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백거이 비파행(白居易 琵琶行)

인생을 살다 보면 뜻하든 뜻하지 않았든 타인과의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것을 인연이라 말한다.

연고(緣故) 또는 인연(因緣)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또는 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을 뜻하며, 불교의 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기도 하며, 인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이고, 연은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이다. 비슷한 말로 유연(有緣)이 있다.

인연의 결과에 따라 선연(善緣), 악연(惡緣)으로 나눠지기도 한다. 선업(善業)을 쌓아간다면 그 결과는 선연으로 귀결될 것이다.

 

1200여 년 전 백거이와 비파를 구슬프게 연주하는 여인의 애절함을 자신의 처지와 빗대어 비파행(琵琶行)을 지었으리라. 그 여인과 백거이와의 만남은 이 시를 탄생하게 된 깊은 연(緣)의 결과일 것이다.  당시 노년기 들어선 두 사람이 음악을 통한 교감으로 그녀의 인생이야기를 애절한 곡조에 묻어 써 내려갔다.

뛰어난 연주자이자 주인공인 여인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고 시를 쓴 자의 이름만 전해지는 것이 다소 아쉬울 따름이다.

그때의 악보가 전해져 지금 듣는다면 처지가 다른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명시를 지을 수 있는 감흥이 솟구쳐 나올까?

 

장한가와 비파행은 백거이를 단숨에 시인의 거장으로 만들었기에 이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인이 사랑하는 백거이의 명시 장한가(長恨歌)는 앞서 소개한 바 있다. 백거이 장한가(白居易 長恨歌) (tistory.com)

 

비파행(琵琶行)은 816년에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44세쯤 지은 대표적인 서사시(敍事詩)이다. 비파 연주를 시로써 표현한 부분은 가히 발군이라 오늘날까지도 비파행을 중국의 명시로 손꼽는 이유이다. 고전 시들 중 명시를 뽑으면 몇 수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백미(白眉)라 할 만한 시가 바로 '비파행'이다. 안타까운 처지인 사람을 동정하고 감정이입(感情移入)하는 시인의 마음을 잘 표현하였다.

 

서문에서는 시를 지은 계기를 설명한다. 백거이가 배를 타고 가다 시골에서는 듣기 힘든 세련된 도시풍 비파 연주를 듣고 반하여 여인을 가까이에 부른다. 여인의 속사정이 있어 들어보니, 과거엔 잘나가던 기녀(妓女)였으나 지금은 장사치의 부인이나 되어 시골로 은퇴하여 쓸쓸하게 살아가는 처지에 한을 품고 연주한다는 것이었다. 화자인 백거이는 여인의 구슬픈 비파 연주에 감동한 데다, 사실 자기도 좌천(左遷)되어 시골에 내려온 처지라 여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지금 자신의 모습도 슬퍼지고 안타까워 울었다는 내용이다.

 

중국 주장시(九江市) 사람들은 구강장강대교(九江長江大橋) 옆에 비파정(琵琶亭)을 지어, 백거이가 여기서 비파행을 지었음을 기렸다.

 

비파행은 한국과 중국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서로 다른 부분이 있다. 전문가들조차 다르게 해석하는 이유는 옛 문학인 데다가 하필 시(詩)라 백거이가 시어를 압축해서이다. 압축된(생략된) 시어가 뭐냐고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琵琶行(비파행 : 비파의 애절한 노래)

 

元和十年 予左遷九江君司馬. 明年秋 送客湓浦口.

원화 10년(815년) 나는 구강군사마로 좌천되었다. 이듬해 가을 분강(湓江)의 포구에서 손님을 보내는데

 

聞舟中夜彈琵琶者. 聽其音 錚錚然有京都聲.

배에서 밤중에 비파 뜯는 사람이 있었다. 그 소리를 들어보니 쟁쟁하여 서울에서나 있던 연주였다.

 

問其人 本長安倡女 嘗學琵琶於穆曹二善才 年長色衰 委身爲賈人婦.

누구인지 물으니 "본래 장안 기녀로 일찍이 목씨와 조씨, 두 스승(善才)들에게 비파를 배웠습니다만,

나이가 들어 미색이 쇠하자 상인의 부인이 되어 몸을 의탁하였나이다." 하였다.

 

遂命酒使快彈數曲. 曲罷憫然 自敍少小時歡樂事 今漂淪憔悴 轉徙於江湖閒.

다시금 술을 시키고 서둘러 몇 곡 타도록 했더니만, 연주가 끝나자 처연하게

'어릴 적에는 기쁘고 즐겁게 살았으나 지금은 시들고 초췌하여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하였다.

 

予出官二年 恬然自安. 感斯人言 是夕始覺有遷謫意.

나는 관직을 나와 2년 동안 스스로 편안하게 있었는데

이 사람 말에 느끼는 바 있어 이날 밤에 비로소 폄적(貶謫 : 벼슬자리에서 내치고 귀양 보내던 일)된 뜻을 깨달았다.

 

因爲長句歌以贈之. 凡六百一十六言 名曰琵琶行.

그리하여 긴 구절로 노래를 지어 선사하니, 모두 616자로 이름하여 '비파행'이로다.

 

尋陽江頭夜送客(심양강두야송객) 심양강에서 밤에 손님을 보내는데

楓葉荻花秋瑟瑟(풍엽적화추슬슬) 단풍잎, 물억새 꽃에 가을이 소슬하네.

主人下馬客在船(주인하마객재선) 주인도 (손님과 함께) 말에서 내려 손님 배에 같이 타고

擧酒欲飮無管絃(거주욕음무관현) 술을 들어마시려는데 음악이 없네.

醉不成歡慘將別(취불성환참장별) 취하였으나 기쁘지 않고, 떠나 보내야 하나 서글퍼서

別時茫茫江浸月(별시망망강침월) 이별할 적에 아득히 강에 달이 잠기더라.

 

忽聞水上琵琶聲(홀문수상비파성) 홀연히 물 위로 비파 소리 들리는데

主人忘歸客不發(주인망귀객불발) 주인은 돌아감 잊고 손님은 가질 않네.

尋聲暗問彈者誰(심성암문탄자수) 소리 찾아 나지막이 "누구 연주요." 물으니

琵琶聲停欲語遲(비파성정욕어지) 비파 소리 멈추되 대답을 저어하네.

移船相近邀相見(이선상근요상견) 배 옮겨 다가가 만나보고자 하니

添酒廻燈重開宴(첨주호등중개연) 술 더하고 등불 켜 잔치 다시 열었네.

千呼萬喚始出來(천호만환시출래) 천 번, 만 번 부르니 비로소 나오는데

猶抱琵琶半遮面(유포비파반차면) 여전히 비파를 안고 반 정도 얼굴을 가리었더라.

轉軸發絃三兩聲(전축발현삼량성) 굴대 감고 현 튕겨 두세 번 소리 내는데

未成曲調先有情(미성곡조선유정) 아직 곡조 이루지 않았는데도 이미 정이 있네.

絃絃掩抑聲聲思(현현엄억성성사) 현마다 가리고 누르니 소리마다 생각이 있는 듯하고

似訴平生不得志(사소평생부득지) 평생토록 뜻 얻지 못함 하소연하는 것만 같네.

低眉信手續續彈(저미신수속속탄) 고개 숙이고 손에 맡겨 계속 연주하니

設盡心中無限事(설진심중무한사) 마음속 다함없는 것들 악기 속에 담겼네.

輕攏慢撚撥復挑(경롱만연발부조) 가볍게 누르고 느리게 쓰다듬어 다시 타니

初爲霓裳後六幺(초위예상후육요) 처음은 예상(곡의 제목)이요 나중은 육요(曲의 이름)로다.

大絃嘈嘈如急雨(대현조조여급우) 큰 줄은 뚜우뚜웅 마치 소나기인 듯,

小絃切切如私語(소현절절여사어) 작은 줄 띠잉 띠잉 재잘거리는 말인 듯하네

嘈嘈切切錯雜彈(조조절절착잡탄) 뚱뚱뚜웅 띠잉 띠잉 여러 소리 섞이니

大珠小珠落玉盤(대주소주락옥반) 큰 구슬 작은 구슬 옥쟁반에 떨어지는 듯하네.

間關鶯語花底滑(간관앵어화저활) 꾀꼴 꾀꼬리 소리 꽃 밑에 미끄러지고

幽咽泉流氷下灘(유열천류빙하탄) 졸졸 흐르는 샘물이 얼음 아래 지나기 힘든 듯하네.

氷泉冷澁絃凝絶(빙천냉삽현응절) 얼어붙은 샘물이 막히듯 현도 멈추는데

凝絶不通聲暫歇(응절불통성잠헐) 멈춰도 통하지 않아 잠시 소리가 그치네.

別有幽愁暗恨生(별유유수암한생) 깊은 근심 남 모를 한 다시 생기는데

此時無聲勝有聲(차시무성승유성) 이때는 소리 없음이 소리 있음보다 낫네.

銀甁乍破水漿迸(은병사파수장병) 은병이 갑자기 깨져 물이 쏟아지듯

鐵騎突出刀槍鳴(철기돌출도창명) 철기병 뛰쳐나가 창칼 소리 나는 듯하네.

曲終抽撥當心劃(곡종추발당심획) 곡 끝나자 손 거두어 가슴 쓸어내리니

四絃一聲如裂帛(사현일성여렬백) 비단 찢듯 4줄이 한 소리 내네

東船西舫悄無言(동선서방초무언) 동쪽 배와 서쪽 배 잠잠히 말이 없고

唯見江心秋月白(유견강심추월백) 강물 한가운데 밝은 가을 달만 보이더라.

 

沈吟收撥揷絃中(침음수발삽현중) 시름에 잠겼다가 비파를 거두는데

整頓衣裳起斂容(정돈의상기렴용) 옷을 정리하여 일어나서 용모를 가다듬더니

自言本是京城女(자언본시경성녀) 스스로 이야기했네. 본디 서울 여자로

家在蝦螞陵下住(가재하마릉하주) 집은 하마릉(옛 장안) 근처에 있었는데

十三學得琵琶聲(십삼학득비파성) 열세 살에 비파 배워 다 이루었고

名屬敎坊第一部(명속교방제일부) 이름이 교방(음악을 관리하는 부서) 제1부에 있었지요.

曲罷常敎善才服(곡파상교선재복) 곡 타고나면 스승들이 탄복하고

妝成每被秋娘妬(장성매피추랑투) 화장하면 매번 추랑(재능 있는 여자)이 질투했네요.

五陵年少爭纏頭(오릉년소쟁전두) 서울의 귀하신 자제들이 앞다투어 들은 값 주니

一曲紅綃不知數(일곡홍초부지수) 한 곡에 붉은 비단 셀 수가 없었지요.

鈿頭銀蓖擊節碎(전두은비격절쇄) 전두(고급 머리 장신구)와 은비녀 박자 맞추다 부서지고

血色羅裙翻酒汚(혈색라군번주오) 핏빛 비단 치마 술에 더럽혀졌지요.

今年歡笑復明年(금년환소부명년) 올해도 즐겁게 웃고 이듬해도 그러하니

秋月春風等閒度(추월춘풍등한도) 가을달 봄바람도 헛되이 보냈지요.

弟徒從軍阿姨死(제주종군아이사) 후배기녀 군에 가고 기생어미 저승 가고

暮去朝來顔色故(모거조래안색고) 저녁 가고 아침 오니 미색은 옛 것이 되었네요.

門前冷落車馬稀(문전랭락거마희) 문 앞이 적막하여 수레며 말(馬) 탄 손 없으니

老大嫁作商人婦(노대가작상인부) 나이 들어 시집가 상인의 아내가 되었지요.

商人重利輕別離(상인중리경별리) 상인은 이익을 무거이, 이별을 가벼이 여겨

前月浮梁買茶去(전월부량매다거) 지난달엔 부량(장시성)으로 차(茶) 사러 떠났네요

去來江口守空船(거래강구수공선) (남편이) 떠난 이후 강어귀에서 빈 배만 지키니

遶船明月江水寒(요선명월강수한) 배 둘러싼 달은 밝고 강물은 차갑지요.

夜深忽夢少年事(야심홀몽소년사) 깊은 밤에 문뜩 어릴 적 꿈을 꾸고는

夢啼粧淚紅闌干(몽제장루홍란간) 꿈 때문에 울었더니 화장한 얼굴에 붉은 눈물이 흐르네

我聞琵琶已歎息(아문비파이탄식) 나는 비파 소리 듣고 탄식하는데

又聞此語重喞喞(우문차어중즉즉) 또 이 이야기 들으니 거듭 우울해졌네.

同是天涯淪落人(동시천애륜락인) 우리 모두 머나먼 곳에서 영락해 버린 사람이니,

相逢何必曾相識(상봉하필증상식) 꼭 서로 알아야만 만나겠는가!

我從去年辭帝京(아종거년사제경) 나는 지난해부터 황제 계신 서울을 떠나

謫居臥病潯陽城(적거와병심양성) 심양성에 귀양 와 살며 병들어 누웠다네

潯陽地僻無音樂(심양지벽무음악) 심양 땅은 외지고 음악도 없고

終歲不聞絲竹聲(종세불문사죽성) 일 년 내내 악기 소리 듣지 못하였네.

住近湓江地低濕(주근분강지저습) 사는 곳 분강에 가까워 낮고 습하니,

黃蘆苦竹遶宅生(황로고죽요택생) 시든 갈대와 고죽(쓴 대나무)이 집을 둘러싸 자랐네.

其閒旦暮聞何物(기간단모문하물) 그 사이에 아침저녁으로 무엇을 들었던가?

杜鵑啼血猿哀鳴(두견제혈원애명) 두견새 피 토하고 원숭이 슬피 우는 소리라네.

春江花朝秋月夜(춘강화조추월야) 봄 강에 꽃피는 아침, 가을 달 뜨는 밤

往往取酒還獨傾(왕왕취주환독경) 이따금 술 가져다 또다시 혼자 기울였네.

豈無山歌與村笛(기무산가여촌적) 촌스런 노래며 시골 피리 소리가 어찌 없으랴마는

嘔啞嘲哳難爲聽(구아조찰난위청) 조잡하고 시끄러워 듣기가 괴롭더라.

今夜聞君琵琶語(금야문군비파어) 오늘 밤 그대의 비파 소리 들었는데

如聽仙樂耳暫明(여청선락이잠명) 신선의 음악을 듣는 듯하여 귀가 잠시 맑아지네.

莫辭更坐彈一曲(막사갱좌탄일곡) 사양 마시오, 다시 앉아 한 곡 타기를

爲君翻作琵琶行(위군번작비파행) 그대 위해 '비파행'을 지으리다.

感我此言良久立(감아차언양구입) (여인이) 내 말에 감동하여 한참을 서 있는데

却坐促絃絃轉急(각좌촉현현전급) 다시 앉아 운지를 달리하니 현이 더욱 팽팽해져

凄凄不似向前聲(처처불사향전성) 애절하고 애절하여 이전 연주보다 더하니

滿坐聞之皆掩泣(만좌문지개엄읍) 모두들 다시 듣고 (얼굴을) 가리어 흐느끼는데.

就中泣下誰最多(취중읍하수최다) 그 자리에서 누가 가장 많이 눈물 흘리는가?

江州司馬靑衫濕(강주사마청삼습) 강주사마(백거이)의 푸른 적삼이 축축해졌더라.

 

시에서 묘사하는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백거이는 815년 구강군 사마로 좌천되었다. 이듬해(816) 손님이 찾아왔다가 돌아가는데, 백거이는 배웅하고자 같이 말을 타고 심양강에 가서 배에 같이 탔다. 배 안에서 환송연을 여는데 음악이 없어서 아쉬워하는 차에 놀라운 솜씨로 비파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근처에 있는 배에서 나는 소리라 백거이 일행은 배를 움직여 그 배에 다가가, 연주자에게 나와달라고 요청하고 부랴부랴 잔치 준비를 다시 하였다. 한참을 부탁하자 얼굴을 비파로 가린 여자가 나와 백거이네 배로 옮겨 타더니, 자리에 앉아 비파를 연주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를 소개했다. 자기는 본디 장안 사람으로 한때 장안에서 이름난 기녀였으나, 나이가 들자 상인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백거이는 그동안 벽촌에서 제대로 된 음악을 듣지 못해 괴로웠다. 그런데 여기서 뜻하지 않게 뛰어난 비파 연주를 들어 감탄하고, 여인의 처지에 안타까워하며, 자신도 좌천되어 이렇게 되었음을 새삼 느끼고는 슬퍼했다. 그리하여 여인에게 비파행(琵琶行)이란 이름으로 시를 쓸 테니, 다시 자리에 앉아 연주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여인도 감격하여 다시 자리에 앉아 더욱 애절한 곡조로 연주하니 배 안의 청중들이 듣고 모두들 흐느끼는데, 백거이 자신이 제일 많이 울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