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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함허득통 유운악산(涵虛得通 遊雲岳山)

지금이 산행하기 딱 좋은 날씨다. 오래전 토요일 오전근무를 마치고 주차장에서 간단한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관악산, 청계산을 자주 찾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등산인구가 적어서인지 한적한 소로를 따라 비탈길 산길을 동료 2명과 함께 오르곤 했는데 IMF 이후에 등산인구가 폭발하듯 증가하여 주말이면 서울 근교 산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한적한 소로는 대로로 바뀌고 발길이 지나간 흔적은 깊게 파여 나무뿌리가 노출되고 등산안내 표시로 케이블타이와 다단한 끈으로 묶인 가지는 심한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당시 청계산(淸溪山 618m) 주변에 산재한 둥글레 군락은 뿌리가 차로 개발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생태계의 균형은 무절제한 사람들로 인해 균형을 잃고 몰상식한 인간들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지금의 자연은 후손들을 위해 잠깐 빌려 쓰는 것이기에 더욱 아끼고 보살펴서 후손들에게 물려줄 우리들의 의무임에도 이를 저버린 양심불량자들임이 틀림없다.

 

앞서 관악산의 가을풍경을 사진으로 담아 올려 보았는데 과거 경기도에 위치한 험준(險峻)하고 암봉(巖峰)과 기암괴석(奇巖怪石)으로 이루어진 험산(險山)을 경기5악이라 불렀다.

경기오악(京畿五嶽)은 서울 관악구와 과천시, 안양시에 있는 관악산(冠嶽山 632m), 경기도 파주시와 연천군, 양주시에 접해있는 감악산(紺嶽山 675m), 경기도 포천시와 가평군에 속해있는 운악산(雲嶽山 938m),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화천군에 위치한 화악산(華嶽山 1468m), 그리고 유일하게 이북에 있어 가볼 수 없는 개성의 송악산(松嶽山 489m)이다.

 

오래 전 경기 포천시와 가평군에 위치한 운악산(雲岳山)을 몇 번 오른 적이 있는데 산기슭에 자리한 고즈넉한 현등사의 풍경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현등사(懸燈寺)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사찰로 보물 제1793호인 동종과 유형문화재 제63호인 삼층석탑 등 문화재가 있으며, 신라 법흥왕(法興王) 27년에 인도의 승려 마라하미(摩羅訶彌)를 위해 지어졌다. 

 

이후 오랫동안 버려졌다가 898년에 도선국사가 고쳐 지었다. 도선국사는 동쪽의 기가 약하다고 생각해 이를 보완하기 위해 현등사를 이용했다. 이후 1210년에 지눌(知訥)이 다시 고쳐 지었는데, 밤중에 산속에서 빛이 나 가보니 버려진 절터에서 등이 빛나고 있어서 현등사라는 이름을 지었다. 1411년에 함허대사(涵虛大師)가 다시 고쳐 지었다. 1811년에 취윤(就允), 원빈(圓彬)이 다시 고쳐지었지만, 1823년에 많은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이후 중창을 거처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운악산 관련 속세의 번뇌를 잊고자 함허득통대사涵虛得通 大師)가 한가로이 운악산을 유람하면서 지은 한시를 살펴보고자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조선 전기의 승려 함허(涵虛 1376~1433)는 앞서 소개한 바 있다.

한가함이 찾아오면 운악산을 다시 찾아가리라.  

 

유운악산(遊雲岳山 : 운악산을 노닐며)

嶺上高開千里目(영상고개천리목) 산 정상에 올라서는 천리가 눈앞에 펼쳐지고

山中嬴得一身閑(산중영득일신한) 산중에 들어서는 이 한 몸 한가함이 넘친다.

投筇處處塵機絶(투공처처진기절) 지팡이 내려두니 곳곳마다 속세 생각 끊기고

擧足行行體自安(거족행행체자안) 발길 닿는 곳마다 몸이 절로 편안하다.

 

(주변의 가을풍경)

영종도 백운산에서 바라본 동트기 전 모습
소나무를 휘감고 있는 송담(소나무 담쟁이덩굴)
계절을 잊고 핀 팥배나무꽃
철쭉
개나리
명자꽃