던 모략가들을 정치·경제·외교·군사 등 4개 영역으로 나누어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 담긴 모략가들의 지모(智謀)와 실천방략(實踐方略)을 꼼꼼히 살펴본다면,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새로운 질의 모략사상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순자(荀子)를 스승으로 모시며 함께 동문수학했던 한비자와 이사(李斯)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모략가이다. 결국 재능이 뛰어난 한비자를 모함하여 독살한 이사는 중국 모략가의 대명사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사(李斯)는 중국역사상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로 현재까지 명문장으로 칭송받은 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 : 진시황이 유세객(遊說客)을 추방하는 것에 대해 올리는 글)는 황제가 결정한 사항을 번복시킨 내용으로 지금의 혼돈정치에서 한번쯤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라 이를 함께 살펴보고자 내용 일부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관련 내용은 수년전 간단하게 소개한 바 있다. 이사열전(李斯列傳) 태산불양토양(泰山不讓土壤)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 (tistory.com)
이사(李斯. ? ~ B.C. 208년)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 상채(上蔡) 출신으로 순자(荀子)에게서 배웠다. 진(秦) 나라에서 승상(丞相) 여불위(呂不韋)의 사인(舍人)이 되었다가 객경(客卿 : 다른 나라에서 와서 공경(公卿)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발탁되었다. 진시황을 도와 군현제(郡縣制)를 확립하고 소전(小篆)으로 문자를 통일하였으며 분서갱유(焚書坑儒 : 진나라 때 실용서적을 제외한 모든 사상서적을 불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한 일)를 단행하게 하였다. 진시황이 죽은 후 환관 조고(趙高)의 참소(譖訴 : 남을 헐뜯어서 죄가 있는 것처럼 꾸며 윗사람에게 고하여 바침)로 투옥되어 함양(咸陽)에서 처형되었다.
상진황축객서는 이사(李斯)가 객경(客卿)으로 있을 때 진(秦) 나라 조정에서 다른 나라 출신의 유세객들을 추방할 것을 논의하였다.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글로 사기(史記) · 이사열전(李斯列傳)에 보인다. 진시황(秦始皇)은 결국 이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축객령(逐客令)을 취소하였다. 유협(劉勰, 465 ~ 521은 중국 남조 양나라의 문학자)은 문심조룡(文心雕龍) · 논설(論說)에서 차상서지선설야(此上書之善說也 : 이것은 상소문 가운데 훌륭한 글이다.)라고 평하였다.
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 : 진시황이 유세객을 추방하는 것에 대해 올리는 글)
臣聞吏議逐客(신문리의축객) 竊以爲過矣(절이위과의). 昔者(석자) 繆公(목공) 求士(구사) 西取由余於戎(서취유여어융) 東得百里奚於宛(동득백리해어원) 迎蹇叔於宋(영건숙어송) 來邳豹公孫支於晉(래비표공손지어진). 此五子者(차오자자) 不産於秦(불산어진) 而繆公(이목공) 用之(용지) 幷國二十(병국이십) 遂覇西戎(수패서융).
신(臣)이 듣건대, 관리들이 유세객(遊說客)들을 쫓아낼 것을 의논한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잘못이라고 여깁니다. 옛날에 목공(繆公)은 선비를 구하여 서쪽으로는 융(戎) 지역에서 유여(由余)를 데려왔고 동쪽으로는 원(宛) 지역에서 백리해(百里奚)를 얻었으며, 송(宋) 나라에서 건숙(蹇叔)을 맞이했고 진(晉) 나라에서 비표(邳豹)와 공손지(公孫支)를 불러왔습니다. 이 다섯 사람은 진(秦)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목공(繆公)은 그들을 등용하여 20개 나라를 합병하고 마침내 서융(西戎)을 제패(制覇)하였습니다.
孝公(효공) 用商鞅之法(용상앙지법) 移風易俗(이풍역속) 民以殷盛(민이은성) 國以富强(국이부강) 百姓樂用(백성요용) 諸侯親服(제후친복) 獲楚魏之師(획초위지사) 擧地千里(거지천리) 至今治强(지금치강).
효공(孝公)은 상앙(商鞅)의 법을 써서 풍속을 바꾸어 백성들이 번성하고 나라가 부강해졌으며, 백성들은 쓰여지기를 좋아하고 제후들은 친근히 여겨 복종하였으며, 초(楚) · 위(魏)의 군사(軍師)를 사로잡고 땅을 차지한 것이 천 리가 되어 지금까지 잘 다스려지고 강성하였습니다.
惠王(혜왕) 用張儀之計(용장의지계) 拔三川之地(발삼천지지) 西幷巴蜀(서병파촉) 北收上郡(북수상군) 南取漢中(남취한중) 包九夷(포구이) 制鄢郢(제언영). 東據成皐之險(동거성고지험) 割膏腴之壤(할고유지양) 遂散六國之從(수산륙국지종) 使之西面事秦(사지서면사진) 功施到今(공시도금).
혜왕(惠王)은 장의(張儀)의 계책을 써서 삼천(三川)의 땅을 빼앗았고 서쪽으로는 파촉(巴蜀)을 병합하였으며, 북쪽으로는 상군(上郡)을 접수하였고 남쪽으로는 한중(漢中)을 취하였으며, 여러 오랑캐를 아울렀고 언영(鄢郢)을 제압하였습니다. 동쪽으로는 성고(成皐)의 험한 지형을 차지하여 기름진 땅을 베어가졌으며 마침내 6국의 합종책을 무산시켜 그들로 하여금 서쪽으로 향하여 진(秦)나라를 섬기도록 하였으니 공(功)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昭王(소왕) 得范雎(득범저) 廢穰侯(폐양후) 逐華陽(축화양) 彊公室(강공실) 杜私門(두사문) 蠶食諸侯(잠식제후) 使秦(사진) 成帝業(성제업) 此四君者(차사군자) 皆以客之功(개이객지공). 由此觀之(유차관지) 客何負於秦哉(객하부어진재). 向使四君(향사사군) 却客而不內(각객이불납) 踈士而不用(소사이불용) 是(시) 使國無富利之實(사국무부리지실) 而秦無彊大之名也(이진무강대지명야).
소왕(昭王)은 범저(范雎)를 얻어 양후(穰侯)를 파면시키고 화양(華陽)을 쫓아내어 왕실(王室)을 강하게 하였고 개인 문벌을 막았으며 제후(諸侯)들을 잠식하여 진(秦)나라로 하여금 제왕(帝王)의 기업(基業)을 이루게 하였으니, 이 네 임금은 모두 유세객들의 공(功)을 이용하였습니다. 이로 본다면 유세객들이 진(秦) 나라에 무엇을 저버렸습니까. 만약 네 임금이 유세객을 물리쳐 받아들이지 않고 선비들을 멀리하여 등용하지 않았더라면 이는 나라로 하여금 부유하고 이로운 실익이 없도록 하고, 진(秦)으로 하여금 강하고 크다는 명성이 없도록 하였을 것입니다.
今陛下(금폐하) 致昆山之玉(치곤산지옥) 有隨和之寶(유수화지보) 垂明月之珠(수명월이주) 服太阿之劍(복태하지검) 乘纖離之馬(승섬리지마) 建翠鳳之旗(건취봉지기) 樹靈鼉之鼓(수령타지고) 此數寶者(차수보자) 秦不生一焉(진불생일언) 而陛下說之(이폐하열지) 何也(하야). 必秦國之所生然後(필진국지소생연후) 可(가) 則是(즉시) 夜光之璧(야광지벽) 不飾朝廷(불식조정) 犀象之器(서상지기) 不爲玩好(불위완호) 鄭衛之女(정위지녀) 不充後宮하(불충후궁) 而駿良駃騠(이준량결제) 不實外廐(부실외구) 江南金錫(강남금석) 不爲用(불위용) 西蜀丹靑(서촉단청) 不爲采(불위채). 所以飾後宮(소이식후궁) 充下陳(충하진) 娛心意(오심의) 說耳目者(설이목자) 必出於秦然後(필출어진연후) 可(가) 則是(즉시) 宛珠之簪(완주지잠) 傅璣之珥(부기지이) 阿縞之衣(아호지의) 錦繡之飾(금수지식) 不進於前(불진어전) 而隨俗雅化(이수속아화) 佳冶窈窕趙女(가야요조조녀) 不立於側也(불립어측야).
지금 폐하께서는 곤륜산(崑崙山)의 옥(玉)을 가져오게 하셨고 수후(隨侯)와 변화(卞和)의 보배를 가지고 계시며, 야광주(夜光珠)를 드리우고 태아검(太阿劍)을 차셨으며, 섬리마(纖離馬)를 타시고 비취색 봉황 무늬의 기(旗)를 꽂고 계시며, 신령스러운 악어가죽으로 만든 북을 세워놓으셨는데, 이 여러 가지 보물들은 진(秦) 나라에서는 하나도 나지 않는 것들이거늘 폐하께서 그것들을 좋아하시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반드시 진(秦) 나라에서 나야만 된다면, 이는 야광주(夜光珠)가 조정을 꾸미지 못하고 무소뿔과 상아(象牙)로 만든 기물들이 즐기는 것이 되지 못하며, 정(鄭) 나라와 위(衛) 나라의 미녀들이 후궁(後宮)에 가득하지 못하고 뛰어난 말인 결제(駃騠)가 외양간을 채우지 못하며, 강남의 금과 주석(朱錫)도 쓸모가 되지 못하고 서촉(西蜀)의 단청(丹靑)도 채색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후궁을 꾸미고 당하(堂下)를 채워 마음과 뜻을 즐겁게 하고 귀와 눈을 기쁘게 해주는 것들이 반드시 진(秦) 나라에서 나와야만 된다면, 이는 원(宛) 땅의 구슬로 만든 비녀와 모난 구슬을 매단 귀걸이와 아(阿) 땅에서 나는 흰 비단옷과 비단에 수놓은 장식이 어전에 진상되지 못하고, 풍속에 따라 우아해져 아름답고 참한 조(趙) 나라 미녀가 곁에 서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夫擊甕叩缶(부격옹고부) 彈箏搏髀而歌呼嗚嗚(탄쟁박비이가호오오) 快耳目者(쾌이목자) 眞秦之聲也(진진지성야) 鄭衛桑間(정위상간) 韶虞象武者(소우상무자) 異國之樂也(이국지악야) 今棄擊甕叩缶而就鄭衛(금기격옹고부이취정위) 退彈箏而取韶虞(퇴탄쟁이취소우) 若是者(약시자) 何也(가야). 快意當前(쾌의당전) 適觀而已矣(적관이이의). 今(금) 取人則不然(위인즉불연) 不問可否하(불문가부) 不論曲直(불론곡직) 非秦者去(비진자거) 爲客者逐(위객자수) 然則是(연즉시) 所重者(소중자) 在乎色樂珠玉(재호색낙주옥) 而所輕者(이소경자) 在乎人民也(재호인민야) 此非所以跨海內(차비소이과해내) 制諸侯之術也(제제후지술야).
동이를 치고 질장구를 두드리며 쟁(箏)을 타고 넓적다리를 치면서 오오(嗚嗚)하고 노래를 불러 귀와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 진짜 진(秦) 나라 음악이고, 정(鄭) 나라와 위(衛) 나라의 상간(桑間), 소우(韶虞)와 상무(象武) 같은 것들은 다른 나라 음악인데, 지금 동이를 치고 질장구를 두드리는 것을 버리고 정(鄭) 나라와 위(衛) 나라의 음악을 추구하며, 쟁(箏)을 타는 것을 물리치고 소우(韶虞)를 취하니,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눈앞에 뜻을 유쾌하게 하여 보기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에 사람을 쓰는 것은 그렇지 않아 좋고 나쁨을 묻지 않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은 채, 진(秦) 나라 출신이 아니면 보내고 유세객이면 쫓아내니, 그렇다면 이는 소중히 여기는 것은 여색과 음악, 구슬과 옥에 있고 가벼이 여기는 것은 사람에 있는 것이니, 이것은 천하를 차지하고 제후를 통솔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臣(신) 聞(문) 地廣者粟多(지광자속다) 國大者人衆(국대자인중) 兵强則士勇(병강즉사용) . 是以(시이) 泰山(태산) 不讓土壤故(불양토양고) 能成其大(능성기대) 河海(하해) 不擇細流故(불택세류고) 能就其深(능취기심) 王者(왕자) 不却衆庶故(불각중서고) 能明其德(능명기덕) 是以(시이) 地無四方(지무사방) 民無異國(민무이국) 四時充美(사시충미) 鬼神降福(귀신항복) 此五帝三王之所以無敵也(차오제삼왕지소이무적야). 今乃棄黔首(금내기검수) 以資敵國(이자적국) 却賓客(각빈객) 以業諸侯(이업제후) 使天下之士(사천하지사) 退而不敢西向(퇴이불감서향) 裹足不入秦(과족불입진) 此(차) 所謂藉寇兵而齎盜糧者也(소위자구병이재도량자야).
신(臣)은 듣건대,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고 나라가 크면 사람이 많으며, 무기가 강하면 병사가 용감하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태산(泰山)은 작은 흙덩이를 사양하지 않아 그런 거대함을 이룰 수 있었고 황하와 바다는 작은 물줄기를 가리지 않아 그런 깊이를 이룰 수 있었으며, 왕천하하는 이는 모든 사람들을 물리치지 않아 그의 덕(德)을 밝게 할 수 있었으니, 이 때문에 땅은 사방(四方)을 가릴 것이 없고 백성은 다른 나라를 가릴 것이 없이, 사시사철 충만되고 아름다우며 귀신이 그에게 복을 내려주니, 이것이 오제(五帝)와 삼대(三代)의 왕들이 적이 없었던 이유입니다.
지금은 백성들을 버려서 적국에 도움이 되게 하고 빈객(賓客)을 물리쳐 제후들에게 패업을 이루도록 하여, 천하의 선비들로 하여금 물러나서 감히 서쪽으로 향하지 못하게 하고 발을 묶은 채 진(秦) 나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니, 이것은 이른바 적에게 무기를 빌려주고 도둑에게 양식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夫物不産於秦(부물불산어진) 可寶者多(가보자다) 士不産於秦(사불산어진) 願忠者衆(월충자중) 今逐客以資敵國(금축객이자적국) 損民以益讐(손민이익수) 內自虛而外樹怨於諸侯(내자허이외수원어제후) 求國無危(구국무위) 不可得也(불가득야).
물건이 진(秦) 나라에서 나지 않았지만 보배가 될 만한 것이 많고 선비가 진(秦)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충성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은데, 지금 유세객들을 쫓아내어 적국에 도움이 되게 하고 백성들을 덜어 원수에게 보태주어, 안으로는 자신을 텅 비게하고 밖으로는 제후들에게 원망을 심고 계시니, 나라가 위태로움이 없기를 추구더라도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삶의 향기 > 求古深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돈이 태극도설(周敦頥 太極圖說) (0) | 2024.05.09 |
---|---|
회문시 2수(回文詩 2首) : 김시습 춘하추동사절시(金時習 春夏秋冬四節詩), 이지심 감추회문(李知深 感秋回文) (1) | 2023.11.07 |
고려사 권 106. 12~14(高麗史 卷 一百六. 十二~十四). 김구(金坵) (0) | 2023.06.23 |
소식 염노교 적벽회고(蘇軾 念奴嬌 赤壁懷古) (0) | 2023.05.16 |
유우석 낭도사(劉禹錫 浪淘沙) (0) | 2022.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