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도연명 음주 서문(陶淵明 飮酒 序文)

오래전 퇴근길 아내와 아파트경비원이 얘기를 하고 있길래 무슨 일인가 물어보니 바로 내 예기였다. 오랫동안 경비업무를 수행하는 분으로 입주자의 동정을 낱낱이 꿰고 있었기에 내가 술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매일 술 마시는 애주가 라는 아내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경비원이 보기에 술 취한 행동을 전혀 보지 못했고 늦게 귀가하면 업무가 많으셨구나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술을 마시되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불편함을 주어서는 절대 안된 다는 관념이 몸에 베인 탓 이리라.

다산 정약용은 음주망국(飮酒亡國 : 술을 마시면 나라가 망하고), 음다흥국(飮茶興國 : 차를 마시면 나라가 흥한다)과 같이 술을 마시는 국민은 차를 마시는 국민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차를 마시는 것은 이상(理想)이라면 술을 마시는 것은 현실(現實)이다. 현실에 충실 하는 것 또한 즐거운 삶을 위한 방편인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변함이 없다.

 

이백(李白)의 장진주(將進酒)에 고래성현개적막(古來聖賢皆寂寞 : 예로부터 성인이나 현인은 모두 쓸쓸하였으나), 유유음자류기명(惟有飮者留其名 : 오직 술 마시는 자만이 그 이름을 남겼다네) 시구처럼 고고(孤高)하고 도도(滔滔)한 삶보다 음주자(飮者)만이 인생을 만끽할 수 있는 또 다른 흥취가 있으리라.

 

고금(古今) 은일시인(隱逸詩人)의 종(宗)으로 불리는 오류선생(五柳先生)이 남긴 음주(飮酒) 서문(序文)과 함께 20수를 연이어 소개하고자 하며 앞서 여러 번 소개한 바 있는 도연명(陶淵明. 365 ~ 427)은 중국 동진(東晉) 후기에서 남조(南朝) 송대(宋代) 초기까지 살았던 전원시인(田園詩人)이다. 호는 연명(淵明)이고, 자는 원량(元亮) 혹은 연명(淵明)이고, 본명은 도잠(陶潛)이다. 오류(五柳) 선생이라고 불리며, 시호는 정절(靖節)이다. 장시성(江西省) 주장시(九江市) 루산(廬山) 사람이며, 육조시대(六朝時代)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시인들 중 한 명이다.

 

음주 20수는 도연명이 50세 초반에 지은 시로 고달픈 관리생활을 그만둔 후 전원에 돌아와서 생활하던 시기인 416년 가을에 쓴 오언(五言) 시로서, 서문이 있고 20편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주제는 음주를 통하여 관직생활에 대한 감상과 전원생활의 즐거움이다. 이와 관련하여, 도연명은 음주 시의 창작 동기를 서문에서 보여준다.

깊은 산속에 있어서 세상일의 간섭을 받지 않은 깊은 가을밤 마침 좋은 술이 생겨서 그것을 마신다. 혼자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후에는 시의 흥취가 생겨서 시를 지었다. 그 다음날 술이 깬 후 이를 다시 수정하고 친구들에게 정리를 부탁하였다. 관리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과 전원생활의 감상을 담담하게 표현하였다.

 

도연명 음주 서문(陶淵明 飮酒 序文)

余閑居寡歡(여한거과환) 나는 한가하게 사느라고 기쁜 일이 적고

兼比夜已長(겸비야이장) 게다가 요즘 들어 밤도 길어졌는데

偶有名酒(우유명주) 우연히 좋은 술이 생겨

無夕不飮(무석불음) 저녁이면 으레 그것을 마신다.

顧影獨盡(고영독진) 내 그림자를 돌아보며 혼자서 다 마셔버리면

忽焉復醉(홀언부취) 어느 틈에 또 취한다.

旣醉之後(기취지후) 취해버린 후에는

輒題數句自娛(업제수구자오) 곧 몇 구절을 지어보고 혼자서 흐뭇해했다.

紙墨遂多(지목수다) 쓴 종이가 마침내 많아져

辭無銓次(사무전차)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가

聊命故人書之(료명고인서지) 친구보고 다시 정서해 달라고 시키니

以爲歡笑爾(이위환소이) 즐겁게 웃어 볼거리로 삼는 것일 따름이다.

 

(7. 1 텃밭풍경)

참외
여주
수박
원추리
고추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