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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백거이 신추희량(白居易 新秋喜凉)

나의 첫 직장은 법무부 소속으로 지방에 발령받아 6개월의 시보(試補) 기간 동안 문화의 갈증을 참지 못하고 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입사하게 되었다. 그 당시 법무훈(法務訓)이 소신(所信), 겸허(謙虛), 순리(順理)였다. 워낙 강력하게 뇌리에 남아있기에 지금까지 법무훈이 내 삶의 이정표와 같이 나를 인도하고 있다. 소신은 떳떳한 내 자신을 굳게 믿는 것이요, 겸허는 스스로를 낮추고 비우는 태도요, 순리는 도리나 이치에 순종하는 것이다.

 

삶이란 바르게 자기의 길을 간다고 하나 여지없이 난관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풀지 못하는 난관을 헤쳐나가는 길을 법무훈에서 찾곤 한다. 또한 길을 못 찾는다 할지라도 시간이라는 순리에 기탁하기 마련이다. 해결하지 못하는 모든 난관은 시간이 풀어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시간은 모든 어려움과 난관을 치유하는 묘약인가 보다. 전제조건으로 그냥 시간에 기탁하는 것이 아니라 진인사(盡人事) 후에 대천명(待天命)이리라.

 

영원히 물러나지 않을 듯한 더위의 기세가 처서(處暑)를 지나면서 누그러지고 있다. 모처럼 어젯밤은 에어컨을 틀지 않고 잠이 들었다. 창 밖에선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풀벌레 소리가 우렁차게 울리는 밤이었다.

 

고금을 막론하고 천 여 년 전 관직에서 물러난 백거이(白居易) 선생 또한 이와 같이 시원한 초가을을 반기며 시 한 수를 남겼기에 이를 자서와 함께 텃밭풍경 사진을 올려보고자 한다.

 

신추희량(新秋喜凉 : 시원한 초가을을 반기며)

過得炎蒸月(과득염증월)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철이 지나가니

尤宜老病身(우의노병신) 늙고 병든 몸이지만 의당 이를 반기네.

衣裳朝不潤(의상조부윤) 관직을 떠났기에 의복은 아침에 입을 일 없고

枕簟夜相親(침점야상친) 대자리는 밤을 편안하게 해 주네.

樓月纖纖早(루월섬섬조) 누각 위에 초승달 일찍 뜨고

波風嫋嫋新(파풍뇨뇨신) 물결 위 가을바람 솔솔 불어온다네.

光陰與時節(광음여시절) 세월 따라 계절도 변하나니

先感是詩人(선감시시인) 먼저 느끼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라네.

 

(텃밭풍경)

야콘과 아스파라거스
무우 파종(8.17) , 김장용 베추모종 정식(8.24)
종자용으로 심은 열매마.
왼편 아피오스(인디언감자)
붉은 아마란스 뒤로 차요테가 넝쿨을 뻘치고 있다.
아주까리. 씨앗을 한약명으로  피마자(蓖麻子)라 부른다.
땅콩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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