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사막(孫思邈, 581?~682 )은 경조화원(京兆華原 : 今陕西耀州區) 출신으로 당대(唐代)의 의사, 연금술사, 한의학자로 활동하였다. 천금요방(千金要方) 과 천금익방(千金翼方) 의 저자로, 의술이 대단하여 약신(藥神), 약왕(藥王)이라 불렸다.
그가 말한 노년을 건강하게 보내기 위한 방법으로 사소사다(四少四多)를 살펴보면
소욕다족(少欲多足 : 욕심을 적게 만족함을 많게),
소언다사(少言多思 : 말은 적게 생각은 많게),
소일다노(少逸多勞 : 여가를 줄이고 일은 많게),
소식다찬(少食多餐 : 적게 먹고 식사는 자주)를 주창(主唱)하였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모두를 실천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누구나 지니고 있는 욕심(欲心)을 소욕과 과욕으로 분류한다면 먼저 과욕(過慾)이 지나치면 탐욕(貪慾)으로 변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면 자칫 범죄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 명확하다.
세상 어느 것 하나도 욕심과 무관한 것이 없듯이 선적(善的)인 탐욕은 자기를 계발하고 더 나아가 변화와 혁신으로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새로운 문명의 세계를 이끌기도 한다.
모두가 보다 나은 행복을 위해서는 지나친 탐욕이 아닌 적당한 욕심을 가져야 하기에 필요 선(必要 善)의 소욕(少欲)은 참으로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함께 살펴볼 한시는 최호(崔顥 704? ~ 754)의 장간행(長干行)은 장간곡(長干曲)으로 불리는 악부시(樂府詩 : 원래는 음악을 맡아보던 관청 이름이었으나, 거기서 채집 ·보존한 악장과 가사 및 그 모방 작품을 악부(樂府) 또는 악부시(樂府詩)라 함) 4수(四首) 함께 알아보고자 한다.
최호(崔顥) 장간행/장간곡(長干行/長干曲) 4수
其一.
君家何處住(군가하처주) 그대는 어디 사시나요?
妾住在橫塘(첩주재횡당) 저는 *횡당에 산답니다
停船暫借問(정선잠차문) 배 멈추고 잠깐 물어볼게요
或恐是同鄉(혹공시동향) 혹 우리 동향 아닌가요?
其二.
家臨九江水(가림구강수) 내 집은 *구강의 강물 가까이 있어
來去九江側(내거구강측) 구강 가를 넘나들지요
同是長干人(동시장간인) 저도 장간 사람인데
生小不相識(생소부상식) 어려서는 서로 몰랐네요.
其三.
下渚多風浪(하저다풍랑) 하저엔 풍랑이 드세어
蓮舟漸覺稀(연주점각희) 연꽃 따는 배가 점차 적어져요
那能不相待(나능불상대) 어찌 서로 돕지 않을 수 있나요?
獨自逆潮歸(독자역조귀) 홀로 조수를 거슬러 돌아가는데
其四.
三江潮水急(삼강조수급) 삼강은 조수가 급하고
五湖風浪湧(오호풍랑용) 오호는 풍랑이 솟구치죠
由來花性輕(유래화성경) 예로부터 꽃의 성질은 가벼우니
莫畏蓮舟重(막외연주중) 연꽃 따는 배가 무거운 걸 두려워 마세요
장간(長干)과 *횡당(橫塘)은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난징(南京)의 남쪽에 있던 지명이며, *구강(九江)은 지금의 장시성에 있는 지명이다.
첫째 수에서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배를 저으며 강호를 표류하는 순진무구한 아가씨가 문득 가까운 배에서 들려오는 고향 말투에 절로 배를 멈추고 동향 사람이 아닌지 물어본다.
둘째 수는 고향 사람을 만나 소박한 반가움을 드러내는 남자의 대답이다. 평이하고 질박한 언어로 민간의 인정과 풍속을 노래하는 악부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1, 3수는 연꽃을 따는 처녀의 말이고, 2, 4수는 청년의 말이다. 처녀는 풍랑이 심한 곳에 연꽃을 따러 가기 위해서 함께 배를 타고 나갈 동반자를 구하고 있다. 배에 타고 있던 처녀가 잠시 배를 멈추고 말을 건넨다. 혹여 같은 고향 사람이 아닌가를 핑계로 말이다. 청년은 현재 구강에 살고 있고, 구강가를 수시로 오간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리고는 자신도 본래 고향이 장간리라고 말한다. 다만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한다.
처녀는 하저(下渚)에는 풍랑이 드세어 연꽃 따는 배가 점차 적어진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속셈을 드러낸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조수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함께 동반할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년은 여자를 꽃에 비유하여 자신의 생각을 완곡하게 표현한다.
예로부터 여자의 심성은 가벼워서 변덕이 심하지만, 자신의 심성은 연꽃 따는 배처럼 무거워서 언제나 확고하다는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남녀관계를 대화형식으로 쉽게 표현하였기에 애정이 넘치는 시다.
최호(崔顥, 704? ~ 754)는 당나라 변주(汴州) 사람으로 현종(玄宗) 개원(開元) 때 진사가 되었다. 천보(天寶) 때 태복시승(太僕寺丞)과 사훈원외랑(司勛員外郞)을 지냈으며, 일찍이 각지를 떠돌아 넓은 지역에 자취를 남겼다. 시를 잘 지었으며, 특히 악부시(樂府詩)에 능했다. 민간의 가사(歌詞)를 즐겨 채용했으며, 초기에는 부염(浮艶 : 실속 없이 겉만 아름답다)한 시풍을 보였다가 나중에 변새(邊塞)를 다니면서 시풍도 웅혼(雄渾)하게 바뀌었다. 황학루(黃鶴樓) 는 당나라 7언율시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밖에 장간행(長干行)과 증왕위고(贈王尉古), 증양주장도독(贈梁州張都督) 등이 있다.
황학루는 앞서 소개한 바 있다. : 최호 황학루(崔顥 黃鶴樓)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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