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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백거이 장한가(白居易 長恨歌)

장한가(長恨歌)는 당나라 백거이(白居易)가 지은 장편 서사시(敍事詩)이다.

당 헌종(憲宗) 원화(元和) 원년인 806년에 지어졌으며, 당나라 현종(玄宗)과 그의 비 양귀비(楊貴妃)와의 사랑을 읊은 노래이다.

당 현종(712~756)이 죽은 지 50년이 지나 백거이 나이 35세에 친구 왕질부(王質夫)와 진홍(陳鴻)이 그를 찾아와 선유산(仙遊山)에 놀러 갔다. 거기서 당 현종 이융기(李隆基)와 양귀비와의 로맨스가 화제에 올랐다. 왕질부의 제의로 백거이는 시인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시로 진홍은 산문으로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신화적인 내용으로 7언 절구로 애절하게 써내려갔다.

 

장한가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다시 네 분분으로 분류해 보면

첫 번째 운명적인 만남과 지극한, 두 번째 죽게 한 뉘우침과 찢어지는 고통, 세 번째 환도 후의 쓸쓸함과 잠 못 드는 괴로움, 네 번째 영혼과의 재회와 다시금 사랑의 맹세로 분류된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의 현실이 되었던 현종과 양귀비와의 사랑을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듯 그려낸 장한가의 말미에 비익조 연리지(比翼鳥 連理枝) 구절이 나온다. 성어(成語)로 비익연리(比翼連理)라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의 주제가 된 비익조(比翼鳥)는 수컷 암컷이 서로 눈 하나, 날개 하나씩만 가지고 있어서 둘이 함께 나란히 있어야만 날 수 있다는 상상의 새이고, 연리지(連理枝)란 뿌리가 서로 다른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얽혀 하나의 나무처럼 자라난 것을 말한다. 즉 둘이서 하나인 존재를 말하는 말로 서로 애정이 깊거나 사이가 좋은 연인이나 부부 사이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백거이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위대한 명시(名詩) 장한가를 살펴보고자 시 일부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장한가(長恨歌 : 긴 탄식의 노래)

 

제1부 : 운명적인 만남과 지극한 사랑

漢皇重色思傾國(한황중색사경국) 한 황제가 미색을 중히 여겨 절세미인 생각하고

御宇多年求不得(어우다년구부득) 황제 되어 여러 해 구했으나 얻지를 못하였네.

楊家有女初長成(양가유녀초장성) 양 씨 집에 한 여식이 이제 겨우 낭자가 되었건만

養在深閨人未識(양재심규인미식) 깊숙한 규방에서 자랐기에 아는 이가 없었더라.

天成麗質難自棄(천성려질난자기) 타고난 아름다움 그대로 버려질 리 없었기에

一朝選在君王側(일조선재군왕측) 하루아침에 뽑혀와서 황제를 곁에서 모셨구나.

廻眸一笑百媚生(회모일소백미생) 눈웃음 한 번에 온 갓 교태가 나오고

六宮粉黛無顔色(육궁분대무안색) 육궁에서 단장한 미인들이 무색하게 되었다네.

 

春寒賜浴華淸池(춘한사욕화청지) 싸늘한 봄기운에 화청지에 목욕하는 은혜 입어

溫泉水滑洗凝脂(온천수활세응지) 온천물에 부드럽게 살갗은 윤기 있게 씻었다네.

侍兒扶起嬌無力(시아부기교무력) 시녀들이 부축해 일어서자 귀엽게 힘없는 듯

始是新承恩澤時(시시신승은택시) 이로부터 성은을 새로 받기 시작하였도다.

雲鬢花顔金步搖(운빈화안금보요) 구름 같은 머리카락 꽃 같은 얼굴에, 금 떨기 같은 걸음

芙蓉帳暖度春宵(부용장난도춘소) 부용꽃 수놓은 휘장에서 봄날이 깊어갔지.

春宵苦短日高起(춘소고단일고기) 봄밤이 너무 짧아 해가 높이 뜬 뒤에 일어나니

從此君王不早朝(종차군왕불조조) 이때부터 황제는 조회에 나가지 않았더라.

承歡侍宴無閒暇(승환시연무한가) 연회를 즐기는 기쁨으로 한가한 틈이 없어

春從春遊夜專夜(춘종춘유야전야) 봄이면 봄놀이로 밤에 홀로 황제를 차지했다네.

後宮佳麗三千人(후궁가려삼천인) 후궁 중에 빼어나고 고운 이가 삼천이나 있었지만

三千寵愛在一身(삼천총애재일신) 삼천에게 내릴 총애 오로지 한 몸이 받았구나.

金屋粧成嬌侍夜(금옥장성교시야) 금옥에서 단장하고 밤마다 교태로 시중드니

玉樓宴罷醉和春(옥루연파취화춘) 옥루에서 잔치를 마친 뒤면 봄기운에 취했구나.

姉妹弟兄皆列土(자매형제개열토) 양 씨의 자매 형제 모두가 봉토를 받게 되니

可憐光彩生門戶(가련광채생문호) 이윽고 그 집 문에 눈부신 광채가 빛났도다.

遂令天下父母心(수령천하부모심) 이러하니 마침내 천하의 부모들 마음은

不重生男重生女(부중생남중생녀) 아들보다 딸 낳기를 더 중히 여기게 되었다네.

驪宮高妻入靑雲(이궁고처입청운) 여궁은 높이 솟아 푸르게 구름 속에 잠겼으며

仙樂風飄處處聞(선악풍표처처문) 신선들의 풍악 소리 곳곳에서 바람결에 들렸다네.

緩歌慢舞凝絲竹(완가만무응사죽) 느린 노래 나른한 춤사위를 긴 가락이 장단 하니

盡日君王看不足(진일군왕간부족) 하루가 다 가도록 황제는 부족함 없이 보았다네.

 

제2부 : 죽게 한 뉘우침과 찢어지는 고통

漁陽鼙鼓動地來(어양비고동지래) 어양에서 전쟁의 북소리가 땅 울리며 들려오니

驚破霓裳羽衣曲(경파예상우의곡) 그제야 놀라서 예상우의곡을 멈추게 하였다네.

九重城闕煙塵生(구중성궐연진생) 깊고 깊던 궁궐 안에 연기와 먼지가 피어나니

千乘萬騎西南行(천승만기서남행) 일천 수레 일만 말이 서남쪽을 향하여 달아났네.

翠華搖搖行復止(취화요요행부지) 물총새 깃발이 흔들리며 가다 다시 멈추다가

西出都門百餘里(서출도문백여리) 장안의 서쪽으로 길을 잡아 달려가기 백여 리라.

六軍不發無奈何(육군불발무내하) 육군이 움직이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었고

宛轉蛾眉馬前死(완전아미마전사) 미인은 처지가 바뀌어서 말 앞에서 살해되었지.

 

花鈿委地無人收(화전위지무인수) 꽃비녀가 땅바닥에 떨어져도 줍는 이가 없었구나.

翠翹金雀玉搔頭(취교금작옥소두) 비취 떨기, 금공작 머리꽂이, 옥비녀도 그대로네.

君王俺面救不得(군왕엄면구부득) 황제는 얼굴을 가리고서 구하지를 않았으나

回看血淚相和流(회간혈루상화류) 돌아보는 얼굴에는 피눈물이 뒤섞여 흐르더라.

黃埃散漫風蕭索(황애산만풍소삭) 누렇게 먼지 일고 바람은 쓸쓸히 부는데

雲棧縈紆登劍閣(운잔영우등검각) 구름까지 닿을 듯한 잔도길로 검각산에 올랐도다.

峨眉山下少人行(아미산하소인행) 아미산 아래로는 지나는 사람이 드물었고

旌旗無光日色薄(정기무광일색박) 황제의 깃발은 빛이 잃고 햇빛마저 어두웠도다.

蜀江水碧蜀山靑(촉강수벽촉산청) 촉나라 강물은 파랗고 산 빛도 푸르르니

聖主朝朝暮暮情(성주조조모모정) 황제는 아침에도 저녁에도 그리워하였구나.

行宮見月傷心色(행궁견월상심색) 행궁에서 달을 보면 마음속에 슬픔만이 가득한데

夜雨聞鈴腸斷聲(야우문령장단성) 밤비 속에 창자를 끊는 듯한 말방울 소리 들리더라.

天旋地轉廻龍馭(천선지전회용어) 하늘이 돌아가고 땅이 굴러 황제 행차 돌아오다

到此躊躇不能去(도차주저불능거) 그곳에 이르더니 주저하며 떠날 수가 없었구나.

馬嵬坡下泥土中(마외파하이토중) 마외역의 고개 아래 진흙 속에 묻혔으니

不見玉顔空死處(불견옥안공사처) 옥 같은 얼굴은 볼 수 없고 죽은 곳만 남았구나.

君臣相顧眞霑衣(군신상고진점의) 군신이 서로를 돌아보며 눈물로 옷 적시고

東望都門信馬歸(동망도문신마귀) 장안 동쪽 성문 보며 말에게 길을 맡겨 돌아왔네.

 

제3부 : 환도 후의 쓸쓸함과 잠 못 드는 괴로움

歸來池苑皆依舊(귀래지원개의구) 돌아오니 연못도 동산도 모두 옛날 그대 로고

太液芙蓉未央柳(태액부용미앙류) 태액지(池)의 부용꽃과 미앙궁의 버들도 그대로네.

芙茸如面柳如眉(부용여면류여미) 부용은 얼굴 같고 버들은 눈썹과 같았으니

對此如何不淚垂(대차여하불루수) 이들을 대하면서 어찌 눈물 흘리지 않으리오.

春風桃李花開日(춘풍도리화개일) 봄바람에 복숭아꽃 살구꽃 피어나는 나날이나

秋雨梧桐葉落時(추우오동엽락시) 가을비에 오동잎이 떨어지는 시절이 있었도다.

西宮南內多秋草(서궁남내다추초) 서궁의 남쪽에는 가을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落葉滿階紅不掃(낙엽만계홍불소) 섬돌 위에 붉은 낙엽 덮였어도 쓰는 이가 없었구나.

 

梨園弟子白髮新(이원제자백발신) 이원의 악사들도 백발이 성성하게 되었고

椒房阿監靑娥老(초방아감청아로) 초방의 궁녀들도 푸르던 눈썹이 늙었도다.

夕展螢飛思悄然(석전형비사초연) 저녁 무렵 궁궐에는 반딧불이 날아드니 처량하고

孤燈挑盡未成眠(고등조진미성면) 외로운 등불이 다 타도록 잠 이루지 못했다네.

遲遲鐘鼓初長夜(지지종고초장야) 느릿느릿 종소리 북소리에 긴 밤이 흘러가고

耿耿星河欲曙天(경경성하욕서천) 반짝이는 은하수에 새벽의 하늘이 밝아오더라.

鴛鴦瓦冷霜華重(원앙와랭상화중) 원앙 새긴 기와에는 차갑고 무거운 서리 내려

翡翠衾寒誰與共(비취금한수여공) 비취 금침 이불은 싸늘하여 함께 할 이 없었도다.

悠悠生死別經年(유유생사별경년) 아득하게 생사를 달리 한 게 벌써 몇 년이 지났는가.

魂魄不曾來入夢(혼백부증내입몽) 꿈속에 들었어도 혼백은 찾아오지 않았구나.

臨邛道士鴻都客(임공도사홍도객) 임공에서 온 도사가 홍도문의 객으로 머물면서

能以精誠致魂魄(능이정성치혼백) 정성을 다하면 혼백을 불러낸다 하였으니

爲感君王輾轉思(위감군왕전전사) 그리움에 뒤척이는 황제의 간절함에 감동하여

遂敎方士殷勤覓(수교방사전근멱) 드디어 방사에게 부지런히 혼백을 찾게 했지.

 

제4부 : 영혼과의 재회와 다시금 사랑의 맹세

排空馭氣奔如電(배운어기분여전) 허공을 가르고 번개처럼 급하게 달려가

昇天入地求之遍(승천입지구지편) 하늘에 오르고 땅속까지 들어가 두루 찾았네.

上窮碧落下黃泉(상궁벽락하황천) 위로는 하늘에 아래로는 황천까지 찾았으나

兩處茫茫皆不見(양처망망개불견) 두 곳 모두 망망하여 혼백을 찾을 수 없었구나.

忽聞海上有仙山(홀문해상유선산) 홀연히 들리기를 비다 위에 신선 사는 산 있는데

山在虛無縹緲間(산재허무표묘간) 그 산은 저 멀리 아득한 허공 속에 있다 하네.

樓閣玲瓏五雲起(누각영롱오운기) 누각은 영롱하게 빛이 나고 오색구름 피어나며

其中綽約多仙子(기중작약다선자) 그중에 아리따운 선녀들이 여럿 살고 있다더라.

 

中有一人字太眞(중유일인자태진) 그중에 한 선녀의 이름이 태진이라 하였는데

雪膚花貌參差是(설부화모참치시) 흰 살결과 꽃 같은 얼굴이 양귀비와 닮았다더라.

金闕西廂叩玉扃(금궐서상고옥경) 금궐의 서쪽 방 옥 빗장을 두드려 열게 하고

轉敎小玉報雙成(전교소옥보쌍성) 소옥에게 시킨 뒤에 쌍성에게 알리라고 전하니

聞道漢家天子使(문도한가천자사) 한나라 천자의 사자가 찾아왔단 말을 듣고

九華帳裏夢魂驚(구화장리몽혼경) 호화로운 아홉 겹 장막에서 혼백이 놀라 깨어났더라.

攬衣推枕起徘徊(남의추침기배회) 옷을 잡고 베개를 밀치면서 일어나 배회하는데

珠箔銀鉤邐迤開(주박은구이이개) 구슬 발과 은 병풍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내네.

雲鬢半偏新睡覺(운빈반편신수각) 구름 같은 머리카락 반이나마 올렸으니 갓 잠이 깬 듯

花冠不整下堂來(화관부정하당래) 화관을 정돈하지 못한 채로 대청에서 내려왔네.

​風吹仙袂飄飄擧(풍취선몌표표거) 바람이 불어오며 선녀의 옷깃을 펄럭이니

猶似霓裳羽衣舞(유사예상우의무) 예상우의곡에 맞춰 추던 그 모습인 그대로더라.

玉容寂寞淚欄干(옥용적막누난간) 옥 같은 얼굴에서 수심 젖어 눈물이 떨어지니

梨花一枝春帶雨(이화일지춘대우) 배꽃의 한 가지가 봄비에 맞는 듯하였구나.

含情凝睇謝君王(함정응제사군왕) 정을 품고 눈길 돌려 황제에게 사례하고 고하기를

一別音容兩渺茫(일별음용양묘망) 한번 이별 후 목소리와 모습을 듣고 뵙지 못하여서

昭陽殿裏恩愛絶(소양전리은애절) 소양전 안에서 받았던 은혜도 끊어졌고

蓬萊宮中日月長(봉래궁중일월장) 봉래궁 안에서 보낸 세월 아득할 뿐이옵니다.

廻頭下望人寰處(회두하망인환처) 머리 돌려 저 아랫사람들이 사는 땅을 내려보아도

不見長安見塵霧(불견장안견진무) 장안은 뵈지 않고 먼지와 안개만이 자욱했지요.

唯將舊物表深情(유장구물표심정) 다만 장차 오래된 물건으로 깊은 정을 표하려니

鈿合金釵寄將去(전합금차기장거) 자개 박은 상자와 금비녀를 가지고 가시옵소서.

釵留一股合一扇(차류일고합일선) 금비녀와 한쪽과 자개 상자 문 하나를 남겼으니

釵擘黃金合分鈿(차벽황금합분전) 금비녀도 쪼개었고 상자도 둘로 나눈 것이지요.

但敎心似金鈿堅(단교심사금전견) 이처럼 두 마음이 굳은 채로 변하지 않는다면

天上人間會相見(천상인간회상견) 천상이든 세상이든 다시금 만날 날이 있겠지요.”

臨別殷勤重奇詞(임별은근중기사) 헤어질 제 은근하고 간곡하게 거듭하여하는 말에

詞中有誓兩心知(사중유서양심지) 이 말에 맹세함이 있었으니 두 사람만 알 것이라.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칠월 칠일 칠석날에 장생전에서 하던 그 말

夜半無人私語時(야반무인사어시) 밤이 깊어 아무도 없을 때에 은밀한 그 말이라.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서 새가 되어 날게 되면 비익조가 될 것이며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서 나무 되어 자라나면 연리지가 될 것이라.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이 세상도 끝이 있고 시간조차 다함이 있겠으나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이 한만은 영원히 이어져 다함이 없으리라.

 

백거이가 806년(35세)에 지방의 관리로 임명되어 장안 지역에 부임했다. 어느 날 함께 술자리에서 대작하던 지인이 “장안은 당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가 담긴 지방이니, 이런 역사적인 이야기는 명시인들의 손길이 닿은 시가 있어야만 후대에 널리 알려진다.”하고 제안하자, 백거이가 이를 받아들여 위대한 명시 장한가를 썼다.

양귀비는 이름이 아니라 양(楊)씨 성에 귀비(貴妃)라는 직함이 붙은 호칭이다

 

당현종(唐 玄宗)은 712년에 즉위한 뒤 성실하게 국정에 임하여 개원성세(開元盛世)라고도 불리는 흥성기(興盛期)를 이루었다. 그러나 740년 양귀비를 만난 뒤 나랏일을 멀리하여 나라가 흔들렸으므로 이 시기를 천보난치(天寶亂治)라고 부른다. 결국 755년 안사지란(安史之亂 : 안사의 난은 755년 12월 16일부터 763년 2월 17일에 걸쳐 당나라의 절도사인 안록산, 부하인 사사명과 그 자녀들이 일으킨 대규모 반란이다.)이 일어났고, 이듬해 756년에는 황제도 사천으로 피난을 떠나야 했다.

 

금군(禁軍 : 7세기 당나라 황제의 친위대이다.)과 신하들이 화근인 양귀비를 죽여야 한다고 간하였고, 심지어 금군은 현종이 양귀비를 죽이지 않는다면 자신들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황제의 명령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일이 이 지경에 처하자 결국 당 현종도 사랑하는 양귀비에게 죽으라고 강요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금군이 명령을 거부하고 양귀비가 죽은 장소의 이름이 마외(馬嵬)였는데, 군병들이 황제의 명을 거부한 '변'이라 하여 이를 마외병변(馬嵬兵變)이라고 부른다.

 

당현종과 양귀비가 얽힌 이런 역사적 일화에 백거이가 상상을 가미해 쓴 서사시가 바로 장한가이다. 후반에는 죽은 양귀비가 슬퍼하는 모양새까지 그려 당현종과 양귀비의 드라마 같은 사랑을 잘 표현한, 백거이의 대표적인 명시이다. 물론 당대의 벼슬아치이자 시인인 백거이가 전 황제를 대놓고 소재로 삼을 순 없으니, 공식적으로는 한무제(漢 武帝)와 이부인(李夫人)의 고사를 바탕으로 썼다. 그래서 첫머리부터 대뜸 '한나라 황제'(漢皇)라는 말로 시작하지만 '양 씨 가문의 딸'이라고 하질 않나, (양귀비가 자결한) 마외(馬嵬)를 언급하질 않나, 양귀비의 도사(道士) 시절, 도호인 '태진'(太眞) 운운에 장안까지 이야기하니, 장한가의 실제 모델이 누군지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수준이다.

 

백거이가 지극한 어조로 장한가에서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했음에도 불구하고, 풍자하는 뜻을 집어넣었다고 보기도 한다. 황제를 가리켜 '군왕'(君王)이라고 격이 낮은말로 표현하고, 첫 구절에 다짜고짜

황제가 미색을 중히 여겨 경국(傾國之色의 미녀)을 찾는데 하는 구절이, 그로써 나라가 기울어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군왕(현종)이 양귀비와 밤을 보내느라 조회도 보지 않고 해가 높이 뜬 뒤에나 일어난다고 하는 등, 아름다운 구절로 사랑을 표현하면서도 부정적인 면을 집어넣었다. 장한가가 마냥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아름답게만 묘사하는 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문신 장유(張維, 1587~1638)는 백거이가 장한가에서 침실에서 오간 은밀한 대화까지 서술했으니 참으로 외설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연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