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거주하며 매 주말마다 오르는 산이 대모산(大母山. 293m)과 구룡산(九龍山. 306m)이다. 최근 대모산은 맨발 걷기의 대표적인 성지로 인식되어 해마다 건강을 위하여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대모산과 구룡산은 흙이 많고 숲이 울창할 뿐만 아니라 완만하여 육산(肉山)에 속하고 험준하고 바위가 많은 산을 흔히 골산(骨山)이라 하는데 관악산은 대표적인 골산에 해당된다.
흙을 밟고 싶으면 걸어서 닫을 수 있는 대모산과 구룡산을 찾지만 한 달에 한 번은 등산의 스릴과 골산의 묘미를 만끽하기 위하여는 관악산(冠岳山, 632m)을 찾는다.
대체 휴일인 3일 눈이 내렸다는 소식에 불현듯 차를 타고 나서는 관악산은 2년전 3월 하순경에 내린 춘설경(1)( 관악산 춘설경(冠岳山 春雪景) (tistory.com) )의 모습은 기대하지 않았으나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마지막 설경을 찾는다는 기분으로 도착한 관악산은 밤사이 내린 비와 영하로 떨어진 새벽에 내린 눈과 어울려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하여 나뭇가지와 잎에 얼음이 얼어 햇볕에 영농하게 반짝이는 모습은 참으로 가경(佳景)이라 아니할 수 없다.
주로 오르는 등산코스는 과천청사를 지나 용운암(龍雲菴)을 거쳐 6봉(국기봉)으로 향하는 능선을 이용하는데 바위와 나무는 얼음으로 감싸여 있어 미끄럽고 위험했지만 이 맘 때만 맛볼 수 있는 등산의 묘미를 만끽하였기에 관련 영상을 담아보았다.
아울러 서유구(徐有榘)의 풍석전집(楓石全集)에 실려있는 부용각집승시서(芙蓉江集勝詩序) 중 관악산에 관한 내용을 자서(自書)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원문과 해설은 한국고전번역원 이종묵 님의 자료를 참고하였다)
(관악산 춘설경 2025.3.3)
서울 한강(漢江)의 아름다운 팔경은 서유구(徐有榘 : 1764-1845. 정약용과 함께 18~19세기 실학 계열의 농업개혁론을 대표하는 인물로, 36년간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집필하여 편찬하였다.)의 글이 있어 기억할 수 있다.
서유구(徐有榘) 부용강집승시서(芙蓉江集勝詩序 : 부용강 명승시를 모아서 서하다) <풍석전집(楓石全集)>
集芙蓉江遠近之勝。指計有八。其一天柱朵雲。其二黔丹紋霞。其三栗嶼魚罾。其四蔓川蠏燈。其五烏灘疊檣。其六鷺梁遙艇。其七槲園錦縠。其八麥坪玉屑
부용강(芙蓉江) 원근의 빼어난 곳을 손으로 꼽자면 모두 여덟이 있다. 첫 번째는 천주타운(天柱朶雲)이요, 두 번째는 검단문하(黔丹紋霞)요, 세 번째는 율서어증(栗嶼魚罾)이요, 네 번째는 만천해등(蔓川蟹燈)이요, 다섯 번째는 오탄첩장(烏灘疊檣)이요, 여섯 번째는 노량요정(露梁遙艇)이요, 일곱째는 곡원금곡(槲園錦縠)이요, 여덟 째는 맥평옥설(麥坪玉屑)이다.
直江東南數十百武。崱屴詭秀而山者曰冠岳。最高而峯者曰天柱。晨起凭眺。一朵白雲。濛濛起峯頂。已而芬郁簇擁。繞帀薈蔚。自山腰以上隱而不見。已而英英飛盡則獨見峯巒䂭砑倚天屹立。故曰天柱朵雲。
곧바로 강 동남으로 수십, 수백 보를 가면 높고 위태하게 솟아 있는 산이 관악산이요, 가장 높은 봉우리가 천주봉이다. 새벽에 일어나 바라보면 한 무더기 흰 구름이 아득하게 봉우리 정상에 피어오르고, 조금 있노라면 향기로운 연기가 자욱해지고 빼곡하게 에워싸 무성해지며, 그렇게 되면 산허리에서부터 윗부분은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고 다시 조금 더 있으면 꽃송이처럼 날려 다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봉우리가 훤하게 하늘에 기대어 우뚝 솟아난 모습만 보인다. 이 때문에 ‘천주타운’이라 한 것이다.
自冠岳西馳蜿蜒。復陡起而山者曰黔丹。山色澄沐如藍。駮霞半被。上露螺黛數點。初旭薄射。演纈成紋。故曰黔丹紋霞。是二者於朝宜。
관악산에서 서쪽으로 구불구불 치달았다 다시 솟구쳐 일어나서 산이 된 것이 검단산이다. 산빛이 깨끗하게 목욕을 한 듯 쪽빛 같다. 얼룩얼룩한 노을에 반쯤 덮인 채 위에 쪽을 진 듯 검은 머리가 몇 점 드러난다. 막 아침햇살이 엷게 비치면 오색 비단에 무늬를 넣은 듯하므로 ‘검단문하’라 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아침에 어울린다.
中江而癃偃爲島者曰栗嶼。對嶼而瀠紆爲汜者曰蔓川。籟寂波澹。露氣羃流。魚罾多在嶼渚。蠏燈多在川港。藁火點點如踈星。行舟欸乃聲與漁謌相互答。故曰栗嶼魚罾。曰蔓川蠏燈。是二者於夜宜。
강 한가운데 느른하게 누워 섬이 된 것이 있는데 밤섬이라 한다. 섬을 마주하고 물길이 구불구불 돌아나가 지류가 된 것을 만천이라 한다. 온갖 소리가 고요하고 물결이 맑은데 이슬이 물을 덮고 있다. 물고기를 잡는 그물은 대부분 밤섬의 물가에 있고 게잡이 등불은 대부분 만천의 포구에 있다. 짚불이 점점이 있어 듬성듬성 별이 떠 있는 듯하다. 가는 배들의 삐걱삐걱 소리가 어부들의 노랫가락과 서로 답을 한다. 이 때문에 ‘율서어증’, ‘만천해등’이라 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밤에 어울린다.
江之下流曰烏灘。春氷旣泮。漕舶畢集。遙望千檣簇立淡靄浮翠間依依然。上流曰鷺梁。潦水時至。㵿淼澶漫。片艇浮搖。若去若來。江之北麓曰麻浦。峴有槲柞數十株。秋深葉老。丹碧錯互。爛漫如蜀錦衣山。東滸曰沙村坪。村人歲播䅘麥。麥芒方吐。微霰初集。璀璨如琳琅落蘚。故曰麥坪玉屑。曰槲園錦縠。曰鷺梁遙艇。曰烏灘疊檣。是四者或宜春夏。或宜秋冬。
강의 아래쪽을 오탄이라 한다. 봄날 얼음이 반쯤 녹으면 조운선이 다 몰려든다. 멀리서 바라보면 천 척의 배 돛대가 은은한 엷은 노을과 푸른 물빛 사이로 빼곡하게 서 있다. 강의 위쪽을 노량이라 한다. 때마침 장맛비가 내리면 드넓은 강물이 느릿느릿 흘러가고 조각배가 물 위에 떠 흔들흔들 가는 듯도 하고 오는 듯도 하다. 강 북쪽 기슭이 마포다. 고개에 떡갈나무 수십 그루가 있어 가을이 깊어지면 나뭇잎이 늙어 울긋불긋한 빛이 뒤섞여 흐드러진 모습이 마치 촉땅에서 나는 비단으로 나무에 옷을 입혀놓은 듯하다. 동쪽 물가를 사촌평(沙村坪)이라 부른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보리와 밀을 파종하는데 이삭이 막 패기 시작할 때 싸락눈이 갓 내리면 찬란한 모습이 마치 아름다운 옥이 이끼 위에 떨어진 듯하다. 이 때문에 ‘맥평옥설’, ‘곡원금곡’, ‘노량요정’, ‘오탄첩장’이라 한 것이다. 이 넷은 봄과 여름에 어울리기도 하고 가을과 겨울에 어울리기도 한다.
蓋天柱黔丹烏灘鷺梁。得之遠眺。栗嶼蔓川槲園麥坪。猶几案閒物也。今年杪春。舟過烏灘。見中流塊石。龜伏露頂。頂鐫二大字。苔缺蘚蝕。刺櫓其下。手捫讀之。其文曰集勝。土人從遊者曰明朱之蕃筆也。遂拓之歸。復列八目于左。將丐詩諸名家。主人先爲序。以道其志。主人姓徐。逸其名。自號芙蓉子。
대개 천주봉과 검단산, 오탄, 노량은 멀리서 바라볼 수 있고 밤섬과 만천, 곡원, 맥평은 책상에서 바로 보이는 사물이다. 올해 늦봄 배로 오탄을 지나다가 강 한가운데 바위를 보았는데 거북이가 엎드려 머리를 내어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 머리에 대자(大字) 두 자를 새겨 놓았는데 이끼에 문드러지고 침식되어 있었다. 그 아래로 배를 저어 가서 손으로 문질러 읽어보니 그 글에 ‘집승(集勝)’이라 되어 있었다. 그곳 토박이 중에 함께 놀러 따라온 이가 명나라 주지번(朱之蕃)의 필적이라 하여 마침내 탁본을 해가지고 돌아왔다. 다시 위와 같은 여덟 가지 조목을 나열하여 장차 명가에게 시를 구하고자 하면서 주인이 먼저 서문을 쓰고 그 뜻을 말하였다. 주인의 성은 서씨요, 이름은 모른다. 호는 부용자(芙蓉子)라 한다.
<해설>
한강에는 아름다운 곳이 참으로 많다. 지금은 사라진 동호의 섬 저자도(楮子島)가 그러하거니와, 서호에는 이에 비견할 밤섬이 있다. 밤섬이 있는 노량진과 마포 사이는 서호(西湖)라 불리는 도성의 대표적인 유상지(遊賞地)였다. 지금은 한강 개발로 찢어지고 부서져 그 아름다움을 크게 잃었지만, 불과 1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산수화 속의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서유구 집안은 장단(長湍)의 동원(桐原), 곧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일월봉(日月峯) 아래에 선영을 두고 그곳에서 세거(世居)하였다. 경저는 저동(苧洞)과 죽동(竹洞) 일대에 있었다. 영희전(永喜殿) 바로 북쪽으로 오늘날 남학동 일대다. 《임하필기(林下筆記)》에 따르면 남산 아래는 집터가 좋아 옛날부터 ‘저동죽서(苧東竹西)’라는 말이 있는데 저동(苧東), 곧 저동의 동쪽에서 가장 큰 집이 서명선의 고택이라 하였다.
이 집안과 관련하여 더욱 주목되는 공간이 이 글에서 이른 부용강이다. 서유구의 조부 서명응(徐命鷹)은 도성 생활에 염증을 내고 한강으로 물러나 살았다. 서명응이 살던 곳은 농암(籠巖)이라는 곳으로 밤섬 근처에 있었다. 그 앞의 물가를 용주(蓉洲, 溶洲로도 적는다)라 하고 그 일대의 한강을 부용강(芙蓉江)이라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용산강(龍山江)을 이 집안에서 바꾸어 부른 듯하다. 서유구는 조부를 모시고 함께 용주에 살면서 자신의 호를 용주자(蓉洲子)라 하고 집 이름은 용주정사(蓉洲精舍)라 하였다. 뜰에 돌을 쌓아 계단을 만들고 계단 위에 단풍나무 10여 그루를 심고 서실의 이름을 풍석암(楓石庵)이라 하였다. 그의 중요한 저술이 바로 이곳에서 나온 것이다.
서유구는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여덟 가지로 정리하고 하나하나 운치 있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 혹은 계절에 따라 더욱 멋진 곳을 들었다. 서유구가 이름 붙인 팔경 중 지금은 확인할 수 없는 곳이 많다. 관악산의 주봉 천주봉과 검단산(호암산을 이른다)은 예전 그대로이되, 물과 섬의 풍경은 사라졌다.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만천은 만초천(蔓草川)이라고도 하는데 모악(母岳)에서 발원하여 청파(靑坡) 남쪽에 있는 주교(舟橋)를 지나 마포로 흘러드는 지류였지만 지금은 아스팔트 아래에 있다. 그 앞 밤섬의 고기잡이 배들과 게잡이 등불은 상상으로 즐겨야 한다. 노량은 지명으로나마 남았지만 오천과 사평은 그러하지도 못하다. 사평은 동작의 동쪽에 있던 마을 이름임이 지도에서 확인되지만 오천은 그 존재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옛사람의 풍류를 이어 서유구는 자연에 이름을 붙여 마음으로 이를 소유하였다. 그리고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강물 가운데 솟아 있는 바위에다 이를 새겼다. 그러한 사연을 담은 글을 함께 지어 넘실넘실 흐르는 아름다운 한강의 기억이 후세에 전해지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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