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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북한산(삼각산) 관련 한시 3수(김시습, 오순, 정철), 겨울풍광

북한산(北漢山)은 일 년 중 700만 명 가까이 즐겨 찾는 서울의 명산이다. 북한산의 인기는 과거 내로라하는 조선의 문인들이 북한산에 오른 뒤 기록을 남겼으며, 예나 지금 할 것 없이 북한산은 봄철에는 꽃놀이로, 가을에는 단풍놀이로 이름이 높다. 북한산이 인기인 것은 서울이라는 큰 도시를 끼고 있는 데다 풍광이 수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북한산으로 불리기 전의 삼각산(三角山)은 백운대(白雲臺)와 인수봉(仁壽峰), 만경대(萬景臺)의 세 봉우리가 삼각을 이룬 형태의 산으로 삼국시대에는 부아악(負兒岳), 횡악(橫岳), 한산 등으로 불렸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러 삼각산 또는 화산(華山)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삼각산은 한양을 병풍처럼 둘러싼 북악(北岳)으로 서울이라는 우주를 지탱하는 다섯 기둥(五岳) 가운데 북쪽 기둥에 해당하며, 서울을 상징하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그 기품과 웅장함으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遷都1394년)의 주산(主山)으로 삼았으며, 성도(成都) 626년의 세월을 굽어보고 있다.

이처럼 멋진 산이 서울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자랑이자 행복이다. 나 또한 서울에 터전을 잡은지 근 30년이 되어가는데 삶의 고락을 함께하며 위안이 되어주던 산이라 토요일은 관악산, 일요일은 북한산을 자주 오르곤 한다. 산에 올라보면 산행 결정을 내린 나 자신에 대한 칭찬을 하게 되는데 이는 산을 오른 자 만이 느낄 수 있는 보상이자 희열이기 때문이다. 과거 수많은 문인들이 삼각산을 오르고 바라보며 읊은 한시 3수를 자서와 함께 지나간 겨울 산행 사진과 함께 올려보고자 한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다섯 살 때 세종 앞에서 三角山을 소재로 지었다는 유명한 시인데 그의 문집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으나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지봉유설(芝峯類說), 조선시대 승려 성능(性能)이 지은 북한지(北漢誌)에는 김시습의 시로 수록되어 있다.

 

삼각산(三角山) - 김시습(金時習)

束聳三峰貫太淸(속용삼봉관태청) 세 봉우리 한데 합쳐져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登臨可摘斗牛星(등림가적두우성) 꼭대기에 오르면 북두칠성과 견우성을 딸 수 있겠네.

非徒岳峀興雲雨(비도악수흥운우) 다만 큰 봉우리일 뿐만 아니라 비 구름 일으키니

能使邦家萬世寧(능사방가만세녕) 우리 동방을 만세까지 편안하게 하겠네

 

오순(吳洵, 1306~ ?)고려시대 문신으로 문과 장원급제, 연일현령(延日縣令), 영원부사(寧遠府使), 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을 역임1352년(46세)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종6품)에 재임 중 1352년(공민왕 원년) 조일신(趙日新)일당이 거병하여 왕권을 침탈하자 이인복(李仁復)과 함께 조일신 일당을 소탕하는 데 공을 세움. 진현전대제학(進賢殿大提學,정2품)에 책봉되고 양경(良敬)의 시호를 받았다.

 

망상각산(望三角山 : 삼각산을 바라보며)   - 오순(吳洵)

聳空三朶碧芙蓉(용공삼타벽부용) 허공에 솟은 세 송이 연꽃 같은 푸른 봉우리,

縹渺烟霞幾萬重(표묘연하기만중) 아스라한 안개와 노을 몇 만 겹인가?

却憶當年倚樓處(각억당년의루처) 문득 생각나네 그때 누각에 기대었던 곳

日沒蕭寺數聲鍾(일몰소사수성종) 해질 무렵 들려오는 산사의 종소리

 

제삼각산감(題三角山龕 : 삼각산 감실(佛壇)에서 제하다)   - 송강 정철(松江 鄭澈)

寺在三峰外(사재삼봉외) 세 봉우리 밖에 절이 있어

懸崖第幾層(현애제기층) 층층 절벽 아래 서 있네

山中正積雪(산중정적설) 산중이라 그대로 눈은 쌓여

盡日不逢僧(종일불봉승) 종일토록 스님을 만나지 못했네

 

(북한산 겨울 풍광)

비봉에서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북한산 비봉(진흥왕 순순비)
진관사~사모바위 능선길 설경(2020.2.16)
문수봉에서 바라본 삼각산(좌측부터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승가사 뒤에 있는 사모바위, 모양이 사모(紗帽) 같아서 붙여진 이름
문수봉에서 비봉으로 펼쳐진 능선
문수봉
문수봉에서 바라본 보현봉(202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