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내린 비가 오후가 되어서도 사청사우(乍晴乍雨) 하고 있다. 한 낮 기온이 아침보다 내려가고 찬 바람마저 불어 한겨울로 접어든 느낌이다.
잠 못 이루는 길고 긴 겨울밤 자연스레 화선지를 깔고 미리 생각해 둔 인각대사의 시 적천사를 자서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의 수행 도량인 적천사(磧川寺)는 경북 청도군 청도읍 화악산(華岳山)에 있는 사찰로 신라 문무왕 4년(664)에 원효대사가 토굴로 창건했다고 전하며, 지금은 동화사(桐華寺)의 말사(末寺)이다.
적천사 은행나무는 나이가 8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당시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짚고 다니던 은행나무 지팡이를 심은 것이 자라서 이처럼 거목이 되었다고 전해져 온다.
적천사 은행나무 앞에는 강희 33년(1694년) 태허도인(太虛道人)이 지은 보조국사가 은행나무를 심은 것을 기념하는 비석인 '축보조국사수식은행수게(築普照國師手植銀杏樹偈)'가 서 있다.
조선 전기 시승(詩僧) 인각대사(麟角大師)가 적천사에서 며칠 머물며 은행나무를 기념하는 비석을 살펴보며 당시 보조국사도 이 절에 머물며 자취를 남겼듯이 본인도 적천사 시를 지어 자취를 남기고자 했으리라.
대구에 오래 살면서도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청도의 대표적인 사찰인 적천사에 대한 신유한(申維翰 1681∼? )의 적천사과방장영선사(磧川寺過方丈英禪師) 한시는 앞서 소개한 바 있다. : 청천 신유한 적천사과방장영선사(靑泉 申維翰 磧川寺過方丈英禪師) (tistory.com)
적천사(磧川寺)
격림요청출산종(隔林遙聽出山鐘) 숲 너머 멀리 산사의 종소리 들려오니
지유연방재취봉(知有蓮坊在翠峰) 푸른 봉우리에 절이 있는 줄 알겠네.
수밀영차당호월(樹密影遮當戶月) 빽빽한 나무 그림자 방에 비치는 달빛 가리고
곡허성답타문공(谷虛聲答打門筇) 빈 골짜기 문 두드리는 지팡이 소리에 답하네.
수포백련류전석(水鋪白練流全石) 물은 흰 명주 펼친 듯 온 바위를 덮어 흐르고
홍예청라괘고송(虹曳靑蘿掛古松) 무지개는 푸른 담쟁이를 끌어다 고송에 걸었네.
막괴노부유수일(莫怪老夫留數日) 늙은이 며칠 머문다고 괴이타 말게
당년보조시유허(當年寶照示遺墟) 그 당시 보조 스님도 자취를 남겨 두었네.
(적천사 은행나무)
우리나라 사람이 소나무에 이어 좋아하는 나무가 은행(銀杏)이다. 은행은 살아있는 화석으로 동아시아 원산의 나무로, 암수 딴그루이며 오직 1종으로 현존한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기 전에 잎사귀가 샛노랗게 물들어 아름답고, 병해충에 강한 특징 등 다른 여러 장점이 있어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현재는 사람의 도움으로 번식하지만 외국에서는 매우 귀한 대접을 받는 나무로 생명력이 강하며 오래도록 장수하는 수종이다. 생약으로는 종자 및 잎을 사용한다. 종자는 진해, 거담, 활혈작용을 하며, 잎 또는 잎의 추출액은 혈전용해제, 말초순환기 장애 치료, 기억력 회복, 고혈압 예방 등에 사용한다.
아쉽게도 인류가 멸종하면 함께 운명을 같이할 나무이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나무가 은행나무다.
단풍이 들기 전 인천대공원에 위치한 장수동 은행나무의 웅장한 수세와 기품이 넘쳐나는 자태를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인천대공원 장수동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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