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눈 관련 한시 2수 : 민사평 눈(閔思平 雪), 이숭인 첫눈(李崇仁 新雪)

올 겨울 처음 내린 눈이 폭설이 되어 온 세상이 은빛으로 변했다.

눈은 온대나 한대 지방의 구름 속에는 빙정(氷晶)이라는 작은 얼음 알갱이와 물방울이 같이 들어 있다.

물방울이 많아지면 기온이 낮은 상태에서 작은 얼음 알갱이에 물방울이 계속 달라붙어 얼음 알갱이가 계속 커져 무거워져 땅으로 떨어지면 눈이 된다.

황량한 허공을 가득 채우며 일순간에 내린 첫눈은 지저분한 대지를 순식간에 덮어버리고 순결한 설국(雪國)으로 변모시키며 낭만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첫눈은 사람으로 하여금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깨닫게 하는 가장 선명한 자연현상으로 예나 지금이나 첫눈에 대한 감회가 남다른 것은 한 세모(歲暮)의 정이 깊게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눈 관련 함께 살펴볼 한시 2수는 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급암 민사평(及庵 閔思平 1295 ~ 1359)의 시 설(雪)과 여말선초(麗末鮮初)의 도은 이숭인(陶隱 李崇仁 1347 ~ 1392) 선생의 신설(新雪)을 자서해 보았다. 신설 시는 첫눈이 내린 당시의 풍경을 한 폭의 산수화를 감상하듯 읊었기에 이를 예서(隸書)체로 옮겨 자서해 보았다. 도은 선생에 대하여는 앞서 몇 번 소개한 바 있다.

 

눈(雪)   - 민사평(閔思平)

飄飄遠近滿空零(표표원근만공영) 멀리서 가까이서 흩날리며 하늘에서 가득 내리는 눈

縞帶銀盃想客程(호대은배상객정) 고운 빛깔 은잔이 나그네 갈 길 생각나게 하는구나.

庭下竹枝如削玉(정하죽지여삭옥) 뜰아래 대나무 가지는 옥을 깎아 놓은 듯

筆鋒書字似繁星(필봉서자사번성) 붓끝으로 쓴 글씨 성기는 별 같도다.

樵夫吹火知難爨(초부취화지난찬) 나무꾼은 부뚜막에서 불 지피는 어려움을 알고

田叟埋牛難未耕(전수매우난미경) 늙은 농부는 소를 잃었으니 밭 갈기 어렵구나.

一夜暫成銀色界(일야잠성은색계) 하룻밤 잠깐 사이 이룬 은빛으로 물든 눈 세상

却疑天地一淸寧(각의천지일청영) 온 세상이 하나같이 맑고 평안해지리라.

 

급암 민사평(及庵 閔思平 1295 ~ 1359)은 고려후기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 찬성사상의회의도감사(贊成事商議會議都監事)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탄부(坦夫), 호는 급암(及庵). 찬성사 민적(閔頔)의 아들이며, 정승 김륜(金倫)의 사위이다.

어려서부터 재능과 도량이 있었다. 학문이 일취월장하여 산원·별장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으며,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 예문춘추관수찬(藝文春秋館修撰)을 거쳐 예문응교(藝文應敎)·성균대사성이 되고, 1344년(충혜왕 5) 감찰대부(監察大夫)를 역임한 뒤 여흥군(驪興君)에 봉해졌다.

충정왕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갔던 공으로 충정왕이 즉위한 1348년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가 되었으며, 그 뒤 수성병의협찬공신(輸誠秉義協贊功臣)의 호가 주어졌고, 찬성사상의회의도감사(贊成事商議會議都監事)에 이르렀다.

성품이 온아하며 친척들과 화목하고 교유를 잘하였으며, 관직에 있을 때도 일을 처리하는 데 모나지 않았다. 시서를 즐기고 학문에 열중하여 당시 이제현(李齊賢)·정자후(鄭子厚) 등과 함께 문명(文名)이 높았다. 『동문선(東文選)』에 민사평의 시 9수가 전한다. 저서로는 『급암집(及菴集)』과, 1981년 보물 708호로 지정된 급암선생시집(及庵先生詩集)이 있다.

 

첫눈(新雪)  - 이숭인(李崇仁)

蒼茫歲暮天(창망세모천) 세모의 하늘 파랗고 아득한데

新雪遍山川(신설편산천) 첫눈이 산천에 두루 내리네.

鳥失山中木(조실산중목) 새는 산속 둥지를 잃고

僧尋石上泉(승심석상천) 스님은 바위 위의 샘을 찾는다.

饑鳥啼野外(기조제야외) 굶주린 새들은 들판에서 울고

凍柳臥溪邊(동류와계변) 얼어버린 버드나무 개울가에 누웠네.

何處人家在(하처인가재) 어디쯤에 인가가 있는가

遠林生白煙(원임생백연) 먼 숲 속에 흰 연기 피어오르네.

 

(영종도 백운산의 첫눈 풍경 : 2024. 11. 27.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