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인(人) 한자는 상형문자(象形文字)로서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사람을 형상화 했다는 설과 모름지기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데서 서로 기대는 모습을 본 땄다는 설 등이 있다.
몸이나 물건을 무엇에 의지하면서 비스듬히 대는 것을 기댄다고 하며, 외부의 힘이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견딜 수 있도록 해 주는 사람이나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버팀목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힘들거나 어려울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사람이 곁에 있어 의지하며 기댈 수 있다는 것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준다.
옛사람들은 해 질 무렵 누각 또는 난간에 기대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나 서산에 지는 노을빛을 바라보며 화려했던 지나간 영화(榮華)를 회상하는 것을 의루(倚樓), 의란(倚欄)이라 했다.
갑진년(甲辰年)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 반년은 세종에서, 반년은 영종도에서 세모(歲暮)를 보내고 있다. 돌이켜 보면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쏜살같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 세월이자 인생인 것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누각에 올라 기대어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자신을 돌이켜 보는 것 또한 의미가 있으리라.
함께 살펴볼 의루 관련 한시는 두목(杜牧)의 만년작(晩年作) 초동야음(初冬夜飮)과 청(淸) 시인 축열림(祝悅霖)의 추만등루(秋晚登樓), 조하 장안만추(趙嘏 長安晚秋) 3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초동야음(初冬夜飮 : 초겨울 밤에 술을 마시며) - 두목(杜牧)
淮陽多病偶求歡(회양다병우구환) *회양처럼 병 많지만 친구 있어 술 즐기니
客袖侵霜與燭盤(객수침상여촉반) 등잔과 함께 옷소매는 차가움이 스며오네.
砌下梨花一堆雪(체하이화일퇴설) 섬돌 아래 배꽃처럼 첫눈이 쌓였거늘
明年誰此憑欄干(명년수차빙난간) 내년에는 누군가 이 난간에 기대 있으리.
*회양(淮陽)이라 말한 것은 한나라 때 회양태수(淮陽太守)를 지낸 급암(汲黯, ? ~?)을 가리킨다. 급암의 자는 장유(長儒)이며, 복양현(濮陽縣) 사람이다. 무제의 간신(諫臣)으로, 성격이 우직하였으며 무위정치(無爲政治 :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음을 하는 정치로 하는 것도 하는 것이지만, 하지 않는 것 역시 '하는' 행위로 욕망, 명예, 이기심,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는 것이며 무위의 결과는 자율과 평화의 토대 위에 저절로 좋은 세상을 만드는 정치)를 주장했으나 황제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회양태수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추만등루(秋晚登樓 : 가을 저녁 누각에 올라) - 축열림(祝悅霖)
卷簾恰喜雨初收(권렴흡희우초수) 바야흐로 비 개어 기쁘게 주렴 걷으니
村巷雲堆粳稻秋(촌항운퇴편도추) 골목에는 구름처럼 낟가리(낟알이 붙어있는 곡식) 쌓인 가을.
紫雁一聲紅葉落(자안일성홍낙엽) 자주색 기러기 한 번 울자 붉은 잎 떨어지고
夕陽人倚竹西樓(석양인의죽서루) 석양 속 한 사람 죽서루에 기대 있네.
축열림(祝悅霖)은 청대(淸代) 시인으로 자는 벽애(碧崖)이며 남휘(南汇 : 현 上海 남동쪽에 위치한 區) 출신이다.
의루(倚樓) 관련 일화는 두목(杜牧)은 같은 시기 유명 시인이었던 조하(趙嘏, 810~856?)가 장안만추(長安晩秋 : 장안의 늦가을)이라는 시구 중 잔성기점안횡새(殘星幾點雁橫塞 : 별 몇 점 깜박일 때 변방 기러기 비껴 날고) 장적일성인의루(長笛一聲人倚樓 : 긴 피리 한 가락 소리에 사람은 누대에 기대네)라는 구절에 탄복하여 조하를 아예 ‘조의루(趙倚樓)’로 불렀다고 한다.
조하의 장안만추(長安晚秋 : 장안의 늦 가을) 시는 다음과 같다.
長安晚秋(장안만추)/長安秋望(장안추망)/長安秋夕(장안추석) - 趙嘏(조하)
雲物淒涼拂曙流(운물처량불서류) 구름과 안개 처량하게 새벽녘에 흐르고
漢家宮闕動高秋(한가궁궐동고추) 한나라 궁궐은 가을기운에 높아가네.
殘星幾點雁橫塞(잔성기점안횡새) 새벽 별 드문드문 변방 기러기 북쪽에 비껴 날고
長笛一聲人倚樓(장적일성인의루) 긴 피리 한 가락 소리에 사람은 누대에 기대네.
紫豔半開籬菊靜(자염반개리국정) 자주 빛 반쯤 곱게 핀 울타리의 국화 고요하고
紅衣落盡渚蓮愁(홍의락진저련수) 붉은 꽃잎 모두 떨어진 물가의 연꽃은 수심에 젖네.
鱸魚正美不歸去(노어정미불귀거) 농어 진정 맛 나는데 돌아가지 못하고
空戴南冠學楚囚(공대남관학초수) 공연히 *남관 쓰고 초나라의 죄수를 흉내 내누나.
*남관(南冠) : 남쪽에 있는 초(楚나)라 사람이 쓰는 관으로, 춘추시대 초나라 악공인 종의(鍾儀)가 진나라에 잡혀가 포로로 갇혀 있으면서도 항상 고국을 그리워하여 초나라 관(남관)을 쓰고 있었다는 고사에서 유래.
조하(趙嘏, 806? ~ 853?)는 중국 당(唐) 무종(武宗)~선종(宣宗) 때의 문신, 시인. 자(字)는 승우(承佑), 산양(山陽) 사람이다. 회창 4년 (844) 진사에 급제하고 선종 때 위남위(渭南尉)에 이름. 전해오는 시가 200여 편이다.
(진주 촉석루 누각)
(주변 늦가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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