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선생에 대하여는 앞서 소개했기에 생략토록 하겠다. 소개하고자 하는 계당우흥십절은 공명(功名)에서 벗어나 진정한 학문에 의미를 추구하고자 했던 자적유거(自適幽居)의 삶이 이 시를 통하여 투영되었기에 퇴계학문 연구에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이해를 돕기위해 퇴계학 부산연구원 자료 중 문봉 정유일(文峯 鄭惟一)이 스승 퇴계가 구현하고자 했던 선비의 이상적 모습을 기리고자 한 내용과 함께 계당우흥십절 중 3수를 자서해 보았다.
계당우흥십절(溪堂偶興十絶 : 계당에서 우연히 흥이 나, 절구 십수를 짓다)
其一.
四麓唯紅錦(사록유홍금) 사방 산 기슭엔 오로지 붉은 비단이요
雙林是碧羅(쌍림시벽라) 양 옆의 숲은 푸른 비단이네.
豈知淳朴處(기지순박처) 어찌 알았으랴? 순박한 이곳이
還被化工誇(환피화공과) 오히려 하늘의 조화로 이루어진 묘한 재주를 자랑하게 될 줄을.
其二.
彴跨溪聲度(작과계성도) 시냇물 소리 타고 징검다리 건너가면
堂依壑勢開(당의학세개) 산골짜기 기세에 기대어 서당이 열려 있네.
從他笑深僻(종타소심벽) 산속 깊숙이 있고 궁벽하다고 남들은 웃지만
素履足徘徊(소이족배회) 내 본분으로는 이리저리 돌아 다니기에 넉넉하네.
其三.
開鏡爲蓮沼(개경위연소) 열어 놓은 거울처럼 연못을 만들고
披雲作石門(피운작석문) 구름을 헤쳐서 돌문을 만들었네.
和風吹澹蕩(화풍취담탕)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니 날씨 맑고 화창한데
時雨發絪縕(시우발인온) 때맞춰 오는 비는 봄기운을 드러내네.
其四.
石竇疏泉遠(석두소천원) 바위틈에서 솟는 샘물 멀리 있고
山根卜宅幽(산근복택유) 산줄기가 뻗어나기 시작한 곳에 집 지으니 그득하네.
客來愁絶險(객래수절험) 손님이 올 때 아주 험하다고 근심하지만
還往儘悠悠(환왕진유유) 오고 가는 길이 다만 한가하고 여유로울 뿐이네.
其五.
盡日雲含雨(진일운함우) 온종일 구름은 비를 머금고
移時鳥喚春(이시조환춘)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새들은 봄을 부르네.
山村頗狎虎(산촌파압호) 두메산골이라 자못 호랑이와도 친하고
溪路少逢人(계로소봉인) 산골 길에서 만나는 사람도 적네.
其六.
已著游仙枕(이저유선침) 베게 베고 꿈속에서 신선되어 놀고 나선
還開讀易窓(환개독역창) 주역을 읽으려고 창문 열어 두었노라
千鍾非手搏(천종비수박) 천종은 손으로 잡을 것이 못 되어라(*천종: 가장 높은 녹봉(祿俸))
六友是心降(육우시심강) 여섯 벗이 서로들 마음에 맞거니
其七.
布穀催田務(포곡최전무) 뻐꾸기는 밭일을 재촉하고
提壺勸客愁(제호권객수) 두견이는 나그네의 시름을 자아내네.
更憐雲外鶴(갱연운외학) 더욱 어여쁘게도 구름 밖의 학이
無語立松頭(무어입송두) 말없이 소나무 꼭대기에 서 있네.
其八.
爛熳堆紅紫(란만퇴홍자) 흐드러지게 붉은 빛과 자줏빛의 꽃들이 쌓여 있고
淸新遶綠靑(청신요록청) 깨끗하고 산뜻하게 초록빛을 띤 파란색이 빙 둘렀네.
三杯偶獨酌(삼배우독작) 우연히 혼자서 석 잔 술 먹고 나니
萬事本無營(만사본무영) 여러 가지 온갖 일은 본디 경영할 것이 없네.
其九.
因病投閒客(인병투한객) 병든 몸을 구실 삼아 한가한 몸이 되어
緣深絶俗居(연심절속거) 깊숙한 곳 찾아와서 세속 인연 끊고 사네
欲知眞樂處(욕지진락처) 참으로 즐거운 일 무엇인지 알고파서
白首抱經書(백수포경서) 백수가 되도록 경서를 끼고 사네.
其十.
掬泉注硯池(국천주연지) 샘물을 움켜다가 벼루에 담아
閒坐寫新詩(한좌사신시) 한가히 않아 새로운 시를 쓰네
自適幽居趣(자적유거취) 자적하며 사는 이 멋 스스로 즐거우니
何論知不知(하론지부지) 남이야 알건 말건 논하여 무엇하랴
문봉 정유일(文峯 鄭惟一. 1533~1576)조선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명종실록(明宗實錄) 편찬에 참여한 뒤 대사간(大事諫)ㆍ이조판서(吏曹判書) 등을 지냄. 시부(詩賦)에 뛰어났으며, 성리학에 있어서는 퇴계설(退溪說)을 발전시킴)의 글에는 스승 퇴계가 추구한 산수 생활의 참모습이 담겨 있다. 문봉의 글에 의하면, 퇴계의 산수 생활이 세상을 놀라게 한다거나 남보다 별다른 일을 도모하려는 것과는 무관함을 보여줌으로써 산수 생활의 진정성은 선비의 실천적 삶에 의해 구현됨을 나타내고 있다. 퇴계는 평소에 자신이 지닌 덕과 재주를 남들에게 과시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학문과 식견의 깊이를 알지 못하였다. 벼슬에서 물러나 산수에서 은거한 이후 그의 문하에서 스승의 삶과 학문의 깊이에 영향 받은 제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그들에 의해 진정한 선비이자 스승인 퇴계의 위상이 정립되었다.
퇴계는 조시(朝市 : 朝廷과 市井을 아울러 이르는 말)의 속인(俗人)들보다는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살지 못하더라도 안분지족(安分知足)으로 수양하는 것이 좋음을 시화하였다. 그의 은거는 타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마지못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해서 자발적인 마음으로 용단(勇斷)을 내린 결과였다. 계당우흥십절(溪堂偶興十絶)에서는 산수 속의 자연물을 벗삼아 즐기는 생활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으니, 이러한 작품에는 자적(自適)의 삶을 사는 그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퇴계는 산수라는 天然의 공간에서 자연물의 구체적인 형상을 보고 이를 통해 천리(天理)를 깨닫는 것이 삶의 묘미임을 시화하였다. 천연(天然)의 공간에 깃들어 살며 고요하게 마음을 다스리는 삶이 퇴계가 원하는 산수 생활이었다. 알인욕존천리(遏人慾存天理 : 사람의 욕심을 그치게 하고 천리에 의존함)에 뿌리를 둔 생활철학은 유거일미(幽居一味)의 묘미를 체득하게 되어 스스로 천리를 깨달았음을 보인 작품에 나타나 있다. 그의 심후(深厚)한 서정은 퇴계 특유의 시인적 감성과 구도적(求道的) 시정신이 혼융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퇴계는 세속적인 마음으로부터 벗어났을 때의 경지를 시화하였으니 이럴 때 그는 초달(超達)의 시세계를 표출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스스로 마음을 비우기도 한다. 신선의 공간으로 인식된 산수에 은거하여 경서(經書)에 몰두하는 삶을 시화한 작품에서는 인생의 진락(眞樂)을 초달(超達)의 시경(詩境)으로 보여주었다.
(인용 :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계당우흥십절(溪堂偶興十絶) 연구(硏究) 저자 : 이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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