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소개한 영재 이건창(寧齋 李建昌)의 전가추석(田家秋夕)의 첫 번째를 이어서 두 번째 부분이다. 첫 번째의 분위기와 상반되게 펼쳐지는 농촌의 참혹한 실상을 한 과부를 등장시켜 애절하게 읊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여 년 전에 한 농민이 겪어야 할 가렴주구(苛斂誅求 : 세금(稅金)을 가혹(苛酷)하게 거두어들이고, 무리(無理)하게 재물(財物)을 빼앗음)의 처참함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지금은 상상하기 조차 힘든 그 시절의 단상(斷想)을 그려보며 현재의 풍족함 속에 소외된 이웃이 없는가를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연이어 두 번째 구절을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전가추석(田家秋夕 : 농가에서 맞이하는 추석)
2. 흉년이 어느 농부에게 끼치는 참상
南里釀白酒(남리양백주) 남쪽 마을에는 막걸리를 빚고
北里宰黃犢(북리재황독) 북쪽 마을에는 송아지를 잡는데.
獨有西隣家(독유서린가) 홀로 있는 서쪽 집에서는
哀哀終夜哭(애애종야곡) 슬프고 슬프게 밤새 곡 소리.
借問哭者誰(차문곡자수) 우는 이 누구냐고 물어보니
寡婦抱遺腹(과부포유복) 과부가 유복자를 안고 있다네.
夫君在世日(부군재세일) 남편이 세상에 있을 적에는
兩口守一屋(양구수일옥) 두 사람이 한 집을 지키며.
門前一席地(문전일석지) 문전의 한 자락 땅으로
歲收僅糜粥(세수근미죽) 해마다 거두어 죽은 끓였는데.
去年秋早霜(거년추조상) 작년 가을에 일찍 서리가 내려
掃地無半菽(소지무반숙) 땅을 쓸어도 콩 반쪽도 없고.
糠麩雜松皮(강부잡송피) 겨와 밀기울에 솔 껍질 섞었지만
過冬猶不足(과동유부족) 겨울나기도 태부족했다오
春來向富人(춘래향부인) 봄이 되어 부자들에게
乞禾得滿匊(걸화득만국) 볍씨를 한 움큼 얻어서
一粒惜不嚥(일립석불연) 한 톨도 아까워 먹지 않고
持爲種田穀(지위종전곡) 두었다가 밭에다 심었는데.
氣力日以微(기력일이미) 기력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지고
腸胃日以縮(장위일위축) 창자와 위는 날로 오그라 들어.
同是一般飢(동시일반기) 굶기는 똑 같이 한 가지였건만
妾何頑如木(첩하완여목) 첩은 어찌 나무같이 모질게 살아남아.
却送夫君去(각송부군거) 남편이 저 세상 떠나 감에
去埋前山麓(거매전산록) 앞산 자락에 묻었다오.
埋人人骨朽(매인인골후) 묻힌 사람 뼈 썩어 갈 때
種穀穀頭熟(종곡곡두숙) 뿌린 곡식들도 익어 가지만.
穀頭熟何爲(곡두숙하위) 곡식은 익어서 무엇한단 말인가
閉門不忍目(폐문불인목) 문 닫고 차마 보지 못하고.
卽欲決相隨(즉욕결상수) 뒤따라 죽으려 했지만
奈此兒匍匐(내차아포복) 발발 기는 이 아이는 어찌하나.
兒雖不識夫(아수불식부) 아이는 아버지를 알지 못하나
猶是君骨肉(유시군골육) 그래도 내 남편 골육인 것을
抱兒向靈語(포아향영어) 아이 안고 영전을 향해 혼잣말하다
氣絶久不續(기절구불속) 기절하여 오래도록 못 깨어났는데.
忽警吏打門(홀경이타문) 문들 관리들 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니
叫呼覓稅粟(규호멱세속) 세곡 내라고 호통을 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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