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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도연명 음주 20-1수(陶淵明 飮酒 20-1首)

앞서 해동서성(海東書聖) 김생(金生) 언급한 바 있는데 우리나라 현재의 서단(書壇)과 화단(畵壇) 단면을 한번 더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몇 해 전 문인화(文人畵)와 서예에 조예(造詣)가 깊다는 한 분을 소개받아 잠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분께서 장황하게 본인의 프로필에 대해 자랑 하면서 전국 공모전에 수상이력과 수상작, 본인의 최근 작품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다. 수상작 수준도 기대 이하이며, 관련 지식이나 기본적 소양도 부족하여 문외한인 내가 봐도 졸작에 지나지 않아 의문을 품고 수상 내력을 차근차근 물어보니 서단이나 문인화 분야에 누구나 알 수 있는 원로 또는 심사위원이 운영하는 학원에 1년정도 다니면서 원장의 지도하에 특선 2회, 입선 2회를 수상했는데 수상방법은 원장이 직접 쓰거나 그려준 서첩이나 화첩을 집중 지도를 받은 후 그분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공모전에 출품하면 수상은 무난하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특선은 8백만원, 입선은 3백만 원이면 무조건 보장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역시나 했던 폐단(弊端)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어 분노와 함께 며칠을 씁쓸하게 보낸 적이 있다.

지금은 미디어의 발전과 휴대폰을 통해 예술에 대한 궁금증, 작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선명한 사진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기에 예전처럼 명작을 집에 소장하고 감상하는 시절이 급격히 변화된 탓으로 작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던 예술가들이 졸지에 어려움이 겪게 되자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공모전을 통해 경제적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상(受賞)의 거래가 자연스레 확산되고 정착되어 현재의 폐단을 이룬 결과이리라.

국민의 수준은 점차 높아가는데 획일화(劃一化) 계파화(系派化), 저급하향화(低級下向化)로 외면 받는 신세가 될 것이 뻔하다.

전체가 다 그런 것이 아니겠지만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뿌리 뽑기 힘든 환경으로 전락한 것은 바라보며, 회복 불가능한 처사로 이 시대 예술가들이 겪어야 할 자업자득의 결과이자 혹독한 대가를 치려야 할 것이다.

 

앞서 도연명(陶淵明)의 음주(飮酒) 20수 서문(序文)에 이어 1수를 함께 배우고자 예서체(隸書體)로 자서(自書)해 보았다.

 

其一.

衰榮無定在(쇠영무정재) 영고성쇠는 정해진 것이 아니며

彼此更共之(피차갱공지) 바뀌고 서로 돌게 마련이거늘

邵生瓜田中(소생과전중) 오이 밭을 가는 *소평(邵平)이가

寧似東陵時(녕사동릉시) *동릉후였다고 누가 아는가?

寒署有代射(한서유대사) 춥고 더운 세월 바뀌는 계절같이

人道每如玆(인도매여자) 인간의 삶도 그와 같으리라.

達人解其會(달인해기회) 깊은 재주를 터득하고 도통한 사람에게

逝將不復疑(서장불부의) 두 번 다시는 이끌리지 않으리라.

忽與一樽酒(홀여일준주) 홀연히 한 동이 술이 생겼으니

日夕歡相持(일석환상지) 저녁이면 기꺼이 술 마시며 즐기리라.

 

*소생(邵生)은 소평(邵平)으로 진(秦) 나라 광릉(廣陵) 사람이다. *동릉후(東陵侯 : 작위)를 지냈으며,  진나라가 망한 뒤 포의(布衣)로 장안성(長安城) 동쪽에 살면서 참외를 심어 생업으로 삼았는데, 그 맛이 좋아 소평과(召平瓜) 또는 동릉과(東陵瓜)라 불려졌다. 여후(呂后)가 한신(韓信)을 죽인 뒤 고조(高祖)가 소하(蕭何)를 상국(相國)에 임명하면서 오천호(五千戶)에 봉했다. 그때 그가 소하에게 봉상(封賞)을 사양하고 사재를 털어 군대를 도우라고 충고해 고조의 혐의에서 벗어나게 했다.

 

(7.4일 주변 시절풍경)

미역취
싸리꽃
패랭이꽃
벌개미취
벌노랑이
백일홍
메밀꽃
가시덩굴여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