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국립세종수목원

계절마다 찾는 국립세종수목원은 산림청 주관으로 세종특별자치시 세종동 일원의 중앙녹지공간 내 65ha의 면적에 조성 중인 수목원이다. 2020년 5월에 준공하였고 편의시설을 확충하여 2020년 10월 개장하였다. 주제별로 구성된 전시원에는 2,450종 약 110여 만 본의 식물이 심어져 있다.
세종시민을 위한 휴식공간이자 산림식물의 전시, 원예, 조경 중심으로 한국정원의 특성과 아름다움을 브랜드화하여 볼거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식물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때마침 분재전시회도 열려 쾌청한 날씨와 함께 가을 정취를 느껴보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며, 수목원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세종시민 뿐만 아니라 수목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시간을 내어 세종수목원 방문을 적극 권하고 싶다.
 

국립세종수목원

국립세종수목원 입구(방문자 센터)
한국전통 정원(궁궐정원)
궁궐 연못정원
별서정원(別墅庭園)
별서정원(別墅庭園)은 선비들이 세속을 떠나 자연에 귀의하여 은거생활을 하기 위한 별처
단풍 든 목백일홍(배롱나무.자미화)
부들은 물가나 연못, 늪지에 주로 서식하는 외떡잎식물 이다. 수생식물이지만 뿌리만 진흙에 고정되고 잎과 줄기는 물 밖으로 나와 자란다. 주로 6~7월에 꽃이삭이 달리고 꽃이 핀다. 그래서 꽃가루받이 를 초여름에 하는데, 이때 몸체가 부들부들 떨려서 '부들'이란 이름이 붙었다 한다. 부들 잎과 꽃이삭의 감촉이 보들보들해서 '부들'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언뜻 보면 소시지 처럼 생긴 갈색 꽃이삭이 제일 큰 특징이다.
버베나
좀작살나무 열매 좀작살나무는 꿀풀과의 갈잎 떨기나무로 한국 원산이며 일본과 중국 에도 분포한다.
산수유 열매
족두리꽃 풍접초(風蝶草)는 풍접초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로 아메리카 원산이다. 백화채라고도 부른다.
버들잎해바라기
가막살나무 열매
강황꽃(울금꽃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사계절 온실관
분재원
곰솔은 해송(海松), 흑송(黑松), 검솔, 숫솔, 완솔이라고도 하는데, 줄기와 가지가 검은 빛을 띠는 소나무속 의 종이다. 일본 과 한반도 중부 이남 해변이나 해안 산지에서 잘 자란다. 늘푸른 바늘잎이 소나무 분재로 적격이다.

 

분재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문헌에 기록된 최초의 한시는 고려 말 전녹생(田祿生)이 8세 때 화분에 옮겨 심은 소나무 분재를 보며 읊은 영분송(詠盆松)을 살펴보고자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영분송(詠盆松)

山中三尺歲寒姿(산중삼척세한자) 산 속의 석자(약 90Cm)나무 풍상 겪은 그 모습
移托盆心亦一奇(이탁분심역일기) 화분에 옮겨 심었더니 그 모습 한번 기이하네
風送濤聲來枕細(풍송도성래침세) 바람은 속삭이듯 베갯머리에 와서 닿고
月牽疎影上窓遲(월견소영상창지) 가지에 걸린 달은 창에 뜨기 더디어라
枝盤更得栽培力(지반갱득재배력) 힘들여 가꾸기에 새 가지 돋아나고
葉密曾沾雨露私(엽필증점우로사) 이슬비 흠뻑 젖어 잎마저 무성하네
他日棟樑雖未必(타일동량수미필) 동량의 재목 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草堂相對好襟期(초당상대호금기) 서재에서 마주 보면 마음이 통한다네
 
전록생(田祿生 1318 ~ 1375)은 고려의 문신으로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맹경(孟耕). 호는 야은(埜隱)이다.
충혜왕(忠惠王) 때 급제하여 제주사록(濟州司錄)·전교교감(典校校勘)을 지냈다. 1350년(충정왕2) 정동향시(征東鄕試)에 합격했다. 1357년(공민왕6) 기거사인(起居舍人)으로 간의(諫議) 이색(李穡), 사간(司諫) 이보림(李寶林), 정추(鄭樞) 등과 함께 염철별감(鹽鐵別監)의 폐단을 극론(極論)했고, 이 해에 전라도 안렴사(安廉使 : 고려 시대 도(道)의 장관)가 되었고, 11월에 왕이 홍건적의 난으로 남순(南巡)하게 되자 시어사(侍御史)로 왕을 호종했다.
1362년 전리총랑(典理摠郞)이 되고, 벼슬을 여러 번 옮겨 좌상시(左常侍 : 고려 시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정 3품 관직)가 되었다. 이듬해 감찰대부(監察大夫)로 원나라에 가서 황태자에게 예물(禮物)을 드리고 돌아와 밀직지학(密直指學)이 되고 나중에 계림윤(鷄林尹)에 제수되었다. 그 후 경상도 도순문사(慶尙道都巡問使)가 되었고 정당문학(政堂文學 : 고려와 조선시대 국가 행정을 총괄하던 관직)을 제수받았다. 1371년에는 이색이 지공거(知貢擧)가 되고, 그는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진사를 선발하였다.
1373년 다시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되고 강녕부원대군(江寧府院大君:禑王)의 사부가 되었으며, 다음 해는 개성부사(開城府事) 경상도 도순문사(慶尙道都巡問使)가 되었고, 추화찬화보리공신(推化贊化輔理功臣)의 호(號)를 받았다. 1375년(우왕1) 간관(諫官) 이첨(李詹) 전백영(田伯英)과 함께 원의 배척과 이인임(李仁任)의 목을 벨 것을 청하니 왕이 이첨과 전백영을 옥에 가두고, 최영과 지윤을 시켜 국문하게 하였다. 이들의 말이 박상충(朴尙衷)과 전녹생에게 관련되므로 최영이 이들을 국문하고 귀양을 보냈는데, 모두 가던 도중 죽었다.
작품은 시 10수, 비답(批答:왕을 위해 지은 글) 1편, 주(奏) 1편, 소(疏) 2편이 있다. 1677년(숙종3) 장흥(長興)의 감호사(鑑湖祀)에 제향(祭享). 조선 후기에 그의 후손들이 여러 문헌에서 시편과 관계되는 글들을 모아 야은선생일고(埜隱先生逸稿) 6권 2책을 내었다.
 

궁궐정원 연못 중앙을 장식하고 있는 명품송

 
(축소정원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