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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청천 신유한 적천사과방장영선사(靑泉 申維翰 磧川寺過方丈英禪師)

자연의 섭리(攝理)는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이다. 인간의 어떤 행위가 자연의 섭리를 벗어났다고 해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주가 균형을 잃고 질서가 무너진다 해도 이 또한 우주의 섭리이며, 기독교에서 세상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신의 뜻을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매일 접하는 굵직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받아 들여야 할 섭리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시간의 흐름 속에 시대인으로 겪어야 하고 피할 수 없는 당연한 삶의 섭리일 것이다.

 

 소개하고자 하는 청천 신유한(靑泉 申維翰)의 적천사과방장영선사(磧川寺過方丈英禪師) 한시는 적천사에 머물고 있는 영선방장 스님을 찾아왔다 잠시 냇가에서 쉬고 있을 때 한 스님을 만나 객승이 문답식으로 나누는 모습을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듯 그려낸 선풍적(禪風的) 요소가 담기 시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방장(方丈)은 불교의 종합수도원(綜合修道院)인 총림(叢林)의 최고 책임자를 일컫는데 방장은 원래 사방으로 1장(丈)이 되는 방이란 뜻이다. 부처님 당시의 유마거사(維摩居士)가 병이 들었을 때 그가 거처했던 사방 1장의 방에 문병 온 3만2000명을 모두 사자좌(獅子座)에 앉게 한 데서 방장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 뒤 그 뜻이 달라져, 주로 큰 절의 주지(主持)를 가리켜서 방장화상이라고 하였다.

 

적천사과방장영선사(磧川寺過方丈英禪師 : *적천사 방장 영선스님의 거처를 지나며)

掃石臨流水(소석림유수) 바위를 쓸고서 흐르는 물가에 앉아

問師何處來(문사하처래) 스님은 어느 곳에서 오느냐 물으니

師言無所住(사언무소주) 스님 말씀이 머무는 곳이 없어

偶與白雲回(우여백운회) 우연이 흰구름과 짝이 되어 운수행각 떠돈다네

 

*적천사(磧川寺)는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화악산(華岳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로 동화사(桐華寺)의 말사(末寺)다.

 

청천 신유한(靑泉 申維翰. 1681~1752)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영해(寧海), 자는 주백(周伯), 호는 청천(靑泉)이며, 할아버지는 신성오(申省吾)이고, 아버지는 신태시(申泰始)이며, 작은아버지는 신태래(申泰來)이다. 세 사람은 문장을 잘하여 밀성삼가(密城三家)로 불렸다. 밀성은 경남 밀양의 옛 지명이다.

1713년(숙종 39) 증광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1719년 통신사(通信使) 제술관(製述官 : 조선 시대 승문원(承文院)의 한 벼슬로 외국에 사신을 파견할 때 동행하는 수행원으로 보통 글재주가 있는 사람으로 전례문(典禮文)을 전담하여 짓게 하였음)으로 선발되어 일본에 파견되었다. 이듬해 귀국하여 해유록(海游錄)을 저술하였고, 승문원 부정자(副正字 : 조선시대 승문원의 외교문서 검토와 교정, 교서관의 서적 교정과 제향의 축문 필사·검토를 맡아보던 종 9품 직제)와 성균관 전적(典籍 : 조선시대 성균관의 정 6품 관직)을 지냈다. 1722년(경종 2) 무장 현감으로 나간 뒤 봉상시 첨정, 평해 군수, 영일 현감을 역임하였다. 신유한이 일본에 다녀와서 쓴 해유록에는 영가대(永嘉臺)에서 해신제(海神祭)를 지내는 모습과 제사 과정이 자세히 적혀 있다.

저술로는 통신사행을 다녀와서 쓴 해유록(海游錄)과 문집인 청천집(靑泉集)이 있으며 묘는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신곡리 좌랑봉에 있다.

 

(주변풍경)

산국
찔래꽃 열매
꽃향유
둥근잎유홍초
새깃유홍초
단풍잎유홍초
과꽃
붉은강낭콩
우선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