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초의선사 동다송(草衣禪師 東茶頌)

우리나라에 차가 처음 들어온 것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것이 바로 가야국(伽倻國) 수로왕(首露王)의 왕비 허황옥(許黃玉)에 의한 차 전래설(傳來說)이다.

그 중 또 한 가지는 신라의 사신 대렴(大廉)에 의한 차 전래설로 기록으로 명확하게 전해지는 차 전래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 42대 왕인 흥덕왕(興德王) 3년(828)에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대렴공(大廉公)이 차 씨를 가지고 돌아왔는데, 왕이 이를 귀히 여겨 지리산에 심게 했다. 차는 이미 선덕여왕(善德女王, 재위 632~647) 때부터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번성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7세기에 이미 차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당(唐)나라 시대에 전해진 차는 중국의 문인 육우(陸羽, 733~804)가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 다경(茶經)을 집필해 다성(茶聖) 혹은 다신(茶神)이라 일컬어지며 본격적으로 다의 문화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차에 대한 내용들은 노동(盧仝)의 칠완다가(七碗茶歌)에서 살펴본 바 있다. : 노동 칠완다가(盧仝 七碗茶歌 : 일곱잔을 마시며 차를 예찬하다) (tistory.com)

 

오래전부터 소개하고자 했던 동다송(東茶頌)은 우리나라의 차경전(茶經)이라고 할 수 있는 글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차(茶)를 송구(訟句 : 칭송하는 글)로 예찬한 시다.  문체(文體)로 초의선사(草衣禪師)가 해거도인(海居道人)의 명을 받아 지었다.  다도를 묻는 해거도인(洪顯周: 정조의 딸인 숙선옹주(淑善翁主)의 남편)의 부탁을 받아 시를 써서 보낸 것이다.

 

동다송은 차에 관한 중요한 내용을 가려 뽑아, 차의 원류에 대해 환히 통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해당 원전의 본문을 중간중간에 협주(夾註 : 본문(本文)보다 작은 글자(字)로 괄호(括弧)로 묶거나 본문(本文) 속에 끼워 넣어 본문(本文)을 알기 쉽게 풀이하여 놓은 글) 형식으로 끼워 넣음으로써, 시의 행간에 압축된 의미를 소상히 알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읽는 이의 입장에서 보면 이 협주는 차의 원류와 관련된 다양한 종류의 원전을 한 자리에 모아 맥락을 갖춰 읽으라는 친절한 배려인 셈이다.

 

육우의 다경과 비견되는 초의선사의 동다송을 행서체로 자서해 보며 차에 대한 깊은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초의선사 동다송(草衣禪師 東茶頌)

東茶頌 筆寫本 東茶頌 承海居道人命作 艸衣沙門意恂(동다송 승해거도인명작 초의사문의순) : 동다송은 해거도인의 부탁으로 초의 사문 의순이 지었다. 夾註(협주) 茶樹 如瓜蘆 葉如梔子 花如白薔薇 心黃如金 當秋開花 淸香隱然云(다수 여과려 엽여치자 화여백장미 심황여금 당추개화 청향은연운) : 차나무는 과로와 같고 잎은 치자와 같으며, 꽃은 흰 장미와 같고, 꽃술은 황금 빛과 같다. 가을에 꽃 피니 맑은 향기가 은연하다고 한다. 李白云 荊州玉泉寺 淸溪諸山 有茗艸羅生 枝葉如碧玉 玉泉眞公 常采飮(이백운 형주옥천사 청계제산 유명초라생 지엽여벽옥 옥천진공 상채음) : 이태백이 말하기를 형주(호북성 강능현) 옥천사의 맑은 시냇가의 모든 산에 차나무가 온 산에 널리 나 있는데 가지와 잎이 푸른 옥가지와 같다. 옥천사 진공이 항상 채집하여 마신다고 한다.

 

第一頌(제1송) 南國嘉樹(남국가수 : 남국의 아름다운 나무)

后皇嘉樹配橘德(후황가수배귤덕) 후황이 아름다운 나무를 귤의 덕과 짝지으니

受命不遷生南國(수명불천생남국) 받은 명에 옮겨가지 않고 남녘 땅에 자란다네.

密葉鬪霰貫冬靑(밀엽투산관동청) 촘촘한 잎은 싸라기눈과 싸워 겨우내 푸르고

素花濯霜發秋榮(소화탁상발추영) 하얀 꽃은 서리에 빛나며 가을 풍광을 빛내네.

 

第二頌(제2송) 翠禽舌(취금설 : 푸른 새의 혀)

姑揶仙子粉肌潔(고야선자분기결) 고야산 신선의 흰 살결같이 깨끗하고

閻浮檀金芳心結(염부단금방심결) 염부단금 황금꽃술 아름답게 맺혔네.

沆瀣漱淸碧玉條(항해수청병옥조) 맑은 이슬 흠뻑 젖어 푸른 가지 벽옥 같고

朝霞含潤翠禽舌(조하함윤취금설) 아침 안개 촉촉이 젖어 푸른 싹 새 혀 같네.

 

第三頌(제3송) 天人俱愛(천인구애 : 천신과 사람이 다 사랑한다.)

天仙人鬼俱愛重(천선인귀구애중) 하늘 신선 사람 귀신 모두 아껴 사랑하니

知爾爲物誠奇絶(지이위물성기절) 너의 됨됨이 참으로 기이하고 절묘하구나

炎帝曾嘗載食經(염제증상재식경) 옛날 염제신농씨가 너를 식경에 기재했고

醍醐甘露舊傳名(제호감로구전명) 제호라 감로라 예로부터 그 이름 전해왔네.

 

第四頌(제4송) 解醒少眠(해성소면 : 술을 깨게 하고 잠을 적게 한다.)

解酲少眠證周聖(해정소면증주성) 술 깨우고 잠 줄인다 주공이 증언했고

脫粟飮菜聞齊孀(탈속음채문재상) 거친 밥 차 한잔 제나라의 안영 그랬네.

虞洪薦餼乞丹邱(우홍천희걸단구) 우홍은 제물 올려 단구자의 차를 얻고

毛仙示叢引秦精(모선시총인진정) 털보 신선 떨기 보이려 진정을 이끌었네.

 

第五頌(제5송) 開皇醫腦(개황의뇌 : 수 문제의 뇌골통증을 낫게 하다.)

潛壤不惜謝萬錢(잠양불석사만전) 지하에 묻힌 혼령도 일만 돈을 아쉬워 않고

鼎食獨稱冠六情(정식독칭관륙정) 벼슬아치 대감도 모든 맛의 으뜸이라 하네.

開皇醫腦傳異事(개황의뇌전리사) 수 문제 뇌통증 고쳤다는 신기한 일 전해오고

雷笑茸香取次生(뇌소용향취차생) 경뇌 소와 시용 향 차이 차례차례 생겨났네.

 

第六頌(제6송) 百珍雋永(백진준영 : 모든 음식 가운데 으뜸이다.)

巨唐尙食羞百珍(거당상식수백진) 당나라 음식숭상 온갖 진미 바쳤지만

沁園唯獨記紫英(심원유독기자영) 공주에게 하사한 음식 자영차만 기록했네.

法製頭綱從此盛(법제두강종차성) 茶를 만드는 요령 그때부터 성행하여

淸賢名士誇雋永(청현명사과준영) 청현 명사들은 음미하고 그 맛 좋다 자랑했네

 

第七頌(제7송) 一染失眞(일염실진 : 다른 것에 물들면 참됨을 잃는다.)

綵莊龍鳳團巧麗(채장용봉단교려) 용과 봉을 잘도 그려 둥글고도 아름다워

費盡萬金成百餠(비진만금성백병) 만금을 허비하며 온갖 떡차를 만들었네.

誰知自饒眞色香(수지자효진색향) 누가 스스로 넉넉한 참된 빛과 향을 아나

一經點染失眞性(일경점염실진성) 한 번 물들고 나면 참된 성품 잃어버리네.

 

第八頌(제8송) 手栽全嘉(수재전가 : 정성껏 가꾸고 만들어야 아름답다.)

道人雅欲全其嘉(도인아욕전기가) 도인이 그 아름답고 온전히 맑게 하고자

曾向蒙頂手栽那(증향몽정수재나) 몽산 정상 오르시어 손수 차를 심으셨네

養得五斤獻君王(양득오근헌군왕) 다섯 근을 길러 얻어 군왕에게 올렸나니 

吉祥蕊與聖楊花(길상예여성양화) 길상예와 성양화 그것이었네

 

송(제9송) 雲澗月(운간월 : 명차 운간월의 짙은 향기)

雪花雲腴爭芳烈(설화운유쟁방렬) 눈꽃차와 좋은 구름차 짙은 향기 다투고

雙井日注喧江浙(쌍정일주훤강정) 쌍정차 일주차는 강절에서 이름 높다네.

建陽丹山碧水鄕(건양단산벽수향) 건양 단산 물 푸른 고을에서

品製特尊雲澗月(품제특존운간월) 만들어진 운간차 월간차 질도 좋아라

 

第十頌(제10송) 味藥兼兩(미약겸량 : 육안차 맛과 몽산차 약을 겸하다.)

東國所産元相同(동국소산원상국) 우리 차는 중국차와 원래 같으니

色香氣味論一功(색향기미론일공) 색깔 향 느낌 맛 한 가지라 말해오네

陸安之味蒙山藥(육안지미몽산약) 육안차는 맛이요, 몽산차는 약효라 하지만

古人高判兼兩宗(고인고판겸량종) 우리 차는 둘 다 겸했다 옛사람 칭송했네

 

第十一頌(제11송) 八牲還童(팔생환동 : 팔순노인이 童顔(동안)이 되다.)

還童振枯神驗速(환동진고신험속) 마른 가지 되살아나듯 동안 되는 영험 있어

八耋顔如夭桃紅(팔질안여요도홍) 여든 노인 양 빰이 도화처럼 붉어지네

我有乳泉把成秀碧百壽湯(아유유천파성수벽백수탕) 내 사는 곳 유천 솟아 수벽탕 백수탕 그 물로 끓이었네

何以持歸大覓山前獻海翁(하이지귀목멱산전헌해옹) 어찌 목멱산 앞 해옹에게 어이 갖다 드릴거나

 

第十二頌(제12송) 九難四香(구난사향  : 아홉 가지 어려움과 네 가지 향기.)

又有九難四香玄妙用(우유구난사향현묘) : 구난(九難) 사향(四香) 현묘한 작용이여

何以敎汝玉浮臺上坐禪衆((하이교여옥유대상좌선중) :어떻게 가르칠까 저 옥보대 위 좌선하는 대중들

九難不犯四香全(사난불범사향전) : 아홉 가지 법제 갖춰 네 향기 그윽하니

至味可獻九重供(지미가헌구중공) : 지극한 맛 구중궁궐에 올릴 수 있겠네.

 

第十三頌(제13송) 聰明四達(총명사달 : 총명하여 모든 것에 막힘이 없다.)

翠濤綠香纔入朝(취도록향재입조) 비취 빛 물결 푸른 향기 겨우 아침에 들이니

聰明四達無滯壅(총명사달무체옹) 총명이 툭 트여 막힘이 전혀 없네

矧爾靈根托神山(신이령근탁신사) 더구나 신령한 산에 뿌리를 의탁하니 

仙風玉骨自另種(선풍옥골자령종) 선풍 옥골에 참으로 별다른 종자로구나.

 

第十四頌(제14송)

綠芽紫筍穿雲根(녹아자순천운근) 푸른 싹 자주 빛 순이 구름 뿌리를 뚫고

胡靴犎臆皺水紋(호화봉억추수문) 오랑캐 신 들소 가슴 물결무늬 주름졌네.

吸盡瀼瀼淸夜露(흡진양양청야로) 맑은 밤 많이 내린 이슬을 다 마시고는

三昧手中上奇芬(삼매수중상기분) 삼매경에 든 손 끝에 기이한 향기 어리네.

 

第十五頌(제15송)

中有玄微妙難顯(중유현미묘난현) 속에 있는 미묘함 묘하여 드러내기 어렵고

眞精莫教體神分(진정막교체신분) 참된 정기 몸과 혼을 나눔을 본받지 말게나.

體神雖全猶恐過中正(체신수전유공과중정) 본체와 정신이 비록 온전하더라도 오히려 중정을 지나칠까 두렵고

中正不過健靈併(중정불과건령병) 중정을 넘지 않으면 건실함과 신령스러움이 아우러진다.

 

第十六頌(제16송)

一倾玉花風生腋(일경옥화풍생액) 한 번 기울인 옥화차에 겨드랑이 바람 일고

身輕已涉上淸境(신경이섭상청경) 몸은 가벼워 이미 상청의 경계를 지나가네.

明月爲燭兼爲友(명월위촉겸위우) 밝은 달이 등불 다스리며 겸하여 벗이 되고

白雲鋪席因作屏(백운포석인작병) 흰 구름 자리를 펴고 인하여 병풍을 만드네.

 

第十七頌(제17송)

竹籟松濤俱蕭凉(죽뢰송도구소량) 대나무 소리 소나무 물결 함께 쓸쓸하고 외롭고

清寒瑩骨心肝惺(청한영골심간성) 맑은 추위가 밝은 뼈와 깊은 마음은 조용해지네.

惟許白雲明月爲二客(유허백운명월위이객) 오직 흰 구름 밝은 달 두 손이 되길 허락하니

道人座上此爲勝(도인좌상차위승) 도인의 자리에 오르니 이보다 뛰어날까.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의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속명은 장의순(張意恂), 자는 중부(中孚), 법호는 초의(草衣), 법명은 의순(意恂)이다. 조선 후기 해남 대흥사에서 활동한 대흥사 13대 종사이며 다성(茶聖)으로도 불린다.

선사는 1800년(정조 24) 나주 운흥사(雲興寺)로 들어가 벽봉(碧峰) 민성(敏性)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후에 대흥사의 완호(玩虎) 윤우(倫佑)를 계사로 구족계를 받고 초의라는 법호를 받은 뒤 전국 각지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더욱 정진한 끝에 경율론(經律論) 삼장에 통달하였다. 초의선사는 선교의 학문뿐 아니라 유학(儒學)과 도교(道敎) 등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범서(梵書)에도 능통하였다.

1823년 아암(兒巖) 혜장(惠藏) 등과 『대둔사 사적기』를 편집 및 간행하였으며, 1824년 은거의 뜻을 두고 일지암(一枝庵)을 중건하여 40여 년간 머물며 지관(止觀)[마음을 고요히 하여 진리의 실상을 관찰하는 불교의 수행법]에 전력하면서 많은 저술을 남겼다. 만년에는 용마암 쾌년각을 짓고 거처를 옮겨 1866년(고종 3) 입적하였다.

초의선사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자하(紫霞) 신위(申緯) 등 당대의 대학자들과 폭넓은 교유를 가졌으며. 100여 명이 넘는 후학을 양성하였다.

선사의 사상은 선(禪) 사상과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으로 집약된다. 저서인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는 대선사 백파(白坡)가 쓴 『선문수경(禪門手鏡)』의 잘못을 변증 하기 위하여 저술한 것이다. 백파(白坡)는 선을 조사선(祖師禪)·여래선(如來禪)·의리선(義理禪)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는데, 초의선사는 이런 구별의 기준은 근기가 아니라 인명(人名)이냐 법명(法名)이냐의 문제라고 보았다. 이와 같은 논쟁은 김정희·우담(優曇)·축원(竺源) 등에게까지 파급됨으로써 조선 후기의 선사상에 중대한 큰 영향을 주었다.

선사는 선(禪)만을 강조하지 않고, 지관(止觀)을 수행하였다. 또, 모든 법이 다르지 않다고 강조하면서 차와 선(禪)도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고, 차를 통하여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볼 수 있다고 하였다. 초의선사는 차의 성품을 때 묻지 않은 본래의 원천과도 같은 것이라고 하여 무착바라밀(無着波羅蜜)이라고도 하였다.

저서로는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 『일지암유고(一枝庵遺稿)』, 『동다송(東茶頌)』, 『다신전(茶神殿)』, 『초의집(草衣集)』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