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다란 골목길, 실개천 징검다리, 뒷동산 아리랑이, 처마 밑 빗물소리, 밝아오는 여명, 서산에 지는 노을,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의 은하수.. 생각만 해도 아련하게 떠오르는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단어 들이다. 이 제 곧 6일간의 긴 추석연휴가 시작된다. 소싯적 내 고향 두메산골 경남 산청에는 몇 채의 초가집이 있었다. 추수가 끝난 늦 가을 1~2년에 한번씩 초가집 지붕에 이엉 얹기를 하면 동내 어른들이 서로 모여 사전에 새끼줄 꼬며 이엉을 만드는데 볏짚의 밑부분으로 한 움큼 정도의 분량을 새끼나 여러 가닥의 짚으로 엮어서 지붕 면에 깔 수 있도록 가공한 것을 한줄엮기이엉이라고 하며, 지붕의 용마루에 얹혀지는 이엉은 용마름이라고 한다.
용마름은 한줄엮기이엉을 서로 맞붙여놓은 것처럼 양쪽으로 경사가 지도록 만들며, 지붕의 가운데 높은 곳에 놓인다. 즉, 볏짚의 밑부분을 서로 한 움큼씩 마주대고 엮어 만드는데, 윗부분(이삭부분)을 맞대어 엮는 방법도 있다. 지붕면에 이엉을 까는 것은 이엉이기라 한다. 이엉이기에는 비늘이엉법과 사슬이엉법의 두 가지가 있다. 비늘이엉법은 모양이 물고기의 비늘을 닮은 데에서 온 것으로, 짚의 수냉이(뿌리)를 한뼘 정도 밖으로 내어서 엮는 방법이다. 이제 이엉을 만드는 분이 다 돌아가시고 가느다란 실처럼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조금이라도 젊었다면 이 분야에 도전하고픈 욕심이 생겼을 것이다. 치적치적 가을비 내리는 밤에 보름달 관련 한시 2수를 소개하고자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중추월(中秋月) - 계곡 장유(谿谷 張維)
今夜中秋月(금야중추월) 오늘 밤 중추절 보름달
高開萬里雲(고개만리운) 만리 구름 헤치고 두둥실 떠있네
遙空添爽氣(요공첨상기) 먼 하늘 상쾌한 기운 뻗쳐 있고
列宿掩繁文(렬숙엄번문) 별들도 현란한 빛 감추었구나
蟾兎初誰見(섬토초수견) 당초에 그 누가 달 속의 토끼 보았던가
山河乍可分(산하사가분) 잠깐 산하대지 분간할 정도로 낮처럼 밝은 것을
茅齋看不厭(모재간부염) 초가에서 아무리 봐도 싫증 나지 않고
凉影坐紛紜(량영좌분운) 서늘한 바람에 달 그림자 어지러이 일렁이네
계곡 장유(谿谷 張維 1587∼1638)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 · 구염자(癯髥子) · 점소자(點所子), 본관은 덕수(德水),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부친은 형조판서 장운익(張雲翼)이며,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사위이다. 딸은 효종비 인선(仁宣)왕후이다.
1609년 문과에 급제, 검열(檢閱 : 조선시대 예문관의 정 9품 관직으로, 춘추관의 기사관을 겸한 전임 사관(專任史官))을 거쳐 주서(注書 : 조선시대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담당한 정 7품 관직)가 되었다가 1612년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 : 조선 광해군 때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대북파(大北派)가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지지하던 소북파를 제거하려고 일으킨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파면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에 참여, 이조정랑 등을 거쳐 사가독서(賜暇讀書 : 조선시대에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한 제도)하고 정사공신 2등에 책록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 때 왕을 따라 강화로 피란했다가 환도 후 이조판서에 대제학을 겸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도 왕을 따라 남한산성에 들어갔다가 환도 후 우의정에 오르고 신풍(新豊) 부원군에 봉해졌다. 학문이 해박하여 천문 · 지리 · 의술 · 병서 등에 두루 능통했으며, 특히 문장에 뛰어나 신흠(申欽) · 이정구(李廷龜) · 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 한문 4 대가로 일컬어졌다.
그는 박학(博學)하였고 문장에 뛰어났음. 저서에, 계곡집(谿谷集), 계곡만필(谿谷漫筆), 음부경주해(陰符經註解) 등이 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계곡선생에 대하여는 앞서 장쾌한 시 대언(大言)에서 간략하게 소개한 바 있다.
중추월(中秋月) - 아정 이덕무(雅亭 李德懋)
端正中秋月(단정중추월) 단정한 저 한가위 달
姸姸掛碧天(연연괘벽천) 곱게도 푸른 하늘에 걸려 있구나
淸光千里共(청광천리공) 맑은 빛 천 리를 공히 비추고
寒影十分圓(한영십분원) 찬 그림자 머금고 두리둥실 둥글었네
賞玩唯今夜(상완유금야) 그윽한 구경도 오직 이 밤뿐
看遊復隔年(간유부격년) 다 보려면 한 해가 지나야 되는구나
乾坤銀一色(건곤은일색) 천지가 하나같이 은빛
常恐落西邊(상공락서변) 혹 서산에 떨어질까 두려워라.
中秋雲路淨(중추운로정) 한가위라 구름 길 깨끗하고
皎皎一輪圓(교교일륜원) 수래바퀴 같이 둥근달 희기도 하여라
逸興只輸筆(일흥지수필) 흥겨우면 붓을 대고
耽看不用錢(탐간부용전) 탐내어 보아도 돈도 들지 않는구나
穿簾光瑣碎(천염광쇄쇄) 주렴으로 들어온 빛 부서져
入戶影姸娟(입호영연연) 창에 들면 그림자 곱기도 하다
遮莫須臾玩(차막수유완) 잠깐 만이라도 방해 말아라
今宵隔一年(금소격일년) 오늘 같은 밤은 또 일 년 뒤라야 하네.
아정 이덕무(雅亭 李德懋, 1741~1793)는 정종(定宗, 조선의 제2대 왕)의 서자인 무림군(茂林君)의 10 세손으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자는 무관(懋官), 호는 아정(雅亭)인데 이 밖에 형암(炯庵)ㆍ청장관(靑莊館) 또는 동방일사(東方一士)라는 호도 사용했다. 특히 즐겨 사용한 청장(靑莊)이라는 호는 일명 신천옹(信天翁)으로 불린 해오라기를 뜻하는데, 청장은 맑고 깨끗한 물가에 붙박이처럼 서 있다가 다가오는 먹이만을 먹고사는 청렴한 새라고 한다. 청장으로 호를 삼은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성격을 상징한 것이라 하겠다.
이덕무는 서울 출신으로 아버지는 통덕랑 성호(聖浩)이고 어머니인 반남 박씨(潘南朴氏)는 토산현감 사렴(師濂)의 딸이었다. 할아버지 필익(必益)은 강계부사를 지낸 인물이었다. 6살에 아버지가 아들인 이덕무에게 한문을 가르치고자 중국 역사책인 십구사략(十九史略 : 중국의 태고에서부터 원나라까지의 19사를 요약한 사서)을 읽혔는데, 1편도 채 끝나기 전에 훤히 깨우친 영재였다. 16세에 동지중추부사 백사굉(白師宏)의 딸 수원 백씨와 혼인하였고, 20세 무렵에는 남산 아래 장흥방(현재 종로구 부근)에서 살았다. 이 무렵 집 근처 남산을 자주 오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를 많이 지었다.
이덕무는 가난한 환경 탓에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학문에 비상하고 시문에 능해 젊어서부터 이름을 떨쳤다. 사후에 그의 행장을 지은 연암 박지원은 시문에 능한 이덕무를 기리며 “지금 그의 시문을 영원한 내세에 유포하려 하니 후세에 이덕무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또한 여기에서 구하리라. 그가 죽은 후 혹시라도 그런 사람을 만나볼까 했으나 얻을 수가 없구나”하며 그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이덕무는 청장이라는 별호에 어울리는 호리호리한 큰 키에 단아한 모습, 맑고 빼어난 외모처럼 행동거지에 일정한 법도가 있고 문장과 도학에 전념하여 이욕이나 잡기로 정신을 흩뜨리지 않았으며, 비록 신분은 서자였지만 오직 책 읽는 일을 천명으로 여겼다고 한다. 가난하여 책을 살 형편이 되지 않았지만, 굶주림 속에서도 수만 권의 책을 읽고 수백 권을 책을 베꼈다. 이덕무의 저술총서이자 조선후기 백과전서라 할 수 있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볼 수 있듯이, 사실(史實)에 대한 고증부터 역사와 지리, 초목과 곤충,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그의 지적 편력은 실로 방대하고 다양하여 고증과 박학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그의 묘지명을 지은 이서구(李書九)는 이덕무를 두고 “밖으로는 쌀쌀한 것 같으나 안으로 수양을 쌓아 이세(利勢)에 흔들리거나 마음을 빼앗기지 않은 인물”이라 평했다.
이덕무는 1766년 그의 나이 26세 때 대사동으로 이사한 후, 서얼들의 문학동호회인 백탑시파(白塔詩派 : 박제가 등이 중심이 된 서얼 계층의 문학동인 집단)의 일원으로 유득공ㆍ박제가ㆍ이서구를 비롯하여 홍대용, 박지원, 성대중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적 재능에 비해 신분적 한계로 천거를 받지 못하다가 1779년 그의 나이 39세에 정조에 의해 규장각 초대 검서관(檢書官)으로 기용되면서 벼슬길이 열렸다. 1789년에는 박제가, 백동수와 함께 왕명에 따라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편찬하기도 했다. 검서관 이후에 사도시주부, 광흥창주부, 적성현감 등을 역임했다.
(텃밭 풍경.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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