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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청담 이중환 산자수명(淸潭 李重煥 山紫水明)

예로부터 우리나라 산천을 두고 삼천리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고 불렀다.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국토의 70%가 산지임야로 도심지 근교에는 명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수도를 정할 때도 배산임수(背山臨水)를 기본으로 산을 등지고 물을 마주 보고 있는 곳에 혈(穴)을 찾아 터를 택했다. 서울은 삼각산과 한강을 두고 배산임수의 완벽한 풍수적 조건을 갖춘 곳이다.

이처럼 길지를 선택하는 것은 삶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였기에 풍수지리에 대한 관심도 지대했을 것이다. 300여 년 전 청담 이중환(淸潭 李重煥)은 당쟁(黨爭)에 의한 옥고와 유배생활을 청산하고 30여 년간 전국을 순회하며 각 지역의 교통, 지리, 문화, 인물, 특산물 등을 정리하여 인문지리서(人文地理書)인 택리지(擇里志)를 저술하게 되는데 당대 지식인들 뿐만 아니라 후세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가 남긴 시 산자수명(山紫水明)은 4자 성어를 첫 자로 하여 대구(對句) 형식으로 아름다운 산수를 높은 격조로 읊은 시와 함께 장서각 택리지 필사본(藏書閣 擇里志 筆寫本) 복거총론(卜居總論) 서두 내용 일부를 살펴보고자 한다.

 

산자수명(山紫水明 : 산 곱고 물 맑은 아름다운 금수강산)

有高峰能起伏(산유고봉능기복) 산은 높은 봉우리가 있음에 능히 구릉을 이루고

又廻布鎭作名堂(우회포진작명당) 다시 감돌아 포진하여 명당을 만든다.

然雲月千年畵(자연운월천년화) 아름다운 구름과 달은 천 년의 그림이요

奇妙風光萬物相(기묘풍광만물상) 기묘한 풍광은 가히 만물상이라.

飛絶壁銀河落(수비절벽은하락) 물이 절벽에서 떨어지니 이는 은하수의 낙하요

雁去鄕天客信長(안거향천객신장) 기러기 고향하늘로 날아가니 편지사연 길어지네.

沙何處波聲振(명사하처파성진) 명사십리 어디에서 파도소리 들린다 하더냐?

欲與閑鷗共樂場(욕여한구공락장) 한가로운 물새들과 더불어 즐겨 지내고 싶네.

 

청담 이중환(淸潭 李重煥. 1690 ~ 1756)은 조선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휘조(輝祖), 호 청담(淸潭)·청화산인(靑華山人)이다. 아버지는 참판을 지낸 이진휴(李震休)이며, 어머니는 오상주(吳相胄)의 딸이다. 성호 이익의 재종손(再從孫)이며 그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워 일찍부터 실사구시(實事求是 : 사실에 바탕을 두고 진리를 탐구하는 일)의 학풍을 이어받았다. 1713년(숙종 39) 증광문과(增廣文科 : 증광시(增廣試)는 조선시대 나라에 경사가 있을 경우에 보이던 임시 과거제도로 크게 문과, 무과, 잡과로 구분됨.)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가주서(假注書 : 조선 시대에, 승정원에 속한 정칠품 벼슬. 주서(注書)가 사고를 당할 때에 그 일을 대신 맡아보게 하기 위하여 정원(定員) 이외로 두었다.),  승문원 부정자, 부사정(副司正)을 거쳐 1718년(숙종 44) 김천 도찰방(金泉道察訪)이 되었다.

 

1719년에는 승정원 주서를 거쳐 그 이듬해 사관, 전적을 지내고 1723년(경종 3)에는 병조정랑, 부사과에 임명되었다. 1722년(경종 2) 노론 대신들이 세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경종을 제거하고 왕위를 찬탈하려고 모의했다는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으로 임인옥(壬寅獄)이 발생하였다. 이는 당시 소론이 노론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목호룡은 공신으로 추대되었다. 하지만 영조가 즉위하고 소론의 모함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소론들이 탄핵을 받게 되었다. 이중환은 말을 빌려 준 것이 문제가 되어 영조가 즉위한 후 목호룡과 함께 구금되었다. 이 일로 인해 1726년 절도(絶島)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으나 사헌부의 탄핵으로 다시 유배되었다. 그가 유배되었던 지역이 어디인지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

 

유배에서 풀려난 후에는 전국 각지를 지역의 교통 지리 문화 인물 특산물 등을 정리하여 인문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八域志)를 저술하였다. 이 책을 통하여 그의 인문지리사상과 이용후생의 실학정신을 살펴볼 수 있다.

그의 역작 택리지는 전체적으로 이중환이 30여 년간 전국을 유람하며 직접 현지 답사한 것을 기초로 하여 저술하였다.

경상도는 신라(진한, 변한)의 땅으로,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는 고조선과 고구려의 땅으로, 전라도와 충청도는 마한, 백제의 땅으로, 강원도는 예맥(濊貊)의 땅으로 비정(比定)했다. 단순 지리적 내용뿐만 아니라 고조선과 삼한,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건국, 고려의 건국과 그 강역에 관해서도 논하였다.

산천을 따라 각 고을의 인심과 풍속, 역사와 문화, 물자 등을 기록했으며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지리와 인문에 대한 것들을 역사적, 문학적, 철학적으로 논했다. 18세기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산업, 교통, 국방, 풍수지리, 환경 등에 대한 다채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저자가 팔도를 직접 다니며 지역별 지형과 역사, 토산물 등을 기록했고, 지리적 환경에 맞는 생산 활동과 교역을 강조했다. 편찬 후 택리지는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반향(反響)을 불러일으켰다.

내용은 크게 사민총론(四民總論), 팔도총론(八道總論), 복거총론(卜居總論), 3가지 총론으로 나뉜다.

복거총론에서는 가거지(家居地)의 조건 네 가지를 제시하였다. 풍수지리적 명당인 배산임수에 위치한 '지리'와 생업에 유리한 곳에 위치하는 '생리(生利)', '인심(人心)' 그리고 '산수(山水)'이다.

이중환이 직접 쓴 택리지 원본과 수정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당시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관계로 필사할 때마다 본인 마음에 안 들면 글을 바꾸는 경우도 많아서 택리지 이본(異本)만 200여 종에 달하므로 그 정확한 내용은 알기 어렵다. 그래서 택리지에 관한 제대로 된 학술대회조차 열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서각 택리지 필사본(藏書閣 擇里志 筆寫本) 복거총론(卜居總論) 서두 내용 일부를 살펴보면

大抵卜居之地地理爲上生利次之(대저복거지지지리위상생이차지)

次則人心次則山水(차즉인심차즉산수)

四者缺一非樂土也(사자결일비낙토야)

地理雖佳生利乏則不能居久(지리수가생이핍즉불능거구)

生利雖好地理惡則亦不能久居(생이수호지리악즉역불능구거)

地理及生利俱好而人心不淑則必有悔吝(지리급생리구호이인심부숙즉필유회린)

近處無山水可賞處无以陶瀉性情(근처무산수가상처무이도사성정)

무릇 복거의 땅이라고 하는 것은 지리가 생리 위에 있어 그것을 다음으로 한다.

그다음이 인심이며 그다음이 산수인 것이다.

이 네 가지는 하나라도 결여되면 땅을 즐길 수 없는 바이다.

지리가 비록 빼어난다고는 하나 생리가 결핍된다면 오래 거할 수 없지 않겠는가?

생리가 비록 좋다고는 하더라도 지리의 상황이 나쁘다면 역시 오래 거할 수 없을 것이다.

지리와 생리는 모두 좋으나 또한 인심이 각박스럽다면 반드시 후회하는 바가 생기지 않겠는가?

가까운 곳에 산책하여 자연을 감상할 곳이 없다면 성정을 쏟아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