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1435∼1493) 선생은 앞서 수회 소개한 바 있다.
김시습은 일찍이 천하가 인정하는 신동(神童)이자 신재(神才)로 명성이 높았던 그는 조선 초기의 문인, 학자, 불교 승려이자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한성부(漢城府 : 한양)에서 출생으로 본관은 강릉(江陵), 자(字)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 불교 법명은 설잠(雪岑)이다.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자행한 단종에 대한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고 은둔생활을 하다 승려가 되었으며,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일설에는 그가 사육신의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경기도 노량진(현재의 서울 노량진 사육신 공원)에 암장했다고도 한다. 1493년 조선 충청도 홍산군(鴻山郡 : 부여) 무량사(無量寺)에서 병사하였다.
그의 일화를 살펴보면 3세 때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을 보고 시를 읊었는데 무우뢰성하처동(無雨雷聲何處動 : 비는 아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황운편편사방분(黃雲片片四方分 : 누른 구름 조각조각 사방(四方)으로 흩어지네) 지어 소문이 났는데 당시의 재상(宰相) 허조(許稠 , 1369∼1439)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김시습(金時習)의 집을 직접 찾아가, “너는 시(詩)를 잘 짓는다고 하던데 나를 위해 ‘늙을 노(老)’자를 넣어 시 한 수(首) 지어 보아라.”라고 하니, 그 자리에서 ‘노목개화심불로(老木開花心不老 :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은 늙지 않았네’)’라는 한시(漢詩)를 지어 올렸고, 크게 감탄한 허조(許稠)가 ”너는 과연 신동(神童)이로다.”라고 칭찬하였다고 한다.
신동에 대한 소문이 궁중(宮中)에까지 들어가자 학문(學問)을 좋아하는 세종(世宗)은 그를 궁중으로 데려와 관리(官吏)들을 시켜 재능(才能)을 시험(試驗)했는데, 시험관(試驗官)의 무릎 위에 앉은 김시습(金時習)이 즉석에서 자유자재로 시(詩) 몇 수(首)를 지어 보였는데 그중 삼각산(三角山)을 소재로 지었다는 유명한 시인데 그의 문집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으나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지봉유설(芝峯類說), 조선시대 승려 성능(性能)이 지은 북한지(北漢誌)에는 김시습의 시로 수록되어 있다.
삼각산(三角山) : 북한산(삼각산) 관련 한시 3수(김시습, 오순, 정철), 겨울풍광 (tistory.com)
束聳三峰貫太淸(속용삼봉관태청) 세 봉우리 한데 합쳐져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登臨可摘斗牛星(등림가적두우성) 꼭대기에 오르면 북두칠성과 견우성을 딸 수 있겠네.
非徒岳峀興雲雨(비도악수흥운우) 다만 큰 봉우리일 뿐만 아니라 비 구름 일으키니
能使邦家萬世寧(능사방가만세녕) 우리 동방을 만세까지 편안하게 하겠네.
이 보고를 들은 세종(世宗)은 매우 감동(感動)하여 비단 50 필을 하사하는 한편, “장차 크게 쓰겠노라”는 전지를 내렸기 때문에,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오세문장(五歲文章)’이라 했다.
또한 그는 유(儒). 불(佛) 정신(精神)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思想)과 탁월한 문장(文章)으로 일세(一世)를 풍미한 매월당(梅月堂)은 우리나라 사상사(思想史)에서 우주 만물(宇宙 萬物)의 본질(本質)과 현상(現象)에 대한 체계적(體系的) 설명을 시도한 최초(最初)의 철학자(哲學者)로 평가(評價) 받고 있다.
매월당은 승려(僧侶)로서 더 오랜 기간을 살았던 뛰어난 선승(禪僧)으로서 불교적 깨달음을 통해 유가적 행동 양식에 갇힌 자신의 우울한 영혼(靈魂)을 구원하고 한량없는 무애자재(無碍自在)의 세계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매월당(梅月堂)이 남긴 불교(佛敎) 관련 서적으로는 화엄석제(華嚴釋題), 화엄일승법계도주병서(華嚴一乘法界圖註幷序),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 묘법연화경별찬(妙法蓮華經別饌), 조동오위요해(曹洞五位要解), 사부산 십육제(四浮山 十六題), 향엄삼관(香嚴三關) 등 방대한 분량이며, 불교에 대한 심오함을 율곡 이이(栗谷 李珥 : 1536~1584)가 매월당(梅月堂)을 일컬어 “선어(禪語)를 좋아하여 현미(玄微)한 것을 밝혀냄에 영탈(潁脫 : 주머니 속의 송곳 끝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는 뜻으로, 뛰어나고 훌륭한 재능이 밖으로 드러나는 데가 있음을 이르는 말)하여 막히고 걸리는 것이 없었으며, 노승(老僧)과 고승(高僧) 이 그 학문(學問)에 깊은 자라 하여도 감히 그 말에 대항(對抗) 하지 못하였다”라고 평가(評價)한 것은 매월당(梅月堂)의 불교적(佛敎的) 식견(識見)과 무애자득(無碍自得)의 경지를 이루었다고 평가했다.
첫눈이 내린 후 포근한 날씨로 쌓인 눈이 거의 사라졌지만 습설(濕雪)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수 십 년을 버텨온 거목들을 쓰러트렸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이 또한 자연의 섭리이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매월당 선생이 남긴 설효(雪曉 : 눈 내린 새벽) 3수와 무제 한 수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설효1(雪曉1 : 눈 내린 새벽)
滿庭雪色白暟暟(만정설색백개개) 뜰에 가득한 눈빛은 희고 아름다워라
瓊樹銀花次第開(경수은화차제개) 옥나무 은빛 눈꽃이 차례로 피었네.
向曉推窓頻著眼(향효추창빈저안) 새벽 되어 창문 열고 주변을 살펴보니
千峰秀處玉崔嵬(천봉수처옥최외) 천 봉 빼어난 곳에 백옥같이 높게 높게 쌓였네.
설효2(雪曉2)
我似袁安臥雪時(아사원안와설시) 내가 *원안처럼, 눈 위에 누워있어
小庭慵掃捲簾遲(소정용소권렴지) 작은 뜰도 쓸지 않고 주렴마저 늦게 걷네.
晩來風日茅簷暖(만래풍일모첨난) 느즈막 부는 바람과 해, 초가집 처마 따뜻하고
閒看前山落粉枝(한간전산락분지) 한가히 앞산을 바라보니, 가지에서 흰 눈 떨어지네.
*원안(袁安 : 비록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절개와 지조를 굳게 지킴)
설효3(雪曉3)
東籬金菊褪寒枝(동리금국퇴한지) 동쪽 울타리 황국은 찬 가지에 색은 바래고
霜襯千枝个个垂(상친천지개개수) 서리 맞은 가지마다 하나하나 늘어졌네.
想得夜來重壓雪(상득야래중압설) 생각하자니, 밤 동안에 무겁게 눌린 눈
從今不入和陶詩(종금불입화도시) 이제부터 도연명의 *화시에 들어가지 못하네.
*화시(和詩 : 남의 시를 읽고 감흥 되어 그 주제나 제재를 좇아서 새로운 각도로 쓴 한시(漢詩). 화운시(和韻詩)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무제(無題)
終日芒鞋信脚行(종일망혜신각행) 종일토록 짚신 신고 발길 닿는 대로 걸어
一山行盡一山靑(일산행진일산청) 산을 하나 다 걸으면 또 푸른 산.
心非有想奚形役(심비유상해형역) 마음은 물건이 아닌데 어찌 육체의 노예가 되며
道本無名豈假成(도본무명기가아) 도는 본래 이름이 없거늘 어찌 위선을 이루리오.
宿露未晞山鳥語(숙노미희산조어) 밤이슬 마르지도 않는 새벽에 산새들 지저귀고
春風不盡野花明(춘풍부진야화명)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오고 들꽃은 밝구나.
短笻歸去千峰靜(단공귀거천봉정) 짧은 지팡이 짚고 돌아가니 천 봉우리 고요하고
翠壁亂煙生晩晴(취벽난연생만청) 맑은 저녁 하늘 푸른 절벽에 안개가 피어오르네.
(첫눈 풍경. 11.27)
'삶의 향기 > 차한잔의 여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정 이곡 고한(稼亭 李穀 苦寒) (2) | 2024.12.17 |
---|---|
의루(倚樓) 관련 한시 3수 : 두목 초동야음(杜牧 初冬夜飮), 축열림 추만등루(祝悅霖 秋晚登樓), 조하 장안만추(趙嘏 長安晚秋) (3) | 2024.12.10 |
눈 관련 한시 2수 : 민사평 눈(閔思平 雪), 이숭인 첫눈(李崇仁 新雪) (0) | 2024.12.02 |
인각대사 적천사(麟角大師 磧川寺) (0) | 2024.11.26 |
진주성 촉석루(晋州城 矗石樓) (3) | 2024.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