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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퇴계 산거사시각사음(退溪 山居四時各四吟) 겨울(冬)

일의 끝맺음을 마무리 라고 한다.

마무리는 하루, 한해, 인생이 있다. 하루하루의 마무리가 쌓이면 한 해가 되고 한 해가 쌓이다 보면 인생의 마무리가 찾아올 것이다. 하루를 잘 마무리하며 살다 보면 인생의 끝맺음도 잘 마무리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과거 목가(牧歌)적인 삶을 살았던 선인들은 힘들었던 하루의 마무리를 석양이 붉게 물든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큰 위안을 삼았으리라. 몇 해 전 여의도에서 퇴근길에 강변북로를 달리다 청담대교를 지나면 도심과 한강에 펼쳐지는 해 지는 노을풍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많은 사진동호인들이 최적의 위치에서 촬영 시간대를 기다리며 셔터를 누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이 각자 다르겠지만 쓸쓸한 황혼의 모습보다 하루를 잘 마무리한 낙조(落照)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에 담아 내일에 솟는 희망찬 태양을 기다리는 의미를 새기고자 했을 것이다.

 

노을(霞) 또는 놀은, 새벽이나 아침 또는 저녁에 태양 광선이 대기를 통과하는 거리가 길어져서 태양 광선 중 파장이 짧은 파란색은 대기 중에서 산란되고, 파장이 긴 빨간색은 산란되지 않아 하늘이 빨간색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퇴계선생이 64세때 유거(幽居)하며 주변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며 지은 산거사시(山居四時) 시는 노년 이룬 심오한 천리(天理)를 터득한 학문적 사상이 여실히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속과 멀리하면서 자연과 동화되어 자연과 대화를 나누며 확고한 자신의 주체적인 사상을 확립하고 이를 넘어 대우주의 조화 속에 학문적 완성을 자연의 섭리와 함께 조화로운 세계를 이루어 냈기에 한 자 한 자 그 의미를 살펴보는 것 또한 큰 의미가 있으리라.

 

연이어 퇴계선생의 산거사시각사음(退溪 山居四時各四吟) 겨울(冬) 시와 함께 직접 촬영한 낙조 사진을 올려보았다.

 

산거사시각사음(山居四時各四吟 : 산속에 거주하며 사계절을 각 네 번씩 읊다)  - 겨울(冬)

 

동조음(冬朝吟 : 겨울날 아침)

羣峯傑卓入霜空(군봉걸탁입상공) 뭇 산봉우리들 가을 하늘 속에 우뚝 솟았고

庭下黃花尙倚叢(정하황화상의총) 뜰 아래 누런 국화는 아직 몇 떨기 남았는데

掃地焚香無外事(소지분향무외사) 바깥이 무사하도록 땅을 쓸고 향불을 피우니

紙窓銜日皦如衷(지창함일교여충) 종이 창이 햇빛 머금어 밝기가 속마음 같구나

 

동주음(冬晝吟 : 겨울날 낮)

寒事幽居有底營(한사유거유저영) 쓸쓸하게 은거하며 살며 추울지라도

藏花護竹攝羸形(장화호죽섭리형) 꽃 심고 대숲 돌보며 몸을 보전하네

慇懃寄謝來尋客(은근기사내심객) 찾아오는 손님 은근히 사양해 보내니

欲向三冬斷送迎(욕향삼동단송영) 삼동이 되면 맞이하고 보냄도 끊으리라

 

동모음(冬暮吟 : 겨울날 저녁)

萬木歸根日易西(만목귀근일역서) 모든 나무 잎이 지고 쉬이 해는 지는데

烟林蕭索鳥深棲(연림소색조심서) 안개 낀 쓸쓸한 숲 깊이 새가 깃들었네

從來夕惕緣何意(종내*석척연하의 ) 예부터 저녁에 두려워함은 무슨 연유일까

怠欲須防隱處迷(태욕수방은처미) 은미한 곳에서도 게으름을 막고 싶어서네

*夕惕(석척) : 日乾夕惕(일건석척)의 줄인 말로 주역(周易) 건괘(乾卦) 구삼효(九三爻)에 나오는 문장이다. ‘군자는 날마다 부지런히 노력하고 저녁에 걱정하면 위태롭거나 허물은 없다. (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無咎)’라는 뜻인데, 날마다 쉬지 않고 부지런하며 저녁에는 하루를 반성하고 자기 행동을 두려워하며 걱정한다면 허물이 없을 것이라는 뜻.

 

동야음(冬夜吟 : 겨울날 밤)

眼花尤怕近燈光(*안화우파근등광) 눈병이 심하니 등불 가까이하기 두렵고

老病偏知冬夜長(노병편지동야장) 늙고 병드니 겨울밤 긴 것을 조금 알겠네

不讀也應猶勝讀(부독야응유승독) 책 읽지 않는 것이 읽기보다 나을 듯하여

坐看窓月冷於霜(좌간창월냉어상) 앉아서 서리보다 찬 창 밖의 달빛을 보네

*眼花(안화) : 눈앞에 불똥 같은 것이 어른어른 보이는 안질(眼疾)

 

자하지미(霞之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