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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지리산 뱀사골 와운마을 천년송(智異山 臥雲마을 千年松), 시견오 추야산거(施肩吾 秋夜山居), 여본중 소나무(呂本中 松)

최근 안타까운 소식은 600여 년 수령의 울진 대왕소나무가 고사직전(枯死直前)에 있다고 한다.

사진으로만 접해본 울진 대왕소나무는 세계적인 명목으로 손색없는 울진금강송(蔚珍金剛松)을 대표하는 나무로 그 웅장한 모습에 경이로움과 감탄이 절로 났는데 우리 시대에 고사목으로 전락한다면 그 상실감은 매우 클 것이다.

소나무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 1위를 매 년 차지할 정도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나무이다. 또한 세한삼우(歲寒三友 :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를 이루어 시와 그림에서 자주 묘사되었다. 소나무는 애국가에 등장하는 나무이자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 중에 소나무가 40종목으로 가장 많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나무의 '솔'은 '으뜸'을 의미하여, 소나무는 나무 중에 으뜸인 나무라는 뜻을 가진다. 나무 줄기가 붉어서 적송(赤松) 또는 홍송(紅松)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주로 내륙 지방에서 자란다고 육송(陸松)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여인의 자태처럼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고 여송(女松)이라 부르기도 한다.

목재로서도 훌륭한 소나무는 궁궐이나 사찰을 만드는 데 쓰였다. 그 중에서도 강원도와 경북 울진, 봉화에서 나는 춘양목(春陽木)은 결마저 고와 최고급 목재로 이용되었다.

또한 솔잎은 싱싱한 것을 따서 쓰고, 통증과 피를 멎게 한다. 송진은 고약이나 반창고를 만드는 데 쓰는데 염증을 치료하고 고름을 빨아낸다. 송화 가루는 기운을 돋우고 피를 멎게 한다. 소나무를 베어 내고 7~8년이 지난 뒤에 뿌리에서 외생근균(外生根菌 : 균사가 식물의 뿌리 세포 내에 침입하지 않고 표면이나 표면에 가까운 세포 간극 속에만 위치하는 공생체)이 자라 버섯이 생기는데 이것을 ‘복령(茯笭)’이라 하며, 입맛을 돋우고 구역질을 없애 주어 중요한 약재로 썼다. 그 밖에도 송이(松耳/栮)를 비롯한 소나무 씨앗, 속껍질, 봄에 나는 새순도 약으로 썼다.

소나무의 품종으로 땅 표면에서부터 줄기가 여러 개로 갈라져 나무 모양이 부채를 편 것 같은 반송(盤松)과 춘양목(春陽木), 강송으로도 불리며 유난히 가지가 곧게 자라 훌륭한 목재로 손꼽히는 금강송(金剛松)과 처진 소나무, 은송(銀松) 등이 있다.

우리 겨레와 함께한 소나무도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향후 수 십 년이 지나면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다고 한다.

 

소나무에 대하여는 앞서 소개한 바 있다. : 소나무 관련 한시 몇 수 (tistory.com)

 

가을이 깊어가는 며칠 전 형제들과 함께 남원소재 지리산 뱀사골을 다녀왔다. 주차 후 약 3Km를 걸어서 해발 800m에 있는 구름도 누워 쉰다는 와운리(臥雲里) 마을 천년송(千年松)을 만나보았다.

 

천년송(千年松)은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424호로 지정된 이 나무는 마을 뒷산에서 임진왜란 전부터 자생해 왔다고 알려져 있으며, 20m의 간격을 두고 한아시(할아버지) 송과 할머니(할머니) 송이 이웃하고 있는데, 이 중 더 크고 오래된 할머니송을 마을 주민들이 ‘천년송’이라 불러오며 매년 당산제(堂山祭)를 지내왔다 한다.

 

그 웅장함과 기품이 넘치는 천년송 자태에 흠뻑 빠져 한동안 머물며 뱀사골의 늦가을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보았으며 노송(老松) 관련 한시 2수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시견오 추야산거(施肩吾 秋夜山居)

去雁聲遙人語絶(거안성요인어절) 기러기 소리 멀어지고 인적은 끊겼는데

誰家素機織新雪(수가소기직신설) 뉘 집 베틀에서 첫눈 같은 하얀 비단을 짜고

秋山野客醉醒時(추산야객취성시) 가을 산, 들녘에서 나그네 술 깰 무렵

百尺老松銜半月(백척노송함반월) 백 척 노송은 가지 끝에 반달을 머금었네

 

시견오(施肩吾 791 ~ 미상) 중당(中唐)의 시인으로 자는 희망(希望), 호는 동재(東齋)와 서진자(棲眞子)를 썼다. 집안이 가난하여 어려서는 오운산(五雲山) 화상사(和尙寺)에서 독서를 했다. 시로 이름을 얻었는데 장적(張籍)은 산수를 좋아하는 그를 연하객(烟霞客)이라고 불렀다. 원화(元和) 15년(820) 마흔이 되어서야 참가한 전시(殿試)에서 장원을 차지하며 진사(進士)가 되었다. 장경(長慶. 821~824) 중 홍주(洪州) 서산(西山 : 현재의 장시江西 남창南昌)으로 들어가 도학(道學)에 심취하였다. 저서로 서산집(西山集)(10권)과 한거시(閑居詩)(100여 수)를 남겼고, 전당문(全唐文)에 양생변의결(養生辨疑訣)이 실려 있다.

 

여본중 소나무(呂本中 松)

一依風霜萬木枯(일의풍상만목고) 바람과 서리 탓에 만목은 시들고

歲寒惟見老松孤(세한유견노송고) 세한에 오로지 노송만 외로이 섰네.

秦皇不識淸高操(진황불식청고조) 진시황은 노송의 맑고 높은 지조 알지 못하고

強欲煩君作大夫(강욕번군작대부) 어거지로 그대에게 대부관직 내렸네.

 

진시황(秦始皇)이 태산에 올라 천제(天祭)를 올린 후 하산하다가 갑자기 쏟아진 폭우를 피하기 위해 진시황은 길가에 서 있는 큰 노송 밑으로 들어갔다. 대강 비를 피한 진시황은 그 노송이 고마워서 오대부(五大夫) 관작을 수여했는데 후대의 여본중(呂本中)은 본래 노송은 인간이 하사하는 대작(大爵) 그 이상의 위상과 고결한 기품을 간직하고 있음을 버젓이 알려 주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본중(呂本中. 1084 ~ 1145)은 남송(南宋) 수주(壽州) 사람으로 초명은 대중(大中)이고, 자는 거인(居仁)이며, 호는 동래선생(東萊先生)이고,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여호문(呂好問)의 아들이다. 고종(高宗) 소흥(紹興) 6년(1136) 진사 출신으로 인정받았다. 기거사인(起居舍人)을 거쳐 중서사인(中書舍人) 겸 시강(侍講), 권직학사원(權直學士院)을 지냈다. 일찍이 상서하여 국세를 회복할 계책을 올렸다. 진회(秦檜)가 재상이 되어 사사롭게 권력을 남용하자 제목(除目)을 봉해 돌려주었다. 조정(趙鼎)과 서로 가까웠는데 진회의 미움을 사서 탄핵을 받고 파직당했다.

양시(楊時)와 유초(游酢), 윤돈(尹焞)을 사사(師事)했으며, 유안세(劉安世), 진권(陳瓘)에게도 배웠다. 시를 잘 써 황정견(黃庭堅)과 진사도(陳師道)의 구법(句法)을 터득했다. 쇄소응대(灑掃應對 : 어린아이가 집안에서 해야 할 일과 바른 몸가짐에 대해 소학(小學)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일이 훈고(訓詁)보다 우선한다며 하학상달(下學上達 : 아래를 배워 위에 달한다는 뜻으로, 낮고 쉬운 것을 배워 깊고 어려운 것을 깨달음)의 학문을 강조했다. 또한 유학과 불교의 사상적 요지가 크게는 같다고 보아 이가(二家)의 조화를 주장했다. 저서에 춘추집해(春秋集解)와 동몽훈(童蒙訓), 강서시사종파도(江西詩社宗派圖), 자미시화(紫薇詩話), 사우연원록(師友淵源錄), 동래선생시집(東萊先生詩集) 등이 있다.

 

(지리산 천년송)

천년송 20m위에 자리잡고 있는 한아시(할아버지) 송
온산이 단풍으로 물들었지만 천년송은 세한(歲寒)이 다가올수록 푸르름이 짙다.
구름도 누워 쉬어간다는 해발 800m에 위치한 와운(臥雲)마을

 

(지리산 뱀사골)

뱀사골은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있는 지리산 반야봉에서 반선까지의 계곡으로 입구 반선주차장에서 와운마을까지 약 3Km위 계곡길로 이어진다.

 

뱀사골의 지명유래는 몇 가지가 있다. 정유재란에 불타버린 석실 부근의 배암사라는 절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지리산 북사면의 계곡으로 돌돌골이라고도 하여 물이 뱀처럼 곡류한다 하여 뱀사골이라 부른다는 설이 있다.

또 뱀사골은 뱀이 죽은 계곡이라는 전설에서 나온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그 전설에 따르면 뱀사골 입구에 송림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에선 칠월 백중날 신선대에 올라가 기도를 하면 신선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었다. 이 일을 괴이하게 여긴 어느 대사가 신선대에 올라 기도를 하려는 스님의 가사장삼에 몰래 명주실과 독을 매달아 두었다.

다음날 뱀소 부근에 용이 못된 이무기가 죽어 있었다고 하여 뱀사골이란 명칭이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이무기에 죽어갔던 스님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반쯤 신선이 되었다 하여 뱀사골 입구 동네를 반선(半仙)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유래로 뱀과는 관련이 없는 비탈이 심한 사이 골짜기란 뜻의 밴샅골이 변해 뱀사골로 불리어졌다는 설이 있다.

 

와운마을
와운마을 입구 부부송

 

 

(울진 금강대왕송)

울진 금강대왕송은 해발 700m에서 600여년 지켜온 울진 금강송을 대표하는 명목으로 현재 지구온난화로 인한 급격한 기후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고사직전에 있다.(사진 : 경북일보. 2019.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