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출근길에 내리는 봄비가 그칠 줄 모른다. 지난겨울에는 유난히 눈도 많이 내렸는데 봄이 되어서도 비 내리는 날이 잦다.
촉촉히 내린 봄비는 대지를 적시면 겨우내 헐벗었던 산과 들녘을 금세 초록빛으로 물들어 갈 것이다. 일터 주변에도 하루가 다르게 연초록 봄의 향연으로 변해가고 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제시기에 싹이 트고 형형색색(形形色色)의 꽃을 피우는 것을 바라보면 참으로 신비롭다. 변화되는 주변환경을 눈으로 보아 즐거움을 선사하고 경이로움과 교훈을 주기에 도법자연(道法自然)이자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라 하는가 보다.
함께 살펴볼 최치원 춘효우서(春曉偶書) 시는 그가 12살 때인 868년 당나라 유학을 가서 18세 나이로 당나라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했다. 녹록하지 않은 당(唐)생활을 접고 28세인 885년 신라로 귀환하기 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이 시를 통하여 황소(黃巢)의 난 등 당시 혼란스러웠던 환경 속에서 고뇌와 함께 풍류를 즐기고자 했던 심경이 잘 나타나 있다.
춘효우서(春曉偶書 : 봄날 새벽에 우연히 쓰다)
叵耐東流水不回(파내동류수부회) 동쪽으로 흐르는 물 되돌아오기 어렵고
只催詩景惱人來(지최시경뇌인내) 계절을 재촉하는데 사람은 오지 않음 괴로워라.
含情朝雨細復細(함정조우세복세) 정을 머금은 아침 비는 가늘어도 가늘지 않고
弄豔好花開未開(농염호화개미개) 어여쁜 꽃들은 필 듯 말 듯하구나.
亂世風光無主者(난세풍광무주자) 어지러운 세상 경치는 주인도 없으니
浮生名利轉悠哉(부생명리전유재) 덧없는 인생 명예와 이익 더욱 아득하여라.
思量可恨劉伶婦(사량가한류령부) 생각할 사 가련하다 *유령의 아내여
强勸夫郎疎酒盃(강권부낭소주배) 억지로 낭군에게 술잔을 빼앗다니.
*유령(劉伶 : 225?~280?, 서진(西晉)의 사상가로 자는 백륜(伯倫)이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장자(莊子)의 사상을 실천하였으며, 신체를 토목(土木)으로 간주하여 의욕의 자유를 추구하고 술을 즐겼다. 작품에 주덕송(酒德頌) 등이 있다.
중국 남송(南宋) 일화집(逸話集)에 유령(劉伶)이 어느 날 갈증이 심하여 부인에게 술을 찾았다. 그러자 부인은 술을 쏟아부으며 술그릇 마저 깨어버리고는 서럽게 울면서 제발 술 좀 끊으라고 간하였다. 허구한 날 술로 날을 보내는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그 부인의 심정이야 오죽하였을까. 부인의 읍소에 유령인들 처연하기는 매일반이었겠지만 하루아침에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그러나 유령은 부인에게, “좋소. 끊으라면 끊지. 하나 내가 능히 스스로 끊기는 어려운 만큼 다만 귀신에게 빌어서 스스로 끊겠다는 것을 맹세하리다. 그런데 술과 고기를 갖출 수 있을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이야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인지라 유령의 마음이 바뀔 새라 재빨리 신전에 고기와 술을 장만해 놓고 영에게 맹세를 빌 것을 청하였다. 유령은 자못 진지한 포즈를 취한 뒤에 맹세라고 하는 것이 대강 이러한 것이었다. “하늘이 유령을 내어 술로써 이름나게 하였으니 한번 마심에 열 말의 술을 마시고 다섯 말의 술에야 깨어났나이다. 아낙의 말은 삼가 들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하고는 문득 술과 고기를 끌어다 놓고 싫건 먹고 마셔 크게 취하였다.
(주변 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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